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취미는 필수과목이다

  • 심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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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30   |  발행일 2015-11-30 제31면   |  수정 2015-11-30
20151130

최근 ‘금수저’ 등으로 표현되는 ‘수저계급론’에서 취미도 계급의 한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개천에서 자란 서민들이 바쁘게 살다 보면 젊어서는 취미생활을 할 시간과 여유가 없고, 퇴직해서는 경제적 사정으로 변변한 취미생활 하나 못 가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칠곡군에 사는 할머니들이 ‘시가 뭐고?’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발간했다는 뉴스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인생2막, 100세시대에 무엇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렴풋이나마 방향을 짚어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됐듯이 할머니들이 시집을 낼 수 있었던 사연은 이렇다. 칠곡군이 몇 년 전부터 군민 전체를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인문학 사업의 일환으로 군내 18개 마을 할머니 250명이 한글을 배웠다. 이 중 84명이 한글로 직접 시를 쓴 뒤 칠곡군 교육문화회관의 도움을 받아 시집을 낸 것이다. 일상생활의 이야기를 전혀 꾸밈없이 생각나는 대로 글로 옮겼다. 평생을 가난하게 산 고단한 농촌의 일상이 시로 함축된 것이다. 할머니들은 평생 장터 간판 한번 못 읽다가 칠순, 팔순을 넘어 직접 지은 시를 읽으면서 인생에서 가장 값진 순간이라며 감격스러워 했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 지원 덕이 크지만 칠곡 할머니들은 노후에 참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칫 무료하게 보내기 쉬운 여생을 시인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최근 들어 직장에서 은퇴한 후 여가생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사실 산 날만큼 더 살아야 할 세월을 아무 의미 없이 보낸다고 생각하면 누구든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리고 취미가 없을 경우 치매를 비롯한 각종 질병에도 취약하다니 관심이 저절로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의과대학 교수직에서 퇴직한 후 다시 대학에 입학해 철학공부를 시작한 분도 있고, 지인들과 서당을 마련해 한학공부에 본격 뛰어든 분도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부들은 요즘 뜨개질 바람이 불어 회원수가 늘고 있고, 제과·제빵,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부동산과 주식 투자 공부에 열중인 사람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인생 2막을 설계하며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도시지역 50대 장년층의 여가생활 실태’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 대부분은 여가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었다.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을 얼마만큼 갖느냐는 질문에 주 1~2회 이상이라고 답한 사람은 3.1%에 불과했다. 월 1~2회 한다는 응답도 7.9%밖에 안됐다. 자기계발을 ‘거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3.5%에 달했다.

직장에서 퇴직한 후 부부가 취미생활 없이 무미건조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뒤늦게 성격 차이를 발견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이혼을 하는 노인이 늘고 있는 것도 우리사회의 불행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외부 일에 주로 신경을 쓰느라 부부 간 성격차이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부가 같이 붙어있다시피 하면 성격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번 삐걱대기 시작하면 서운함과 배신감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쌓이면 결국 치유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밖에 나가 새로운 취미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많다. 각 구청이나 공공도서관 사이트에 들어가면 무료로, 또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강좌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주부들은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충분히 취미생활을 가질 수 있다. 일상에서 내가 즐거워하는 모든 것이 취미활동이다. 부부 둘이 취미생활을 같이 하기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더 즐겁고 오래간다.
심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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