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수성구 범어동 감포은정복어 정명화 오너셰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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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20   |  발행일 2015-11-20 제42면   |  수정 2015-11-20
육수 사용 않는 참복지리 一味…‘곤’(복어 수컷의 정자)을 천연조미료로 사용해 설렁탕 같은 국물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수성구 범어동 감포은정복어 정명화 오너셰프
참복지리를 요리할 때 판박이 육수를 거부하고 수컷의 곤을 천연조미료로 사용해 설렁탕 같은 뿌연 국물을 표현해낸다.


복어. 중국에서 발흥해 일본으로 갔고 나중에는 한국에까지 스며든다. 복어는 한·중·일의 전유물이다. 유럽 등 그 밖의 나라에선 거의 먹지 않는다.한국의 복어요리는 원래 일제강점기 일식당에서 비롯된다. 일식당의 풀코스 요리 중 하나가 복어요리였다. 거기서 기술을 배운 요리사가 광복 직후 독립해 자기만의 복어요리를 선보인다. 일본은 코발트빛 큰쟁반에 얇게 썰어낸 사시미를 한점씩 올리는데 멀리서 보면 ‘매화’가 피는 것 같다.

대구는 부산 못지않게 복어 마니아가 엄청 많다. 특히 1960~70년대 경제도약기 숱한 사장과 고위 공직자의 숙취해소에 일조했다. 북어국과 대구탕도 메이저급 해장국이었다. 참고로 복어를 끓여냈을 때 탕보다는 국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 사골 정도를 우려내야 ‘탕’ 자격이 있다. 부산에서는 복어국을 ‘복국’이라 한다. 대표적 식당은 1992년 도청사건으로 대서특필됐던 ‘초원복국’. 그런데 요즘은 ‘이름보다 못하다’는 평가다. 마산시 남성동 어시장 근처에 전국 첫 ‘복요리거리’가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에는 대신동 네거리, 반월당 근처에 복 전문점이 적잖게 포진해 있었다. 특히 복명초등학교 근처에 있었던 ‘대하림’이 좌장격이었다. 상당수 사라지고 현재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복어집은 반월당 근처 ‘광성식당’과 계산동 ‘거창복어’, 서구 원대동의 ‘자갈마당복어’, 달서구에는 ‘성당·본동·월성복어’, 동구 ‘해금강’ 정도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수성구 범어동 감포은정복어 정명화 오너셰프
형형색색의 박제 북어를 박처럼 온벽에 주렁 매달아둔 정 셰프. 자신이 만든 태극 복어박제를 들고 감포은정복어를 지역의 참복 명가로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한다.



◆ 참복의 메카…감포은정복어

대구MBC 바로 동쪽에 있는 ‘감포은정복어’. 아는 사람만 아는 참복 전문점.

알록달록한 박제 복어가 벽에 수북하게 걸려있다. 태극문양을 그려놓은 복어도 보인다.

정명화(53)·엄홍섭(67) 부부 오너셰프. 호흡이 척척 맞다. 남편이 복어를 사와서 손질까지 해주면 아내는 그걸로 국을 끓인다. 절정의 복어 맛을 위해 가족이 똘똘 뭉쳤다. 부부를 비롯해 두 아들 창수·성준씨까지 가세했다.

정 셰프는 누가 인사를 해도 가끔 멍하게 받아넘길 때가 많다. 항상 장화차림. 음식에 올인한 탓이다. 맛의 일관성을 위해 체인사업도 고사했다. 아무튼 은정은 참복을 중심으로 한 고급 복어 시대를 열었다.

“공판장에서 ㎏당 6만~7만원에 거래되는 참복은 그 시절에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기 때문에 시중에서는 맛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감포 해역의 참복만 사용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수성구 범어동 감포은정복어 정명화 오너셰프
참복 마니아를 혀를 설레게 만드는 복사시미 미나리말이.



◆ 경주 감포항에서 태어난 은정복어

대구에서 태어난 건 아니다. 당시 경주 월성군 감포읍 현재 감포항 옆에서 ‘감포은정횟집’으로 출발했다. 시어머니(이윤분)는 경주는 물론 서울, 부산, 울산 등 경남권에서 더 알아주는 복어 전문가.

당시 은정은 33㎡(10평) 남짓한 허름한 식당. 호구지책으로 횟집을 열어 미주구리(물가자미), 도루메기, 참까삼(참가자미) 등도 팔고 복어 국도 팔았다. 나중에 복어로 특화된다. 국내 첫 대중적 음식칼럼니스트였던 소설가 벽파 홍성유는 월성군 식당 중에서 은정만 소개했다.

