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경북 맛 기행 .3] 칠곡 순대국밥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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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24   |  발행일 2015-11-24 제13면   |  수정 2015-11-24
입대날 엄마 손에 끌려 속 채우던 그맛…왜관驛前엔 ‘50년 순대국밥’ 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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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왜관역 인근 전경. 당시만 해도 철도는 주요 교통수단이었기에 왜관역 앞은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장소였고, 순대국밥집도 성업할 수 있었다. <칠곡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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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의 대표음식인 순대국밥. 칠곡은 순대 중에서도 특히 피순대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고, 순댓국에 들어가는 푸짐한 머리 고기는 칠곡 왜관읍 상인들의 후한 인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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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의 피순대는 돼지 내장으로 만드는데, 당면은 조금만 넣고 선지를 주로 넣어 검붉은 빛을 띤다. 다소 텁텁하지만 잡내가 없어 특이한 식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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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왜관읍에서 순대국밥 식당을 운영하는 신복희씨(57·왼쪽)와 시어머니 정호연씨(82)가 가마솥에서 돼지 머리 고기를 건져내고 있다.

전쟁 뒤 너나없이 배곯던 1960년대
캠프캐럴 생기면서 왜관역도 북적
驛앞 장터 부대찌개·순대국밥 인기

자식의 먼 입영길 배웅하던 가족들
어김없이 든든한 순대국밥 챙겨줘
통학생은 일부러 내려 한그릇 뚝딱

돼지사골 푹 우려 만든 구수한 국물
내장에 당면 조금 넣은 피순대 일품
지금은 허기 대신 추억 채우러 발길

◇스토리브리핑

순대국밥은 칠곡군의 대표적 음식으로 손꼽힌다. 경부선열차가 지나는 왜관역 앞에서 순대국밥을 팔던 것이 칠곡 순대국밥의 시초라고 전한다.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가축 부산물을 활용해 허기를 달래주던 서민의 음식이었지만, 그 추억만큼은 지역민의 뇌리에 깊이 간직돼 있다. 칠곡 지역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지금도 옛 순대국밥의 풍미를 그리며 왜관읍을 찾는 이들이 많다. 현재 왜관읍에만 10여곳의 순대국밥집이 성업 중이다. ‘이야기가 있는 경북 맛 기행’ 3편은 서민의 애환이 서린 칠곡 순대국밥에 관한 이야기다.

#1. 지역마다 다른 순대의 풍미

외식을 할 때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기준으로 음식점을 선택한다. 우선 자기가 선호하는 음식이어야 함은 물론이고 가격과 영양가, 음식의 질과 양, 장소와 서비스의 만족도도 함께 따진다. 여기에 시간대와 위장의 상태에 따라서 음식의 선택도 달라진다. 예컨대 속이 출출하다거나 숙취 여부에 따라 배가 든든할 음식이나 얼큰한 국이나 탕 종류를 찾는 게 그것이다. 또 남녀노소와 성장환경에 따라서 애호하는 음식의 종류도 각기 달라진다. 여기에 음식의 풍미를 즐기는 미식가쯤 되면 음식의 재료와 레시피, 색감과 형태까지 꼼꼼하게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음식을 선택하는 일에는 다분히 정서적인 기준도 적용된다. 어머니의 손맛이라거나 고향의 맛, 아니면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음식이라서 등등이 그것이다. 이 정도면 이미 음식은 우리의 허기진 속을 채워줄 식사의 의미를 넘어 고유한 전통과 시대상을 전해주는 소중한 식문화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칠곡의 순대국밥 역시 그러한 음식 중의 하나다. 잘 알다시피 순대는 돼지나 소 등의 내장에 선지나 채소, 곡물과 양념 따위를 채워서 익혀낸 음식이다. 따라서 같은 순대라도 지역에 따라서 각기 맛이 다르다. 그것은 순대에 들어가는 내용물이나 익혀내는 방식과 정성에 따라 그 풍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2. 왜관역과 함께한 반세기

사실 한국인치고 순대나 순대국밥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내의 어느 시장엘 가든지 순대나 순대국밥을 파는 음식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만큼 순대나 순대국밥은 우리네 서민들의 음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의 하나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흔한 순대 혹은 순대국밥이 천안의 병천 순대, 용인의 백암 순대 등과 더불어 칠곡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에는 뛰어난 맛도 맛이려니와 나름의 고유한 식문화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설에 따르면 칠곡에서 처음 순대국밥을 팔기 시작한 곳은 왜관 역사 앞이었고, 6·25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1960년대 무렵이었다고 한다. 적게 잡아도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가지는 셈이다.

