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3부] (1) 대구 비산 7동의 현주소

  • 노인호
  • |
  • 입력 2015-11-30   |  발행일 2015-11-30 제3면   |  수정 2015-11-30
염색공단 불꺼지면 동네도 ‘OFF’…근로자들 빠져나가 ‘썰렁’
20151130
북부정류장에서 비산7동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에 우즈베키스탄 전문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안전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 중인 이곳은 외국인 근로자와 주민간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게 과제 중 하나다(왼쪽). 대구 달서구 두류1·2동에 이어 안전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 중인 북부정류장 뒤편 비산 7동의 상가 건물 내 점포 대부분이 닫혀 있다. 안전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해 이들 상가 내 빈 점포를 임차해 주민들이 함께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

대구 서구 비산7동(1천46세대)은 안전마을로의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해 8개 구·군청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해 오래된 주택가 등 주민의 불안감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안전마을 만들기 사업 대상지역을 선정했다. 지난해 달서구 두류1·2동에서 첫 사업을 시작했고, 올해 서구에서 두 번째 사업이 진행된다. 안전마을만들기 사업이 한창인 대구 서구 비산 7동은 지난해 안전마을로 변신에 성공한 달서구 두류 1·2동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달서구처럼 폐·공가는 없지만 상권침체로 문을 닫은 상가는 해결해야 할 숙제다. 달서구가 사람들이 집을 비우고 떠나면서 어울릴 사람이 적어진 것이 문제였다면, 이곳은 염색공단에 일하러 온 외국인 근로자와 조화를 이루는 게 과제다. 즉 피부색과 살아온 환경이 다른 외국인과 지역민들의 거리감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이를 지속가능하도록 유지해주는 공동체 조직 및 운영이 필요한 것이다. 달서구 두류 1·2동이 하드웨어쪽에 무게를 뒀다면 비산 7동은 소프트웨어 쪽에 중심을 둬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문 닫은 상가…어두운 골목길

상권 침체로 폐점포 곳곳서 쉽게 발견 
간판마저 사라지고 출입문은 부석부석  
퇴근시간 지나면 동네가 어둠속으로…
주민들 “길거리 돌아다니기 무서워요”

지난 10월8일 오전 11시30분쯤 비산 7동 만평교회 인근 상가 건물. 10개가 넘는 점포 중 문이 닫힌 곳이 절반 이상이었고, 몇몇은 아예 간판조차 없었다. 그렇다 보니 주변도 어수선했다. 일부는 한참 동안 비어 있었던 탓에 출입문이 비닐이 얇은 과자처럼 만지면 금방 부셔질 것 같았다.

염색공단과 주택가가 함께 있다 보니 낮 시간대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온기가 느껴졌지만 밤이 되면 퇴근과 함께 이곳을 대부분 빠져나간다. 그러다 보니 상권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몇몇 식당과 슈퍼마켓 정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택가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자 덩치 큰 외국인 근로자 3명이 무리를 지어 걸어가고 있었고 슈퍼마켓에서도 2명의 외국인이 물건을 골라 차에 옮겨 싣고 있었다. 골목가에 세워진 택시 뒷 유리창에는 대구에서 인천국제공항과 부산중국영사관으로 운행한다는 내용의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북부정류장에서 비산 7동으로 들어오는 또다른 좁은 골목길에는 우즈베키스탄 전문요리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장이 가동을 멈추는 저녁 시간대면 동네 전체가 어두워진다. 그러다 보니 골목을 다니는 게 무서울 정도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이 어두운 골목길에는 덩치 큰 외국인들이 무리지어 다니고 있다. 대구가 낯선 땅인 외국인 근로자들의 입장에서는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모여 다니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비산동 주민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두려운 존재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한 주민은 “그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겁이 나서 그들이 골목을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게 된다”면서 “말도 통하지 않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니까 그냥 무섭게 느껴진다”고 귀띔했다.


