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조영래! 시대를 밝힌 사람, 뿌리는 대구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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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11   |  발행일 2015-12-11 제33면   |  수정 2015-12-11
타계 25주기 맞아 지역서도 재조명 움직임
20151211
서울지방변호사회관 1층 전시실에 전시된 조영래 변호사의 초상 사진. 그는 대구 태생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다.


12일은 인권 옹호의 초석을 다진 조영래 변호사(1947~90) 타계 25주기다. 11일 오후 서울지방변호사회관 대강당에선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천정배 의원, 이홍훈 전 대법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를 연다. 이날 행사에선 조 변호사의 흉상 제막과, 조영래상을 시상한다. 조영래와 인연이 깊던 21명의 지인을 인터뷰해 엮은 책‘조영래, 그의 삶을 이야기하다’도 공개한다. 이에 앞서 지난달 30일부터 11일까지는 조영래 기념 전시회가 열렸다.

조영래는 대한민국 현역 법조인이 가장 존경하는 법률가로 알려진다. 일제강점기 김병로, 허헌, 이인과 같은 항일변호사들과 이병린, 이돈명, 홍성우, 황인철 등 인권변호사 1세대가 개인의 양심에 따라 방어적이고 희생적인 변론활동을 했다면, 조영래는 협회를 조직화하고 상설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설립을 주도했다.

‘어떤 경우라도 친절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도록, 어떤 경우에도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진 자의 우월감을 나타내거나 상대방을 위축시키거나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다른 것은 다 못하더라도 이것만 해낼 수 있다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겠다.(1981년 12월13일 일기 중)’

일기에서 보듯 조영래는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세심한 배려 그리고 ‘절대겸손’의 미덕을 가진 사람이었다.

김선수 조영래 변호사 기념사업회 위원장은 “조 변호사는 엄혹한 독재의 시대에 학생운동가로서, 민주화운동가로서, 인권변호사로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7년간 인권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그 짧은 기간에 웬만한 변호사가 평생 해도 못 했을 중요한 사건을 담당했다.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을 비롯해 망원동 수재사건, 여성 정년차별사건, 상봉동 주민 진폐증사건 등에선 인권변론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 그는 시대적 과제를 소송의 형태로 제기하고 치밀한 준비와 다양한 전술로 승소판결을 받아냄으로써 사회를 개혁하고 인권수준을 확대했다. 그는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의 귀감이자 사표”라고 평가했다.

10년 전 ‘조영래 평전’을 발간한 안경환 서울대 법학대학원 명예교수에 따르면 조 변호사는 이미 한국현대사에서 중요한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조 변호사의 서울대 법대 2년 후배인 김윤상 경북대 행정학부 석좌교수는 “조영래 같은 사람은 세상에 두 번 나오기 어렵다”고 했다.

조영래 변호사 1주기를 맞아 펴낸 추모집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에는 그의 변론문과 언론에 발표한 칼럼, 그에 대한 기사, 일기, 편지, 시, 지인의 추모사로 채워져 있다. 이 가운데 전태일의 분신소식을 접하고 쓴 긴 시 ‘노동자의 불꽃, 아아 전태일’은 압권이다. 조영래는 6년간 수배생활 을 하면서 ‘전태일 평전’을 써 전태일을 세상에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현대사의 두 ‘횃불’ 조영래와 전태일은 대구 태생이다. 하지만 둘의 활동무대가 서울이었기에 대구에선 잊힌 인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조영래 25주기, 전태일 45주기를 맞아 대구에서도 두 사람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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