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 정도전 연구 전문가…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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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29   |  발행일 2016-01-29 제36면   |  수정 2016-01-29
“결국은 인재…지방 살리려면 지방 국립대 무상수준 입학 가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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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은 역사에서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관료로 30여년간 일했던 그는 민본과 위민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실천한 조선시대 경세가 정도전과 김육을 존경한다고 했다

역사 특히 사회제도에 관심 많아
정도전 같은 경세가 없어 안타까워

지난 대선때 문재인 후보편 선 것은
경제 패러다임 바꿀 기회라 생각해서

창조경제, 미래 보고 기초부터 닦아야
지금은 기업이익보다 직원 생각하라

서울 사람들에게 대구는 안중에 없다
스스로 낮추고 실용적인 자세 가져야

지방분권 위해선 헌법 개정 매달려야

 

2년 전 이맘때 TV 역사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다. 정도전은 조선 최고의 경세가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한 일등공신이다.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은 정도전 연구로 유명하다. 그는 통상, 산업, 정책 분야에서 경제관료로 30여년간 일하면서 틈틈이 역사공부에 천착해 정도전에 관한 2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현재 건국대 석좌교수로 있는 그를 지난 21일 대구에서 만났다. 그의 첫마디는 “요즘 대구는 좀 어떻습니까”였다. 대구에 관심을 갖고 묻는다는 건 그만큼 대구를 기억하고 사랑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2008년 봄 대구시 정무부시장을 사임하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클러스터사업과 산단재생 사업 등을 3년간 하다 대성에너지 사장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건국대에서 이공계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주로 한다. 이공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산학협력이 절실하다. 특히 공대생에게 인문학적 지식이 필요해 경제현상을 중심으로 가르친다. 책 읽고 학생 만나고 글 쓰며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다. 특히 조선시대 대동법과 균역법과 같은 사회제도가 어떻게 백성의 삶을 바꿀 수 있었나 하는 것 등을 연구하고 있다. 노비와 서얼 같은 신분제도, 왕과 신하의 권력분배 등 사회제도가 국가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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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역사의 사례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대동법의 경우 광해군 때 시작해 전국적으로 시행하기까지 100년이나 걸렸다. 양반 기득권 세력에 맞서 목숨을 건 관료도 있었다.”

▶관료, 기업인, 교수 등 다양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 어떤 일이 자신과 맞다고 생각하나.

“기업인과 교수는 사실 외도다. 벤처기업인은 리스크에 강해야 하고, 기업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데, 나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무원에 적합한 사람이다. 기업과 공공파트는 철학과 수단이 다르다. 정책을 입안하고 결과를 내는 데 관심이 많다. 대동법을 시행하는 데 앞장선 잠곡(潛谷) 김육을 좋아한다. 그는 한평생 대동법 실현에 목숨을 건 인물이다.”

▶이명박정부 때 경제부처 장관 물망에 여러 차례 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능력이나 덕이 부족한데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때 했으면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은 서지 않는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 대구사람을 많이 놀라게 했다. 보수적인 대구의 정치풍토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그 바람에 욕도 많이 먹었다. 고향인 청도와 대구에서 ‘자가 와 저기 있노’라면서 수군댔다. 선거가 끝난 뒤 ‘그때 그쪽으로 안 갔으면 더 잘됐을 텐데’라고도 하더라. 당시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성장과 복지 등 경제정책의 큰 틀에서 여야의 차이가 없었다. 나는 누가 과연 실천할 것이냐에 방점을 뒀다. 새누리당도 같은 공약을 했지만 기득권 세력이 강고해 경제민주화가 안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후보가 됐어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난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꿔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문 후보에게 갔다. 야권에 투사가 많았기에 현장 전문관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현장에 접목하고 싶었다.”

▶박근혜정부의 임기가 2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 평가를 한다면.

“창조경제를 하려 했으면 먼 장래를 보고 기본 틀을 닦는 것부터 해야 한다. 교육과 금융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경기부양 한다고 부동산규제 풀고 기업한테 잘해주면 일자리 늘어나고 공장을 지을 줄 아는데 아니다. 지금은 기업의 이익보다 직원의 주머니를 채워줘야 한다. 최저임금을 더 올리고 직원의 봉급을 인상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기업이 산다. 현재 비정규직 비율이 심각하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봉급을 같게 하고 장기적으로 비정규직에게 더 줘야 한다. 기업이 노동수요탄력성을 주장하지만 실제 인건비를 깎자는 것이다. 기업주도 성장에서 소득 주도 성장으로 가야 하고 증세와 자산소득과세를 강화해야 한다. 다만 한꺼번에 고칠 수 없다. 차근차근 조금씩 고쳐야 한다.”

▶어떻게 고쳐야 하나.

