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의 철각(鐵脚) 황중창씨 마라톤 입문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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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20   |  발행일 2015-11-20 제36면   |  수정 2015-11-20
18년만에 풀코스 완주 1천회…“반복의 위대함 증명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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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제13회 상주 곶감 국제마라톤대회’에서 마라톤 풀코스(42.195㎞) 완주 1천회’를 달성한 황중창씨가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다.


‘마라톤 풀코스(42.195㎞) 완주 1천회 달성.’

철각 황중창씨(55). 그는 지난 15일, 뜀박질로 지구를 한 바퀴 이상 돌았다. 포항마라톤·광화문마라톤·100회마라톤클럽 회원인 황씨는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제13회 상주 곶감 국제마라톤대회’에서 3시간33분36초를 수립하며 전대미문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마라톤 입문 18년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그는 이날 감격의 순간을 남기기 위해 기념타월 200개에 ‘축, 황중창 마라톤 풀코스 완주 1천회 달성’이란 글자를 새겨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야생마’가 닉네임인 황씨는 포스코ICT에서 26년째 근무하는 철강맨이다. 42세 때인 1998년 봄, 경주에서 열린 벚꽃마라톤대회 포스터를 본 뒤 자신의 체력과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마라톤에 입문했다. 그는 등산과 달리기를 하며 몸을 단련하다 그해 10월 경주 동아마라톤 하프코스에 참가했다. 이후 2년간 하프코스에 집중하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풀코스대회에 도전했다. 황씨는 그해 3월19일 서울에서 열린 동아국제마라톤대회에서 3시간19분32초를 끊으면서부터 16년간 풀코스만 집중해 달렸다. 그가 수립한 최고 기록은 45세 때인 2005년, 서울국제평화마라톤대회에서 수립한 2시간46분55초다. 손기정이 24세 때 베를린올림픽대회 당시 수립한 기록이 2시간29분19초였음을 비교할 때 놀랄 만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로망인 서브스리(sub-three·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를 30회 달성했다.

“달리기는 젬병이었습니다. 예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초등학교 운동회 때 친구들과 8명이 같이 뛰면 끝에서 1~2등은 제가 도맡아서 했어요. 100m달리기를 하면 20초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지요. 그런 제가 마라톤에 빠져든 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힘든 순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인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가 길러지는 것 아닙니까.”

그는 1천회 완주를 한 이유에 대해 지루함을 넘어 반복의 위대함을 증명해보이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마라톤에서 최고의 덕목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입니다. 달리면서 힘들 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금언을 외치며 속도를 늦춥니다. 몸의 반응에 순응하면서 몸이 스스로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호흡을 고릅니다. 여유를 갖는 거죠.”

그는 마라톤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술, 담배는 물론 몸에 해로운 건 입에 대지 않았다. 지금도 평일엔 출퇴근 전후 거의 매일 1시간30분가량 집 근처 중학교 운동장을 돌면서 연습을 하고 있다. 주말과 휴일엔 공인을 받은 각종 마라톤대회에 나가 실전 경험을 쌓는다. 16년간 1주일에 1번 꼴로 완주를 한 셈이다.

“2시간40분대에 진입하지 못했을 때 버스를 타고 오면서 혼자 눈물을 훔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8월 혹서기,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리는 가운데에서도 완주를 했습니다. 눈이 내려 길이 빙판길이 됐음에도 뛰다가 넘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몸 컨디션이 비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이를 악물고 완주할 때도 있었습니다. 죽을 맛이지요. 오전에 춘천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가기 위해 포항에서 새벽 안개길에 차를 몰고 가 한숨도 자지 않고 완주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하지만 다 이겨냈습니다.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는 전국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엔 거의 다 참가했다.

“동쪽으론 울릉도, 서쪽으론 백령도, 남쪽으론 제주도까지 다 완주를 했습니다. 특히 울릉도는 코스가 험해 애를 먹었지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평일에 열리는 대회엔 참가를 못합니다. 700~800회까진 제가 가장 많은 완주 기록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둘째입니다. 통일이 되면 백두산에서 완주를 할 겁니다.”

