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과 케냐를 가다] <하> ‘기적의 현장’ 마드제니 초등학교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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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28   |  발행일 2016-01-28 제6면   |  수정 2016-01-28
‘동전 모아 새 교실’…대구 학생들 한푼두푼 정성에 현지인들 경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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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마드제니 초등학교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대구백화점과 ISJ커뮤니케이션 관계자가 준비한 미술수업에서 색칠공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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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남자 팔뚝보다 가는 나무 기둥에 진흙을 발라 만든 케냐 마드제니 초등학교의 옛 교실. 책걸상이 거의 없어 학생들은 교실 바닥에서 수업을 해왔다.

지난 17일 대구·경북 지역 학생들의 작은 동전으로 이뤄낸 기적의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월드비전 대구경북지부 관계자 등과 함께 아프리카 케냐로 향했다. 대구·경북지역 학생들이 한푼 두푼 모은 정성은 이 멀고 낯선 땅에까지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 사랑의 동전으로 지어진 학교 건물

19일 오전 11시30분쯤 도착한 마드제니 초등학교. 푸른 초원 위에 시멘트 블록과 양철지붕, 그 위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새 학교 건물 2개동 옆에 성인 팔뚝보다 얇은 나뭇가지 기둥에 흙을 붙여 만든 2개 동의 학교 건물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새 건물은 대구·경북지역 학생들이 지난해 모은 사랑의 동전 1억5천만원가량으로 지은 것이고 허름한 흙집은 기존에 쓰던 것이다. 별도의 출입문도 없다. 그냥 뚫려 있는 곳이 출입구다. 건물 외벽도 흙으로 대충 메운 탓에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건물 천장엔 전등이 달려 있었지만 전구는 없다. 교실 안에는 책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새 건물이 생겼다고 기존 건물을 비운 게 아닙니다. 원래 책상이 없어 바닥에서 공부합니다. 그래도 교실이 모자라 일부는 나무 밑에서 흙바닥을 공책 삼아 수업해요. 새 건물이 생겨도 예전 건물에서는 여전히 수업을 진행합니다.”


교실부족 학업포기 많았는데…
허름한 흙집 옆 새 학교 2개棟
석달만에 주민들 손으로 지어

난생 처음 미술수업 유치원생
방문단과 색칠놀이 함박웃음


“지역 학생들이 세운 새 교실이 생겼으니 기존 건물은 허무느냐”는 질문에 월드비전 밤바 사업장 교육사업담당자 메리가 놀라운 표정으로 말했다.

케냐는 유치원 3년, 초등학교 8년, 중등과정 4년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과정의 수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학교가 부족해 3만6천명가량의 아동 중 상당수가 학업을 포기하고 있다.

◆ 케냐 어른들도 놀란 학생들의 동전

“정말 학생들이 동전을 모아 이 학교를 세워준 겁니까?”

이날 학교 완공식에 참석한 이명환 대구칠성초등학교장이 인사말을 통해 “대구 학생들이 조금씩 모은 동전이 마드제니 학교를 짓는 데 도움을 줬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밝히자 이곳에 있던 현지 월드비전 관계자와 마드제니 학교 관계자가 모두 놀라며 한국에서 온 인사들에게 몇 번이나 이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이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몇 명이 큰 돈을 내서 된 것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학교를 세우기 위한 거의 모든 일을 직접 했다. 지난해 5월 시작한 공사에 맞춰 건축자재가 도난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섰고 직접 공사에도 나섰다. 그렇게 석 달 만에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는 새 학교를 만들어냈다.

아이들은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테러 등 불안한 사회에서 자라 잘 웃지 않는 이곳 아이들도 완공식이 열린 이날 하루만큼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이날 학교를 방문한 대구지역 방문단은 색연필 등을 준비해 직접 색칠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다. 이번 방문단은 사랑의 동전 모으기에 참여한 초등학교 중 현지 방문에 관심을 보인 6개 학교장, 20년 이상 월드비전과 함께 전세계 어린이를 돕는 대구백화점 관계자, 모바일 알림장 서비스 업체인 아이엠스쿨 대표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유치원생 엘리켄가군(4)은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정말 재미있다. 색깔이 더해지니까 신기하다”고 말했다.

카나지나 마드제니 초등학교장(52)은 “새 건물이 생겼지만 그래도 교실이 부족해 좀 더 생겼으면 좋겠다”면서 “(대구·경북) 학생들이 선물해준 학교 덕에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스티븐 칼로키 케냐 킬리피주 교육담당 부국장(43)은 “학교가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변했다”며 “앞으로도 좀 더 지속적인 관계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마드제니 학교를 찾은 대구지역 교장들도 이곳 학생과 교사만큼 큰 감동을 경험했다. “학생들이 모은 동전이 아프리카 오지에서 기적을 만드는 현장을 직접 보고 감격했다”는 이명환 대구칠성초등학교장은 “그동안 수차례 사랑의 동전 모으기에 참여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작은 동전이 이런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직접 보고 나니 올해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성대 대구와룡초등학교장은 “집에서 잠자는 동전만 모아도 학생들이 세계를 돌며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며 “올해부터는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도 이런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케냐 밤바에서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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