“장기적으로 하드웨어보다 소프트 인프라를 깔아야 한다. 지식서비스산업, 교육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창조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놀게 해야 한다. 창조는 튀는 것에서 나온다. 하지만 획기적, 혁명적으론 안 된다. 체제라는 것도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다. 정부도 좀 솔직해야 한다. 성장률은 3%밖에 안 된다고 고백해야 한다. 1% 올리려고 부양책 쓰면 망가진다. 대신 길게 보고 저출산과 어린이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모두 세종대왕이 되려 한다. 태종 같은 군주가 필요하다. 많이 가진 사람이 먼저 세금을 많이 내고 없는 사람이 내야 한다. 담뱃세 올리는 것은 꼼수다. 난 보편적 증세에 찬성한다.”

▶김범일 대구시장 재임시 2006~2008년 약 2년간 대구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했다. 2년간 부시장을 하면서 대구에 대해 느낀 점은 무엇인가.

“대구는 과거 향수에 빠져 있더라. 모이면 옛날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대구의 정체성을 살리더라도 외지인이 30% 정도는 돼야 한다. 대구는 폐쇄적인 면이 없지 않은데 역사를 보면 개방적인 사회, 포용하는 사회는 발전하고 폐쇄적인 사회는 다 망한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성골이 아니었다. 대구는 배타적이고 어른지향적이다. 젊은 사람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재량을 주고 양보해야 한다. 끼리끼리 문화, 젊은이가 기를 펴지 못하는 사회가 돼선 안 된다.”

▶부시장 재임 시 기억에 남는 것과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웃음) 대구경제의 한 축은 제조업이다. 섬유, 기계, 신소재 등 전통제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사회가 국제화되면 서비스산업과 하이테크산업이 발전하는데, 서울과 경쟁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대구는 ‘미니수도’로서 대구와 경북을 아우르며 교육, 유통, 의료 쪽으로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틀을 닦았다고 생각한다. 대구는 서울보다 공부하는 풍토가 적다. 저녁 술자리를 대강하고 저녁 문화에서 아침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외국인투자와 외지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땅을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다른 도시에서도 다 한다. 중요한 건 도시의 생활환경이다. 개방적이어야 사업을 하기 좋다. 처음엔 대구의 문화도 잘 모르고 의욕만 앞섰다. 솔직히 산업단지 이사장으로 안 가고 대구에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중앙과 지방에서 관료생활을 했다. 서울에서 보는 대구는 어떠한가.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서울에서 보면 대구는 사실 중요한 곳이 아니다. 서울 사람 눈에 대구는 안중에 없다. 대구 사람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과대평가를 한다.(웃음) 대구가 대한민국의 중심이라고 하는데 부산이나 인천보다 작지 않나. 스스로를 낮추고 실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서울에 전화 한 통 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상당 기간 그렇게 갈 것이고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유럽, 일본과 달리 봉건영주 제도가 없었다. 중앙집권적이었다는 말이다. 지방자치제를 강화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연방제에 준하는 정도로 인력과 예산을 지방에 넘겨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헌법개정에 목을 매야 한다. 난 지방분권에 찬성한다.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합치기 위해 연합해야 한다. 농업과 농촌을 구별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농업은 비전이 있다. 하지만 농촌은 복지로 가야 한다.”

▶‘정도전 조선 최고의 사상가’(2012), ‘광인 정도전’(2014) 등의 책을 내면서 정도전 연구로 정평이 나 있는데 정도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사회제도에 관심이 많다. 정도전은 경국대전을 만들고 과전법을 실시했으며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는 등 조선을 설계한 사람이다. 혹자는 그를 간신과 역적으로 부르는데 왜 그럴까 생각했다. 정도전은 경세가다. 나는 그런 인물이 못 되지만 우리 시대에 그런 경세가가 없나 안타깝게 생각한다. 책은 정도전을 재평가하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공교롭게도 책이 나온 뒤 정도전 드라마가 떴다. 정도전을 재평가하는 데 기여한 것 같다.”(웃음)

▶정도전이 실제 요동정벌을 꿈꿨나.

“혹자는 중국에 붙잡혀가지 않으려고 요동정벌을 기획했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요동정벌 일환으로 사병을 혁파한 것이다. 결국 이방원이 역습을 함으로써 그의 꿈은 좌절됐다. 정도전의 신권정치와 이방원의 왕권정치는 같은 배를 탈 수 없다.”

▶대구가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은 인재다. 정부의 ‘반값등록금’에 반대한다. 대신 지방국립대를 키워라. 지방국립대에 무상 수준으로 입학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의 유능한 인재가 지방에 머무를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대구의 제조업을 살리려면 산학협력이 절실한데 예컨대 폴리텍대학 같은 곳은 무상으로 해야 한다. 어느 정부든 어떤 제도와 시스템을 선택하는지가 성패를 좌우하다. 아테네 시민이 되려면 아테네에서 사는 부모가 있어야 했는데 로마는 정복한 지역의 사람을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포용했다. 저출산 고령화와 양극화 불평등이 심하다. 이런 경제사회시스템으로 가다간 망한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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