70년대 후반부터 감포항에도 수족관이 생기면서 ‘활어회 시대’가 개막된다. 항 주변에 은정을 비롯해 호궁, 한일 등 횟집이 들어선다. 은정은 오직 감포산 참복만 고집했다. 경주의 첫 호텔인 코오롱호텔 VIP 고객도 1시간 남짓 걸려 참복을 먹기 위해 은정으로 차를 몰았다.

시어머니는 2005년까지 일을 했고 이후에는 정 셰프 내외가 가업을 잇는다.

2000년대가 밝아지면서 동해안 국도7호선 주변에 횟집이 봇물 터지듯 생겨난다. 더 넓고 나은 시장을 찾아 2001년 생면부지의 대구로 건너온다. ‘그래도 감포은정복어인데…’라면서 승부수를 띄운다.

그런데 대구는 복어 요리만 즐겼지 복어 종류에는 캄캄했다. 대일 수출 때문에 대구에선 참복조차 맛볼 수 없었다. 고작 밀복·까치복·졸복·은복 정도만 유통됐다. 2000년대 고만고만한 복어집은 제일 저렴한 수입 냉동 은복에만 기댄다.

“다들 은정복어가 너무 비싸다고 투덜대더군요. 초창기엔 복어 마니아라면서도 복어와 아귀조차 구별 못하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진실과 정성은 통한다고 믿고 버텨나갔죠.”

은정은 요즘 가장 바쁘다. 참복 철이기 때문이다.

“매년 10월말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제철이죠.”

◆ 은정복어의 요리 비법

은정의 참복지리는 국물 포스가 남다르다.

잘 끓인 ‘설렁탕국물’ 같이 뿌옇다. 왜 그렇지? 기자는 무즙을 사용하기 때문인 줄 알았다. 알아보니 수컷 ‘정자(곤)’를 천연조미료로 활용하고 있었다. 진미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을 때 울림이 더 큰 법. 참복도 마찬가지.

그녀는 육수를 거부한다.

“대구에 와보니 다들 식재료 구분도 없이 맹목적으로 같은 육수를 사용한다는 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식재료가 좋다면 육수가 왜 필요할까요. 참복에는 절대 별도 육수를 사용할 필요가 없죠. 맹물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대신 수컷 정자인 곤을 적당히 넣으면 참복의 진미를 그대로 전해받을 수 있어요. 곤이 천연조미료 구실을 하기 때문이죠. 비법도 아닌 그 레시피를 시어머니한테 배웠어요.”

그녀는 요즘 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은복에 딴죽을 건다. “솔직히 ‘김 빠진 맥주’ 맛 같다”고 했다.

“싸면 그만이란 지역정서 탓인지 모르겠어요. 제철 제대로 된 참복을 제대로 된 가격에 먹는 게 더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녀는 대구에서 태어난 복불고기도 불편해 했다. “양념이 들어가고 각종 식용유가 들어가면 복어를 먹는 건지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를 먹는 건지 통 분간이 안 가죠.”

남편 엄씨가 참복 사시미에 대해 도움말을 준다.

“썰기 어렵다고 얼리면 맛이 죽어버립니다. 반드시 생물 상태로 얇게 베어내야 합니다. 복사시미 전용 칼은 면도칼처럼 생겼어요. 1㎜ 이하로 정교하게 썰어내야 하는데 절대 쉽지 않죠. 칼날이 밖을 향하지 않고 몸쪽으로 메스질하듯 포를 치는데 5㎜를 넘으면 질겨 먹을 수 없습니다.”

엄씨는 파란 접시는 일본 스타일이라 싫어하고 흰 접시 위에 포를 올린다. 가끔 미나리로 묶어낼 때도 있다. 고수일수록 고추냉이장에 찍지 않고 폰즈소스를 사용한다. 더 고수는 아무것도 찍지 않고 사시미째로 먹는다. 변하는 맛의 스펙트럼을 느끼기 위해서다. 10년전부터 국내에도 참복이 유통된다.

현재 은정 수족관에는 3종류(참복, 밀복, 까치복)의 복어가 있다. 참복도 혼참복과 까마귀(가라스)참복으로 갈라진다. 혼참복은 배쪽 지느러미가 흰색이고 까마귀참복은 검정색이다. 여긴 혼참복만 사용한다. 현재 참복사시미 한 접시 15만원. 참복지리는 1인분 3만5천원. (053)752-5271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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