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밀양 영남루와 천진궁

  • 류혜숙 객원
  • |
  • 입력 2015-11-20   |  발행일 2015-11-20 제37면   |  수정 2015-11-20
영남루 마루에 오르면 황학을 탄 신선도 부러워할 것 없으리 !
20151120
뒷문 입구에서 본 영남루 영역. 왼쪽이 영남루, 오른쪽이 천진궁이다. 정면은 일주문이다.
20151120
영남루는 우리나라 최고의 누각 중 하나다. 보물 제147호다.
20151120
단군 이래 역대 8왕조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천진궁. 만덕문 왼쪽은 밀성대군지단.
20151120
무봉사 대웅전. 아동산 절벽에 횡으로 길게 앉아 있으며 보물 제 493호인 석조여래좌상 주존불로 모시고 있다.
20151120
무봉사 무량문. 오른쪽으로 밀양강과 밀양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20151120
20151120
영남루 아래 밀양강가에 위치한 아랑각.


노랗게 채색된 반투명 유리조각처럼 반짝인다. 따사롭고도 총명한 빛깔이다. 영남루 뒷길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것은 한 그루 은행나무. 화석 같은 둥치가 그 나이를 어림잡게 하는 거대하고 고고한 나무다. 들은 절정으로 물들었고, 더러는 그림자보다 넓게 내려앉았다. 매 해가 새로이 아름답고 또한 매 해가 마지막의 아름다움이어서, 아름다움이 새롭게 인식될 때마다 마음은 살아있다는 경이로운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


영남루는 한국 최고 누각 중 하나
밀양강변 아동산 절벽에 자리잡아
마루·계단 등 보수 마쳐 ‘산뜻’

누의 맞은편에는 천진궁
단군과 역대 8왕조 시조 위패 모셔

가까이엔 무봉사와 아랑각
절벽 낀 산길의 운치 더없이 그윽

◆ 영남루와 천진궁

영남루는 밀양강변 아동산의 절벽에 앉아 있다. 일주문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보수 중 출입 금지’ 안내판을 본다. 하여 영남루의 뒤쪽 마을길로 오른다. 길은 영남루 영역과 닿아 있고, 느긋한 비탈길이라 어찌 보면 계단길보다 수월한 감도 있다. 모형 같은 초가 한 채가 보인다. 신라의 달밤, 애수의 소야곡 등을 작곡한 박시춘 선생의 옛 집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초가 옆에는 정자와 흉상, 노래비도 서있다.

여기에서부터 보인다. 커다란 은행나무. 담 속에 몸을 감추고는 천지를 뒤덮을 듯 가지를 뻗고 있다. 태양빛은 나무의 우듬지에 고여 매우 천천히 잎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나브로 흠뻑 젖은 나무는 상쾌한 얼굴빛으로 깃털을 떨어내듯, 물방울을 털어내듯, 잎을 내리고 있었다. 그의 촉촉한 그늘에 서서 영남루를 본다. 가림막이 쳐진 누각은 지붕만 드러내놓고 있다.

읍성 성벽에 매달려 가림막 속을 들여다본다. 건장한 기둥 사이로 몇몇 사람이 보인다. 신라시대에는 이곳에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이 있었다 한다. 이후 조선시대 객사였던 밀양관(密陽館)의 부속 건물로 지어져 우리나라 최고의 누각 중 하나로 손꼽힌다. 몇 해 전 영남루 누마루에 올라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몇 시간을 가진 적 있다. 지금 그 마루와 계단 등을 보수 중이다. 19일 보수를 완료할 예정이라 하니 이번 주말 영남루에 오르는 이는 새 목재의 신선한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남루 맞은편 너른 마당을 사이에 두고 천진궁(天眞宮)이 자리한다. 기와를 얹은 담장 위로 높이 솟구친 나무가 저마다의 색으로 빛나고 있다. 곱게 낡은 옥색의 만덕문을 지나 정면 세 칸의 천진궁을 마주한다. 내부에는 단군과 그 이래 역대 8왕조 시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중앙의 맨 윗자리에 단군의 영정을, 동쪽 벽에는 부여·고구려·가야·고려의 시조를, 서쪽 벽에는 신라·백제·발해·조선의 시조를 모셨다. 일제시대 때 일인들은 위패를 땅에 묻고 이곳을 감옥으로 사용했다 한다.

입구인 만덕문 왼쪽에는 밀양박씨의 시조인 밀성대군의 묘단이 있다. 밀성대군은 신라 경명왕의 장남으로 이곳이 그의 묫자리라 추정된다. 입구의 양쪽에는 해태가 앉아있고 비석 앞에는 무인석이 시립해 있다. 비석에는 ‘밀성대군지단(密城大君之壇)’이라 새겨져 있는데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의 글씨라 한다. 오른쪽 담장 아래에는 국화모양을 띤다는 석화(石花)가 피어있다. 돌 꽃은 비온 후 더욱 선명해진다고 하는데 어제의 비에도 내 눈에는 쉬이 감식되지 않는다.

◆ 무봉사와 아랑각

영남루 위쪽에는 무봉사(舞鳳寺)가 자리한다. 절집으로 가는 짧은 산길의 운치가 더없이 그윽하다. 일주문과 무량문을 잇는 근사한 돌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절벽에 기대앉아 있다. 무봉사는 영남루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의 부속암자로 신라 혜공왕 때인 773년에 법조 스님이 세운 암자라 한다. 처음에는 무봉암이라 했다가 고려 공민왕 때 영남사가 소실되자 무봉사로 승격되었다.

대웅전 한가운데에는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보물 제 493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불상은 옛 영남사 터에 전해 오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 한다. 화강석의 부처님은 검게 그을려 마치 철불처럼 보인다. 광배가 매우 화려한데 불상과 제 짝은 아니라 한다. 법당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고, 부처님 앞에는 밀양강과 밀양 시내가 펼쳐져 있다.

영남루 아래로 내려간다. 넓고 안정감 있는 계단은 은행나무와 참나무 류의 이파리들로 예쁘게 덮여 있다.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모퉁이에는 큰 병 앓은 흔적을 지닌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신령스럽게 서 있다. 노랑과 연두와 적갈색으로 물든 잎이 강 쪽으로 날아가고 있고 그 너머로 아랑각(阿娘閣)의 내삼문이 보인다.

아랑 낭자는 조선 명종 때 밀양부사의 외동딸로 성은 윤, 이름은 동옥 혹은 정옥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영남루에 달구경을 갔던 그녀는 괴한을 만나게 되자 죽음으로 순결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1930년 그녀를 기리는 비석을 세우고 비각을 지어 아랑각이라 불렀다. 이후 비각을 헐고 사당과 삼문을 지어 영정과 위판을 봉안했다. 비석은 내삼문의 왼쪽 협문 바깥에 고즈넉이 서있다.

아랑각 앞에는 강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영남루는 차양처럼 드리워진 대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무봉사도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강 건너편에 두 여인이 앉아 있다. 그녀들에게는 산의 큰 덩어리와 영남루와 무봉사가 한눈에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영남루 입구의 그 거대한 은행나무는 보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조금은 의기양양한 기분이 되었다. 다시 은행나무에게로 가는 길, 멋있는 펠트 모자를 쓴 노인들이 조곤조곤한 대화와 함께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밀양IC에서 내려 24번 국도 밀양시청 방향으로 간다. 교동네거리에서 좌회전해 영남루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밀양시장 바로 맞은편이다. 영남루 뒷길 초입에 공영주차장이 있다. 1시간에 천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