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표성흠의 캄보디아 편지] 캄보디아 국경넘기 해프닝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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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29   |  발행일 2016-01-29 제38면   |  수정 2016-01-29
길 묻는 이방인의 교통편을 두고 구경꾼끼리 싸운다…난 이런 관심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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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의 천년 된 벽, 그 아래서 천연덕스럽게 노점을 펼친 중년 아낙과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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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혀진 캔맥주 앙코르 운송차량. 너의 불행이 나의 행운인가? 행인들이 얼씨구나 하며 마구 집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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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 호이안에 있는 일본교. 일본교는 지붕이 있고 그 안에 고양이와 개를 모신 신상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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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경 검문소의 군인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는 너무 심심한 나머지 자기 오토바이로 나를 국경을 넘어 태워주었다.


맥주를 마시고 택시를 잡아탔다가
취기에 목적지 목덴을 잊어버렸다
중간에 내려 봉고차를 탔더니
몇시간을 달려 다른 차에 인계했다
차비를 취하려는 수작이었다

우리는 두세 시간을 더 허비하고
국경도시 쁠레이꾸를 거쳐
목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국경을 넘어 광활한 캄보디아 땅
봉고버스를 타고 몇시간을 달리자
트럭이 전복돼 맥주가 널려 있다
나도 공짜 맥주 마시기에 합류했다

베트남 호이안은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일본교’로 알려진 지붕 있는 다리(1593년 건립)와 안내 팸플릿에 나와 있는 오래된 벽만 찍고 말았다. 너무 많은 서양 사람이 벌거벗은 채로 활보하고 다녔기에 저들을 피해 앵글을 잡을 수도 없었지만 새로 덧칠하고 수리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집이 많아 별로였다. 아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후 대대적인 손질이 있었던 것 같다. 고전적인 분위기를 기대하고 갔던 만큼 실망이 컸다. 중세 무역 항구답잖게 완전 국적불명이 돼버린 듯하다.

한 가지 흥미를 끄는 것은 투본강의 하구와 맞닿은 선창이었다. 지금은 별 볼일 없는 지역이 돼버렸지만 이 도시가 번성했던 저 옛날에는 무역항으로 빛났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노이의 귀빈식당 옆에 사립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한국의 화산이씨와 관련 깊은 학교라 들었다. 고려 시대에 여기서 출발한 한 왕족이 옹진반도에 도착해 식읍을 받아 귀화해서 고려인이 된 역사적 사실이 있다. 화산이씨의 시조가 된 이 왕족은 당시 왕권다툼에서 일어난 골육상잔이 싫어 배를 타고 스스로 나라를 떠난 인물이라 했다. 그 후손 중 한 사람이 베트남으로 다시 귀화했고 베트남에서는 그를 왕족으로 후히 대접해 받아들임으로써 양국간의 우의를 돈독하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이야기다. 그들 화산이씨 종친회에서 후원하는 학교가 그 학교라 했던가. 그 사립명문의 조회 광경을 사진 찍던 일이 기억난다. 1천년 전에 이 항구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사람이 무역풍을 만나 한반도까지 밀려 가 거기서 정착을 했다는 스토리는 당시 고려로 향하는 동아시아 해로의 단편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소설의 자료로도 충분하다.

여기서 뜻밖의 소재를 얻는다. 이제 참족의 정체성을 캐기 위해 ‘미선’을 가 볼 필요가 없게 된다. 미선은 이미 미군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유적지다. 사진자료를 통해서 본 바로는 벽돌로 만든 힌두교 사원 몇 개뿐이다. 시바신을 모셨던 흔적으로 링가가 있다는 정도의 정보지 예술적 가치가 있는 사원은 죄다 폭격을 받아 망가졌다. 앙코르 유적에서 수없이 보았던 허물어진 돌무더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면 굳이 가 볼 필요가 없을 일이다. 그러나 미선은 4세기 말 바드라마 바르만왕 치하에 있을 때 건설되기 시작해 13세기 점령당할 때까지 종교중심지였다고 하니 궁금증이 일기는 한다. 그렇지만 내 여행과 내 소설의 의문점은 그 당시의 교통편이었는데 쉽게 풀렸다. 계절풍인 것이다. 왜 미처 그 생각을 못 했을까 1천년 전 베트남 왕족이 배를 타고 한반도로 건너 갈 수 있었다면 내 소설 ‘직지’의 주인공 경한도 이 뱃길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가능해진다. 뱃길이 있었던 것이다. 야호! 이젠 직지를 찾는 이 취재여행을 끝내도 좋다.