외국인과 주민의 관계맺기가 관건

실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 2천명 추정
범죄건수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불안’
빈 점포 등 활용 ‘만남의 장소’로 추진
다양한 행사통해 소통 “안전마을 시동”

비산 7동은 주변에 서대구초등, 북부정류장, 만평시장 등이 있고 지리적으로 공단과 주택복합 지역이다. 비산염색공단과 접해 있어 대기오염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높은 편에 속하며 주민들의 생활 환경도 전반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400여개의 건물 중 70% 이상이 노후 건물이다. 사업 대상 면적은 17만7천212㎡다.

이 지역은 대구 최대의 쪽방촌이 밀집해 있어 차상위층, 홀몸노인, 영세 서민층 등 저소득 소외계층이 많아 화재 등 생활안전 위해 요소도 적지 않고, 골목 중간중간 빈 점포가 늘어 우범지대로 전락할 가능성도 높은 곳이다.

또한 염색공단이 있어 적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가 살고 있지만, 지역 주민과의 조화는 쉽지 않다.

서부경찰서와 서구청 등에 따르면 비산 7동의 총 주민 1만3천여명 중 등록 외국인은 700여명이다. 하지만 실제 거주 외국인 근로자는 2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채희춘 비산 7동장은 “2~3년 전만 해도 외국인 범죄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특히 외국인 간의 칼부림과 집단 패싸움, 도난, 도박 등도 잦았다”면서 “예전에 한달에 1~2건 정도의 외국인 범죄가 일어났다면 지금은 석달에 1건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외국인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감은 아직도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탓에 비산 7동이 추진하는 안전마을만들기 사업은 외국인과 기존 주민과의 관계맺기에 집중할 계획이다. 물론 CCTV설치와 쉼터 조성 등의 하드웨어 개선도 함께 진행한다. 실제로 비산7동 전체 범죄 6천여건 중 이번에 사업이 시행되는 구역에서 발생한 범죄는 1천890건으로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채 동장은 “안전마을 만들기 사업과 관련한 주민설명회에서 CCTV설치 등을 통한 범죄예방과 쓰레기 무단 투기 단속 등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지만, 가장 관심을 보인 부분은 외국인 근로자와의 관계 문제였다”면서 “인근에 염색공단이 있어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데 이들이 항상 여럿 뭉쳐 다니다 보니 이들과 마주치면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다. 주민들, 특히 아이가 있는 주부의 경우 이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고 이 문제 해결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업 대상 지역에 살고 있는 이재화 대구시의원은 “귀가 시간이면 공단 내 대부분의 공장이 가동을 멈춘 상태다. 그렇다 보니 동네 전체가 전반적으로 어둡고, 골목길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며 “거기다 주말이 되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무리지어 다니기 때문에 기존 주민들은 제대로 돌아 다니지도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된다”고 진단했다.

이 시의원은 또 “달서구 두류동과 달리 일부 상가를 제외하면 폐·공가는 거의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안전 위협요소는 없어 보이지만, 사람간의 소통부재로 오히려 더 위협적인 상황이 잠재돼 있다”며 “외국인 근로자와 이곳에 사는 주민을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과 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한 단계 더 발전되고 공고한 안전마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러한 지역 사정을 고려해 비산7동 안전마을 만들기 사업은 하드웨어보다 외국인 근로자와 지역주민간 소통에 중점을 두고 이뤄질 예정이다. 주민참여를 통해 안전한 마을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공동체를 회복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안전한 마을을 유지해 나가도록 하겠다는 것.

비산7동 안전마을만들기 사업을 맡은 대구경북디자인센터 김영규 주임은 “외국인 인터뷰와 수차례 현지 조사를 통해 이들이 약속장소로 애용하는 마트 등 다양한 동선을 고려해 북부정류장 인근 빈점포를 임차해, 안전센터와 내외국인 만남의 장소를 만들고, 내외국인이 함께하는 프로그램과 알뜰장터 등을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