원래 왜관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주둔한 곳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낙동강 나루를 이용해 배로 소금과 쌀, 콩 등의 교역물자를 조달하던 왜상(倭商)들을 관에서 관리하면서 생겨난 지명이다. 이후 일제 식민지시대에는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었고, 낙동강 나루와 연계한 철도 수송의 거점역인 왜관역이 개설되었다.

이후로 6·25전쟁이 끝난 1960년경에는 주한 미군기지인 캠프캐럴이 생겨나면서 군인들과 물자수송이 활발했던 왜관역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자연스럽게 역전을 끼고 옹기종기 장터가 형성되었고, 이즈음 해서 열차를 이용하는 뜨내기장꾼들과 읍민들, 군인들과 군속, 대구와 구미 등지로 통근학생들이 이용하는 식당들도 하나씩 들어서게 되었다. 이때 잘 팔려나간 음식 중의 하나가 부대찌개와 순대국밥이다.

또 당시 왜관역은 군 훈련소로 가는 장병들이나 병영으로 배치되는 군인들이 하루 정도 거쳐 가는 곳이기도 했다. 따라서 역 부근 여인숙에는 입대 장병을 따라온 가족들로 빈 방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야기로 밤을 새운 가족들은 너나없이 입대 장병을 데리고 역전의 순대국밥 식당을 찾게 된다. 행여 군대에서 배라도 주릴까봐 헤어지기 전에 한 끼나마 영양가가 높고 맛 좋은 순대국밥으로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고 싶은 부모들의 심정은 다들 한결같았을 것이다.

대구 등지를 오가는 통근학생들도 자주 순대국밥을 찾았다. 그런 연유로 예나 지금이나 당시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순대국밥을 찾는 출향인사가 드물지 않다고 한다. 화이트칼라는 물론이고 참전용사며 고령의 손님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개중에는 후일 국무총리를 지낸 이수성도 있었다. 그들도 가끔씩 학생시절을 떠올리며 왜관역에 내려 순대국밥을 먹고 갔다는 얘기가 이제는 전설처럼 떠돈다. 또한 당시는 기차의 연착이 일상적이던 때라 기차가 정차하면 내려서 순대국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떠나가는 열차손님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3. 순대국밥, 추억을 담다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던 시기에는 노무자들과 현장직원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인근 도축장에서 하루에 도축하는 돼지는 고작 두 마리 남짓이었다. 달리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이다 보니 도축장에서 받아 온 물량이 일찍 소진될 때가 많았고 오후 두세 시가 되면 문을 닫는 경우가 잦았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이들로부터 ‘배부른 장사 한다’는 빈축을 산 것도 이즈음의 일이었다.

요즘도 칠곡 순대국밥을 먹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는 외지손님들이 적지 않다. 인근 대구와 성주는 물론 서울과 부산, 혹은 여행길에 들러 순대국밥 전통의 맛을 보고 떠나간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 전통과 고유의 맛은 물론 우리네 서민들의 생활상을 담고 있는 칠곡의 순대국밥을 만드는 레시피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피순대’가 유명하다. 그것은 돼지 내장에 당면은 조금 넣고 선지를 주로 넣어 검붉은 빛을 띠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소하면서 약간은 텁텁한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국밥에 담겨 나오는 고기가 쫄깃하고 담백하며 내장 특유의 잡냄새가 없는 것은 소금을 넣은 온수를 사용하여 오랫동안 깨끗하게 세척하는 게 비결이라고 한다.

구수한 국물은 돼지 사골로 맛을 낸다. 사골은 오랜 시간을 두고 은근히 끓여야 제맛이 난다. 따라서 아직도 연탄불로 고기를 삶는 집이 많다. 비록 번거롭고 힘들지만 식당을 찾아주는 손님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순대국밥을 내기 위한 묘책인 셈이다.

광복 이후의 굴곡진 세월을 거치며 민중의 애환과 시름을 달래주던 한 그릇의 순대국밥. 이제 칠곡의 순대국밥은 대중음식의 하나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추억이 담긴 음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글=박희섭<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사진=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공동기획 :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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