[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35] 경주최씨 가문 ‘교동법주’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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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22   |  발행일 2015-10-22 제22면   |  수정 2015-10-22
맑고 화려한 금빛을 품은 백일주…수백년 이어온 궁중비법으로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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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법주 덧술을 빚고 있는 최경씨. 교동법주는 아직까지 전통방식대로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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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법주 누룩을 만들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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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법주 주안상. 교동법주는 찹쌀만으로 빚어 술잔이 술상에 붙을 정도로 점도가 높다. <교동법주 제공>

찹쌀 발효주로 알코올 도수 16∼18도
곡주 특유의 향·단맛…신맛도 느껴져
전수자, 전통주조 방식 소량생산 고집
유통기한 1개월로 짧아 시중선 못구해

안주로 육포·명태보푸라기 등 어울려
가문의 내림음식 ‘사연지’ 맛도 일품


17세기 중반 이후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가문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잣집. 이 집안은 경주최씨 최진립(1568~1636)의 셋째아들 최동량(1598~1664)의 후손 가문이다.

경주 최부잣집이 보기 드물게 오랜 세월 동안 만석꾼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가문의 가훈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진사 이상 벼슬은 하지 마라 △재산은 1만석 이상 모으지 마라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 △과객은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는 육훈(六訓)이 그것이다.

이 최부잣집은 1년 쌀 수확량이 대략 3천석이었는데 이 중 1천석은 집에서 사용하고, 1천석은 과객에게 베풀었으며, 나머지 1천석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과도한 욕심을 자제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주위에 많이 베풀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삶의 철학은 양극화가 심화되는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한 가르침이 되고 있다.

이 경주 최부잣집 가문에 또 유명한 것이 있으니 가양주로 빚어오던 교동법주다. 현재 교동법주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고 기능보유자는 최경씨(71)다. 최경씨는 경주최씨 가문의 종손은 아니다. 교동법주는 경주 최부잣집 집안의 며느리들에 의해 빚는 법이 전해져 왔으나 이러저런 사정으로 대부분 단절되고 지금은 경주 교동의 최경씨 집안에서만 제조법이 온전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사옹원 참봉 최국선에게서 비롯된 가양주

조선시대 사옹원(司饔院)은 대궐 안 궁중음식을 총괄하는 부서였다. 사옹원 여러 직책 중에서도 사옹원 참봉은 임금의 수라상을 직접 감독하는 실무 책임자로, 비록 종9품의 말직이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벼슬이었다. 남대문(숭례문) 안 사람과 신분이 확실한 충신의 가족만 채용했다. 숙종 때 최동량의 장남인 최국선(1631∼1682)은 지방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사옹원 참봉에 등용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큰 공을 세워 ‘정무(貞武)’란 시호를 하사받고 불천위에 오른 최진립(1568∼1636)의 손자인 덕분이었다.

최국선은 부(富)의 사회적 환원을 모범적으로 실천해 가진 자의 본보기가 된 경주 최부잣집의 중흥조이기도 하다. 그는 참봉 벼슬을 마친 후 경주로 낙향해 임금의 반주로 올렸던 법주(法酒)를 궁중비법 그대로 빚어냈다.

최국선과 그 후손들은 월성군 내남면 이조리에서 세거해왔으나 최국선의 6세손 최기영 대에 이르러 지금의 경주시 교동으로 이사를 했다. 법주 양조 비법을 이어받은 최기영 가문의 며느리들은 대를 이어 법주를 빚어왔다.

이렇게 최부잣집 며느리들에 의해 전수돼 오던 법주는 최기영의 둘째아들 세구의 집안에서 온전하게 이어져, 그의 증손부인 배영신(1917~2014)대에서 1986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름은 ‘교동법주’)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배영신의 아들인 최경씨가 교동법주 2대 기능보유자(2006년)로 그 전통을 잇고 있다.

최경씨는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녔으나 부친이 별세하면서 모친이 홀로 지내게 되자 경주로 내려와 모친으로부터 교동법주 빚는 법을 본격적으로 전수하게 되었다.



