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의심이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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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30   |  발행일 2015-11-30 제30면   |  수정 2015-11-30
20151130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

‘보이스피싱’ 주의하라는
공익광고 카피 지나친 감…
의심으로 이뤄낼 수 있는
행복과 평화 있을 수 없어
믿음은 포기 못할 가치다

아침 출근길. 싸늘한 초겨울 공기가 오히려 상쾌하다. 오랜만에 차도 막히지 않고 라디오에서 들리는 클라리넷 협주곡은 시원하고 감미롭다. 앞산을 돌아 순환도로를 벗어날 즈음 공익광고가 나온다. 요즘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보이스 피싱과 스미싱을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마지막 카피가 이상했다. “의심이 안심입니다.”

아마 광고 카피라이터는 ‘의심’과 ‘안심’이라는 대구(對句)와 운율에 무릎을 쳤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날로 교묘해지고 정교해진 보이스 피싱을 조심하라는 광고 문구로는 최선의 것이라는 기분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카피라이터의 직장 상사, 그리고 발주처인 공익광고협의회 직원들 역시 만족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허술하게 당하지 말고, 영리하게 대처하기 위한 기본적인 태도로 ‘의심’이라는 덕목이 있음을 온 천하 만민에게 알리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최선일까. ‘의심’을 권하는 사회. 물론 보이스 피싱과 스미싱을 조심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의심’을 적극 권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은 뒤숭숭하고 험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서로 믿지 않고 세상의 정의를 의심한다. 양심보다 이익을 탐하는 자가 넘쳐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믿음과 신뢰, 존중과 배려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의와 정상이 결국에는 실현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믿지 않으면 망가진다. 세상은 물론 자기 자신도.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어야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생각이 너무 순진한 거 아닐까. 한 치도 방심하면 안될 정도로 세상은 사악하지 않은가. 꼭 세계 평화나 국가 안정과 같은 거시적 어젠다가 아니더라도 일상사 주변을 보더라도 충분히 알고 또 경험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하게 노력하고 일한 사람보다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척하며 직장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이 더 빨리 출세하고, 법대로 세금을 내는 사람보다 거짓과 술수로 탈세를 하는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모은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로부터 초연하게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해서 결국 패배하고 버려진다면 그토록 고집한 원칙과 신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거듭 상념이 일어난다.

다시 아침 출근길이다. 어둠은 물러가고 해가 떠오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꿈을 갖고 일터로 나아가고 아이들은 학교로 간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금 이 순간 어떤 의심도 없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한 이유로 가득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충분히 선하고 정의롭다.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는 스스로 지키고 보존해야 할 공동의 가치가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다시 라디오에서 ‘의심’을 권한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는 일단 의심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몇 가지 의심의 역사를 가지고 살아왔다. 일단 어린 아이들에게는 낯선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의심하고 절대 따라가지 말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더 오래 전에는 주변의 사람 중 간첩이 있는지 의심하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일종의 다음과 같은 표어다.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앞에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우리 마을 간첩 있나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의심함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필요한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믿음과 신뢰, 존중과 배려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 태도가 서로 확인될 때 연대가 이뤄지고, 연대가 이뤄지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작게는 가족과 사회의 건강한 행복이고, 나아가서는 국가의 안정과 세계 평화다.

누군가는 여전히 이런 생각이 순진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깊이 생각해보라. 의심과 불신으로 이뤄낼 수 있는 행복과 평화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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