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희망을 품다Ⅱ] 대구 남양학교 지체장애2급 성명석 군의 희망歌

  • 손동욱,백경열,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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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30 08:00  |  수정 2015-11-30 08:00  |  발행일 2015-11-30 제15면
장애 딛고 세상과 소통하는 ‘성악 영재’ “꼭 성공해 할매·할배 보살펴 드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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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대구남양학교 음악실에서 성명석군이 성악 연습을 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나는 음악을 통해 모든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영화 ‘레이’는 마약에 중독된 시각 장애인이 음악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그렸다. 실존 인물로 알려진 레이 찰스의 생애를 다룬 영화로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은 장애를 극복하며 작곡하는 가수로 성공하는 데 발판이 된다. ‘아이들 희망을 품다2’에서 네번째로 조명하고자 하는 성명석군(17·대구 남양학교)은 지체장애 2급을 앓고 있는 학생이다. 성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아이였다. 큰 울림이 있었던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 성악의 ‘선구자’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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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석군이 대구남양학교 체육관에서 체력단련을 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지난 23일 오후 3시쯤. 대구 남양학교 음악실에 별안간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라는 중저음의 음색이 울려 퍼졌다. 매우 굵었지만 발음은 또렷해 전달력이 좋았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건 한 남학생. 남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성명석군이었다.

그는 흰와이셔츠에 회색 조끼를 받쳐 입었다. 반짝이는 파란색 나비넥타이가 의상의 포인트다. 하얀색 재킷을 입은 성군이 우렁찬 목소리로 열창하자 음악실 안이 쩌렁쩌렁 울렸다. 음의 높낮이에 따라 두 손은 이리저리 춤을 췄다. 1절을 마친 그는 3절까지 꼭 마쳐야 한다며 자신을 지켜보는 교사에게 ‘엄포’를 놓기도 했다. 잠시 후 자신의 분량을 다 채운 뒤에야 만족스러운 듯 가쁜 숨을 내쉬었다.

담임을 맡고 있는 김보민 교사는 “성군은 매주 수요일을 가장 좋아하는데, 방과후 동아리활동(4시간)과 합창부 활동(2시간)이 있다고 이유를 들 정도다. 이 밖에 일주일에 두 차례 레슨도 받고 있다”며 “발성 등 성악가가 되기 위한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데다 소질까지 있는 학생”이라고 말했다.


2013년 전국 콩쿠르서 1위 수상
현재 비장애인과 통합합창단 활동
혼자서 천안까지 오가며 맹연습

조손가정 환경서도 늘 밝은 아이
‘레슨 지원 끊길까’ 가족은 걱정만


성명석군은 중학생 때부터 남양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한 교사의 권유로 합창반에 들었던 게 성악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교내 합창부 활동을 하면서 성악적 소질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 그렇게 배워온 게 어느덧 5년째다. 지금은 합창부를 빼면 성군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을 지도해 주는 강사의 결혼식장에서 축가까지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악보를 보지 않고도 7곡은 거뜬히 부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곡은 ‘비목’과 ‘세레나데’이다. 성군은 유명 성악가의 영상을 직접 찾아가며 익힐 정도로 성악에 관심이 많다.

김 교사는 “지난해부터는 ‘단풍나무 합창단’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고, 여러 성악대회에도 참가해 기량을 뽐내고 있다”고 말했다. 단풍나무 합창단은 2008년 창단된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통합 합창단이다. 성군은 매주 목요일마다 혼자 KTX를 타고 천안 나사렛대학교에 가서 2~3시간씩 연습하고 돌아오곤 한다.

그간 수상실적은 성명석군의 노력을 증명한다. 2013년 7월 ‘전국지적장애인 합창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이후 10월에 열린 ‘제1회 전국 장애청소년 음악콩쿠르 기적의 오디션’에서 성악 부문 1등상을 수상했다. 이후 대구지역 장애인 관련 행사나 합창단의 정기발표회 등에 나가서 실력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4월에도 ‘제57회 밀양아리랑대축제 전국학생음악 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최영호 교장은 “성명석군은 명랑하고 쾌활한 데다 인사성이 밝아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을 좋게 한다”며 “성격도 다정다감해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먼저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그런 학생”이라고 말했다.

성명석군은 음악 이외의 활동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해 그는 스페셜올림픽 영남지역대회(육상 부문)에 참가했고, 정보화대회(e-스포츠 부문)에도 나갔으며 이 밖에도 △대구경북장애인예술제(합창부) △장애학생체육대회(역도 부문) △직업기능경진 대회(도예 부문) 등에도 나가서 이름을 알렸다.

정윤향 대구시교육청 장학관은 “운동 등 동적인 활동을 통해 활기찬 생활을 돕는 게 중요하다. 이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성군은 “중학교 때 음악을 시작한 뒤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 가족, 성명석을 일어나게 하는 힘

성명석군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형과 함께 살고 있다. 2001년 아버지가 투병 생활을 하다 끝내 숨을 거둔 뒤 어머니마저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은 형도 군대에 가 있어 성군은 음악을 벗 삼아 생활하고 있다.

그럼에도 참 구김이 없는 아이다. 점심시간이나 귀가할 때면 항상 할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한다는 성명석군. 성군의 할아버지는 “매번 ‘할아버지 사랑한데이~’라며 전화를 끊는다. 흐뭇하기 그지없다”며 “형제간 우애도 깊어서 형은 항상 동생을 챙기고, 명석이도 형을 잘 따른다. 형이 언제 휴가를 나오는지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성명석군은 “주말이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을 잡고 등산을 함께한다. 최근에는 수성못도 몇 바퀴 둘러봤다”며 “지난해에는 가족 모두가 바닷가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바다를 보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니 정말 신났다. 형이 휴가 나오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성군이 뛰어난 성악적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지난해 10월부터 대구시장애인재활협회에서 지원을 받아 성악 레슨을 받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이 상황이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비장애인인 형과 달리 명석이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한데, 이미 나와 아내는 노쇠해서 양육이 힘들어지는 상황이 곧 들이닥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성명석군은 그래도 자신감이 넘친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건 할아버지와 할머니, 형 때문이다. 물론 담임선생님하고 교장선생님에게도 고맙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결혼도 하고 싶고 꼭 바리톤이 되어서 성공한 뒤 가족들을 보살펴주고 싶다. 잘 키워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성군이 말했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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