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밥차’를 왕따 만든 대구 서구청

  • 이연정,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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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05 07:38  |  수정 2015-11-05 10:01  |  발행일 2015-11-05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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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구청의 약속 불이행으로 인해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사랑해밥차 관계자들이 4일 대구시 서구 북비산네거리에서 서구청의 철수 요구에도 무료 점심 배식 준비를 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북비산네거리 급식 단체에
실내급식소 건립 약속 해놓고
1년 다 되도록 부지확보 못해
“급식소 이전” 민원만 부추겨

대구시 서구의 이동식 무료급식소 운영을 둘러싼 갈등이 확산될 전망이다. 지자체와 급식단체 간 대립을 넘어 주민 간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이 일고 있는 것. 특히 서구청은 급식단체와의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갈등을 조장하고 있어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4일 오전 9시30분쯤, 북비산네거리 원고개시장 입구에 ‘사랑해밥차’ 탑차가 도착했다. 차량에서 내린 무료급식 봉사단체 회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접이식 책상과 의자를 설치했다. 본격적으로 음식 조리를 시작하자 인근 상인들은 “음식 찌꺼기 등이 거리에 묻어 미관상 보기에 좋지 않다”며 항의했다. 일부는 아예 조리를 하지 못하게 수도를 잠그기도 했다.

주민 탁모씨(60)도 “무료급식을 꼭 이 장소에서 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사람이 많이 볼 수 있는 곳에서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것 아니냐”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수백명의 노인이 무료급식차 앞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매주 이동식 무료급식소를 찾아온다는 정모씨(80)는 “오래전부터 무료급식하기에 이곳만큼 좋은 곳이 없는데 왜 자꾸 막는지 모르겠다. 온종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서너시간이면 끝날 일인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이 아쉽다”고 했다.

급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일부 시민은 “왜 다시 여기서 급식을 하느냐”며 핀잔섞인 말을 내뱉었다.

이처럼 북비산네거리 이동식 무료급식소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배경엔 서구청의 안일한 행정이 한몫한다.

서구청은 지난해 12월 이 일대에 ‘명품 가로공원’ 조성사업에 착공하면서 이동식 무료급식업체 3곳의 운영을 중단시켰다. 대신 무료급식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건립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서구청은 1년이 다 되도록 실내 무료급식소 부지조차 선정하지 못한 채 뒷짐만 지고 있다.

이에 ‘사랑해밥차’는 지난주부터 다시 이곳에서 무료급식소 운영을 재개했다.

최영진 (사)사랑해밥차 단장은 “이른 시일 내에 실내 무료급식소를 지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재 대체부지인 원고개시장 공영주차장은 음식 조리를 위한 트럭 2대를 수용하기엔 무리가 있고, 민원도 끊이지 않아 운영이 무척 힘들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주민 간의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무료급식을 놓고 찬반 여론이 나뉘고 있는 것.

주민 정옥숙씨(75)는 “좋은 일인데 못하게 막는 것은 지나치다는 목소리와 길에서 노인이 음식을 먹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의견으로 나뉜다”며 “이와 관련해 큰 다툼이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주민 간 얼굴 붉힐 일이 생길까 우려된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구청은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청 관계자는 “주민 모두가 이용하는 만남의 장소로 공원을 조성했기 때문에 특정 단체가 점거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 급식단체를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무료급식소 부지는 대로변을 위주로 찾다보니 마땅한 장소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이연정기자 leeyj@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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