◆ 350여년 된 고택에서 빚고 있는 교동법주

250여 년 전 최기영이 부모와 두 아들(세린과 세구)을 데리고 이조리에서 경주시 교동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재산이 넉넉한 부자였기에 형(세린)은 새로 대궐 같은 집을 지어 살았고, 동생(세구)은 이조리의 집을 옮겨와 살았다.

이건한 집은 원래 90칸이었으나 옮기면서 70칸으로 줄었고 지금은 40칸 정도다. 근래 이 고택 대문채를 수리하다 대들보에 숭정 4년(1644년)이라는 연호를 확인했다고 한다.

교동법주는 이 물봉진사(최세구 아들 최만선) 고택(경주시 교동 69번지)에서 최세구의 고손자인 최경씨가 전통 방식대로 빚고 있다.

교동법주의 주원료는 토종 찹쌀과 물, 누룩이다. 누룩은 밀 누룩이다. 물은 사계절 내내 수량과 수온이 거의 일정하고 맛도 좋은 집안의 재래식 우물물을 사용했으나 요즘은 우물이 오염돼 쓰지 않는다. 술을 빚을 때는 물을 일단 팔팔 끓인 다음 식혀서 사용한다.

먼저 찹쌀로 죽을 쑤고 여기에 누룩을 섞어 밑술을 만든다. 이 밑술에 찹쌀 고두밥과 물을 혼합해 덧술을 담근 뒤 독을 바꿔가며 제2차 발효과정을 거쳐 술을 완성한다. 100일 정도 걸려 술이 완성된다.

색은 밝고 투명한 미황색을 띠며 곡주 특유의 향기와 단맛, 약간의 신맛을 지니고 있다. 알코올 도수는 16∼18도다. 찹쌀로 빚은 술이라서 술상에 술잔을 붙게 할 정도로 점도가 높다.

“교동법주는 밑술을 빚어 발효하는 데 10일, 덧술 익히는 데 60일, 숙성시키는 데 30일이 걸리는 백일주입니다. 그윽한 향에서 덕을 느끼고, 맑고 화려한 금빛에서 품위를 찾으며, 부드럽고 깊은 맛에서 선조의 얼과 정성을 헤아리게 되는데, 이것이 이 술을 마시는 품격입니다.”

교동법주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발효주여서 유통기한(1개월)이 짧을 뿐더러 현대식 공정을 거부하고 전통주조 방식으로 소량 생산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주에 가서 교동법주 안 마시고 오면 ‘헛갔다’는 말을 듣고, 돌아올 때 안 사오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교동법주는 일반 민속주와 달리 통밀누룩을 쓰며 옛날엔 밀을 직접 심었으나 요사이는 믿을 만한 농가와 재래종 밀을 계약 재배해 쓴다.

이렇게 빚어진 교동법주 맛은 경주를 찾는 각국 국빈과 명사들을 감동시키며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현재 부인(서정애)과 식품공학을 전공한 아들(최홍석·40)이 함께 빚고 있다.

최씨 집안의 반찬과 안주거리도 술만큼이나 명품이다. 쫀득쫀득한 쌀 다식과 꿀에 절인 송화다식은 혀 위에서 사르르 녹는다. 약과의 고소한 맛과 소고기 육포의 감칠맛은 교동법주의 품위를 더욱 높여준다. 참기름에 무쳐낸 명태 보푸라기는 주안상을 더욱 푸짐하게 연출한다. 메줏가루에 가지, 무청, 다시마, 박속, 부추, 닭고기, 소고기 따위를 넣어서 만든 집장도 잘 어울리는 안주다.

그리고 교동법주에 어울리는 특별한 안주가 있다. 가문의 내림음식인, 백김치의 일종인 사연지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고 새우로 국물을 낸 사연지는 경주 교동에 사는 최씨 가문에서 10대째 이어 내려온 김치로,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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