현재 1천회 이상을 완주한 사람은 부산에 사는 임채호씨(67)이지만 완주 기록 말고 내용면에선 황씨가 훨씬 알차다. 그는 미국으로 원정을 가서 마라톤을 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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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마라토너의 로망 서브스리
풀코스 3시간 내 완주 30회 달성

완주메달은 사과상자로 두 상자
메달 녹슬어 고물상에 모두 팔아
기록증은 1천개 다 가지고 있다

평일엔 매일 1시간30분씩 연습
전국에서 열리는 대회 거의 참가
東 울릉도·西 백령도·南 제주도
모두 완주
통일되면 백두산서 달리고 싶다

한마디로 ‘마라톤가족’
부인까지 풀코스를 50회나 완주
아들·딸은 하프·10㎞코스 수차례


“이봉주 선수가 2001년 제105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할 때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보스턴에서 전 세계에서 온 마라토너와 함께 혼연일체가 돼 달렸는데 그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몇 년 전 각종 대회에서 받은 완주메달을 다 내다팔았다.

“완주 메달이 사과 상자로 두 상자나 됐습니다. 그런데 일부 메달은 녹이 슬었더군요. 그래서 고물상에 팔았습니다. 하지만 완주기록증은 1천개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1천회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 아닙니까.”

그는 지난 상주 곶감마라톤대회에서 전국마라톤협회(회장 장영기)로부터 마라톤 풀코스완주 1천회 기념패를 받았다. 기념패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에 입문해 불굴의 투지와 열정으로 마라톤 1천회 완주라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마라톤의 질(2시간46분)과 양(1천회)을 동시에 달성한 국내 유일무이한 지존이 되었습니다. 마라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족적을 기념하고자 정성과 혼을 모아 이 패에 담아드립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그가 18년간 마라톤을 계속하면서 몸에 이상이 온 적은 없었을까.

“허리와 무릎, 관절 등에 이상이 와 중간에 포기한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운동은 자신의 몸과 컨디션에 맞게 해야 합니다. 저같은 경우 대회 시작 1시간 전, 무조건 출발지에 도착해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합니다. 충분히 준비운동을 하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전 아직 싱싱합니다.”

그는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하는 워크브레이크주법(뛰다가 걷기를 체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뛰다가 걷다가 하며 완주하는 사람도 있어요. 마라톤이 무조건 뛰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는데 전 빨리 뛰는 게 덜 피곤하더군요. 사람에 따라 체질과 체력이 다르듯 그건 자신의 몸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보고 마라톤에 중독됐다, 미쳤다 하겠지만 세상에 미치지 않고 성과를 내는 게 있습니까. 김연아가 만약 피겨에 미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금의 김연아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어느 마라톤대회든 완주하는 과정에 반드시 한두 차례 고비가 닥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또 러너스하이(Runner’s High·뛰면서 느끼는 쾌감과 행복감)도 체험했다고 했다.

“인생사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기쁜 날, 우울한 날, 운이 좋은 날, 운이 나쁜 날 등 많지요. 마라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같은 경우 30㎞쯤 가면 러너스하이를 느낍니다. 그러다 35㎞지점쯤에 고비를 맞이하지요. 사람에 따라서 20㎞ 혹은 30㎞지점에서 주저 앉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곧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마라톤에 관한 각종 수식어가 많지만 전 마라톤이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익숙함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며 최선을 다한다면 ‘뿌린 대로 거둔다’는 믿음이 생길 겁니다.”

황씨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도 마라톤 마니아다. 부인 이향애씨는 50회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고, 아들은 하프, 딸은 10㎞를 여러 차례 완주했다. 그야말로 마라톤가족인 셈이다.

“마라톤은 별다른 장비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그야말로 드라마가 있는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열정만으론 안됩니다. 착실한 훈련이 동반돼야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앞으론 완주 횟수에 신경을 쓰지 않을 겁니다. 질적인 면을 보완하면서 성숙한 마라톤을 할 작정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가 달린 경험을 바탕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싶습니다. 또 봉사활동도 할 겁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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