◆레타인~오야다우 국경을 넘는다

미선행을 포기하니 돌아갈 일만 남는다. 그러면 국경을 향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스마트폰이 제시하는 가장 빠른 캄보디아행은 레타인~오야다우 국경을 넘는 코스다. 그러자면 일단 목덴이라는 곳까지 가야한다. 거기는 국경도시다. 어떤 사람들은 다낭으로 들어가서 차를 타야 한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다낭에 들어가도 어차피 국도로 다시 나와야 하는 길이니까 택시를 타고 1번 도로까지 나가 거기서 차를 잡는 게 지름길이라 한다. 길을 묻는 이방인의 교통편을 두고 구경꾼들끼리 옥신각신하다 싸움질이다. 나는 이런 관심들이 좋다. 남의 일에 일체 무관심한 도시인에 비해 얼마나 순진한가. 이젠 한길가에서 차 잡는 일에도 이력이 나 있으니 그 편이 낫지 싶다. 캔맥주를 하나 따 마시고 급한 대로 택시를 잡아탄다. 일단은 1번 도로까지 나가 지나가는 차를 잡는다는 작전이다. 목덴이 목적지인 것만 알면 된다. 그런데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 맥주의 취기 탓에 그만 목덴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포스팅 해두었던 스마트폰의 지도조차도 햇빛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차를 세우긴 했는데 갑자기 행선지를 댈 수가 없다. 이런 낭패가 있나. 이래서 술은 안 된다. 맥주 한 캔에 기억을 잊어버리다니. 겨우 목적지를 찾아내 봉고차를 타긴 했는데 이 차는 그쪽 방향의 차가 아니다. 그런데도 무조건 타라하더니 몇 시간을 달려 퀴논에 거의 다다를 즈음해서야 지나가는 다른 차를 세워 우리를 인계한다. 그 사이 달려온 거리에 대한 차비를 취하려는 수작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두세 시간을 더 허비해 빙빙 두르는 코스를 통해 한밤중에 국경도시 쁠레이꾸를 거쳐 목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호텔이 있어 다행이었다.

◆ 맥주트럭 전복돼 찻길에서 노숙

다음날 아침 목덴에서 국경 마을 레타인에 가는 봉고를 탔는데 손님이 쌤과 나밖에 없다. 국경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하품을 하다가 손님이 오니까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출국 수속은 간단하다. 스탬프를 찍고 건물을 나오니 제복을 입은 군인이 다가온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내 목에 걸린 카메라를 보고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단다. 얼마나 심심했으면 스스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자청할 것인가. 제복을 입은 그와도 기념사진을 함께 찍는다. 그런데 쌤은 벌써 저만큼 걸어가 버렸다. 베트남에 대한 괜한 반감이 일어 한시라도 빨리 캄보디아 땅을 딛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두 갈래 황톳길이 나 있어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걸음을 멈추고 서버린다. 사진을 찍던 군인에게 캄보디아 초소가 얼마나 머냐니까 오토바이를 끌고 나와 뒤에 타라 한다. 시동도 걸지 않고 언덕을 내려가는데 울퉁불퉁한 비포장 황톳길이다. 100m도 채 안 간 언덕 아래가 바로 캄보디아 출입국사무소다. 이제 막 출발하려던 미니버스가 우리를 보고 기다린다. 두 사람이 타니 자리가 다 차버린다. 국경을 먼저 넘은 사람들은 아마 몇 시간을 기다린 모양이다.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말 한 마디 없이 입국수속을 해준다.

황량한 미개척지 캄보디아 땅, 광활한 정글이 이어진다. 봉고 버스는 파크나이에 멈춰 더 이상 가지 않는데 파크나이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세워진 도시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노선버스가 없는 상태라 온 사방에 묻고 또 물어 겨우 영업용 차를 찾아내 거기 편승하기로 한다. 이게 여행의 요령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교통편은 대개가 다 그렇다. 오토바이나 자가용 영업차는 흥정을 잘해야 한다. 아니면 바가지를 쓴다. 파크나이에서 콤퐁 참까지를 10달러씩에 흥정을 했다. 몇 시간을 지나 국도에 들어서자 캔맥주를 운송하던 초대형 트럭이 뒤집혀져 도로를 막고 있는 교통사고 현장을 만났다. 사방에 널브러진 채 나뒹구는 맥주 냄새가 진동을 한다. 계속해서 상하행선 차들은 밀려 일대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 판국에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맥주를 따 마시는 사람, 술을 따라 버리고 빈 캔을 모으는 사람, 맥주 상자를 자기 차로 옮기는 사람 등 별의별 인간군상을 보게 된다. 꼼짝없이 길 위에서 밤을 새게 생겼다. 소통이 되자면 한 사나흘 걸릴까. 여기저기 해먹까지 치는 사람들도 보인다. 우리도 어느덧 공짜 맥주 마시기 대열에 합류한다. 밤새 해먹 아래 빈 캔이 개미집처럼 수북하게 쌓였다. 누가 피웠는지 모를 모닥불 사이로 별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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