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동짓달 기나긴 밤을…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5-12-28 07:46  |  수정 2015-12-28 07:46  |  발행일 2015-12-28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동짓달 기나긴 밤을…

12월 동짓달은 1년 중 밤이 가장 긴 계절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예인(藝人) 황진이는 ‘이 긴 동짓달 밤’을 활용하여 임을 향한 절실한 그리움과 사랑을 천재적으로 표현한 명시를 남깁니다. 이 시에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 잘 저장했다가 임이 오시는 날 다 풀어놓고 두 사람이 잠도 자지 않고 밤을 지새우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 학생들이 밤을 지새우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핫(Hot)’으로 시작하는 각성제 드링크일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황진이가 살았던 16세기는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못해 그런 아름다운 시적 표현이 가능했나 봅니다. 역사적으로 잠을 쫓는 각성제가 본격 도입된 것은 산업화시대라고 합니다. 이후 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은 군인들을 무수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각성제를 개발했고, 일본은 태평양전쟁 중 공장에서 밤샘작업을 시키려고 마약류의 각성제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본이 사용한 것은 메스암페타민, 즉 필로폰이었는데 사실 이 필로폰의 어원이 재미있게도 그리스어 ‘Philoponus’인데 이는 ‘노동을 사랑한다’란 뜻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산업화시대에 공장에서 밤샘작업을 하던 직공들이 잠을 쫓기 위해 ‘타이밍’이나 ‘잠안와 정’ 등과 같은 각성제를 먹으며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도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할 때 이런 약을 드신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약은 모두 무수카페인으로 손톱만 한 약 한 알에는 커피 몇십 잔에 해당하는 카페인이 들어 있어 우리를 깨어있게 만듭니다.

이런 각성제 도움없이 동짓달 밤을 모아 임이 오신 날 모두 쓰겠다는 황진이의 시적 표현은 문학적으로 너무 아름답지만 의학적으로는 우리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유발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면역력이 떨어져 병에 걸리기 쉽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는 수면을 통해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 뇌에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허락합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수면은 자연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최고의 간호사’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우린 아직 수면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뇌신호를 측정하는 장비를 이용해 수면에 대한 비밀을 조금씩 밝히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발견은 우리 몸은 잠들어 있어도 뇌는 잠들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깨어있을 때보다 더 활발히 활동합니다. 수면 중 우리 뇌는 하루 일을 복기하면서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고, 하루 종일 활동하면서 만들어진 뇌 속의 노폐물을 청소합니다.

2013년 수면전문 연구자인 UC버클리의 매튜 워커 교수에 의하면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기억에 가장 중요한 뇌 속 해마에 영향을 주어 우리 뇌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이 40%나 감소한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잠든 사이 우리 뇌는 내일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공간을 정리정돈 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기억력에 문제가 생깁니다.

또한 우리가 잠든 동안 뇌 속의 청소시스템인 글림프시스템이 작동하여 뇌 속의 노폐물을 처리합니다. 2013년 덴마크 뇌과학자인 메이켄 니더가드 교수에 의하면 글림프시스템이 청소하는 노폐물 중에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고했는데, 이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에 쌓이게 되면 뇌신경세포에 손상을 주고 결국 치매를 유발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충분히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치매의 위협에 노출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니 우린 동짓달 기나긴 밤에는 뇌의 휴식과 내일의 새로운 추억 만들기를 위해 숙면을 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복된 2016년 새해를 맞으시길 바랍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