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춘천 닭갈비

  • 이춘호
  • |
  • 입력 2016-01-29   |  발행일 2016-01-29 제42면   |  수정 2016-01-29
춘천 시민에게는 식상한 맛…춘천이 ‘닭갈비왕국’된 것은 맛투어족 덕분
20160129
철판에서 갖은 채소와 함께 볶아내는 닭갈비. 춘천 시내에서 제일 먼저 생긴 명동닭갈비촌. 외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20160129
20160129
신북닭갈비거리는 일명 닭갈비·막국수촌으로도 불린다.
20160129
참숯석쇠에서 굽는 닭불고기.

엄밀히 말하면 춘천은 막국수보다 ‘닭갈비 고장’이다.

막국수는 강원도에 모두 4인방이 있다. 맏형 격은 춘천, 둘째는 봉평, 셋째는 원주, 넷째는 인제·횡성·홍천·양양 등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구의 대표 메뉴인 따로국밥이 정작 대구사람한테 크게 어필되고 있지 못하듯 춘천 시민들 역시 닭갈비를 다들 식상해한다는 것이다. 춘천 닭갈비 대박 신화는 편리해진 교통망과 연이은 방송 노출 덕이다. 2001년 중앙고속도로 대개통과 2011년 12월21일 춘천행 지하철 개통 후 주말 서울 등 경기권은 물론 경상도권에서까지 몰려온 맛투어족 덕분에 춘천은 ‘닭갈비왕국’으로 등극한다. 덩달아 서울~춘천 사이에 있는 강촌과 대성리역권도 닭갈비벨트로 묶인다.

◆ 춘천닭갈비의 유래

춘천닭갈비는 크게 닭불고기와 닭갈비 스타일로 나뉜다. 닭불고기는 ‘석쇠구이’, 닭갈비는 ‘철판볶음’이다. 대구에 내려온 건 철판볶음형이다. 닭불고기가 선배 격이고 닭갈비는 90년대 이후 등장한 신세대 스타일로 보면 된다.

강원도 농업기술센터가 2003년부터 춘천닭갈비의 유래를 찾아나섰다. 그 결과 춘천닭갈비의 발상지는 춘천 중앙로2가 18번지. 현 삼성생명 주차장과 주차장 옆 삼성생명 현관 계단 사이에서 판자로 된 조그만 돼지갈빗집이 59년에 생겨난다. 그 당시에는 버스터미널로 사용되었으며 인근에 있는 현 중앙로2가 11번지 조흥은행은 강원합승 종점으로 사용된다. 60년 어느 날 거기서 돼지갈빗집을 운영하던 김영석씨(작고)가 우연찮게 닭갈비를 요리하게 된다. 돼지고기를 구하기 어려워 대신 닭 2마리를 사 와서 닭을 토막 내 돼지갈비 같은 최초의 닭갈비를 만든 것. 닭갈비는 이후 드럼통 위에 무쇠판을 올려놓고 연탄불을 지펴 닭갈비를 구워 파는 닭갈비 포장마차, 연탄닭갈비(연탄과 석쇠 이용+구이 형태), 숯불닭갈비(숯과 석쇠이용+구이형태), 춘천닭갈비(무쇠판이용+볶음 형태) 등으로 진화를 거듭한다. 70년대 초부터는 닭갈비만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71년 지금과 같이 둥근 철판 형태의 11㎜ 두께 닭갈비판이 등장한다. 양배추, 썬 고구마, 가래떡 등을 양념한 닭고기와 함께 볶아 내는 오늘날의 춘천닭갈비 모습을 갖추게 된다. 300개 넘을 것으로 보이는 업소마다 모두 자기가 원조라고 할 정도다. 김씨의 사망과 가게 폐업으로 현 춘천닭갈비 원조집은 없다고 봐야 된다.

강원대 동물생명과학대 이성기 교수가 춘천닭갈비의 산업화 과정을 면밀하게 연구한다.


돼지고기 못구하자 닭을 사서
돼지갈비처럼 구운 것이 시초

석쇠구이 닭불고기가 선배 격
철판볶음 닭갈비는
1990년대 등장 신세대 스타일

닭갈비집 명동 등 7곳에 산재
맛 비슷비슷하니 홍보전 몰두


“서민과 함께한 춘천닭갈비는 영세상인들에 의해 숯불구이에서 불판구이로 전환되어 판매되어 왔다. 초창기부터 줄곧 뼈를 포함하여 통마리 닭을 잘라 팔아온 형태가 90년대 이후부터는 서서히 뼈 없는 닭갈비·닭다리 고기만으로 만든 닭갈비로 전환되었다.”

이 교수는 “뼈 없는 닭고기와 닭다리 고기만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합된 측면도 있다. 또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 다리 고기의 출현으로 뼈 없는 다리 살을 사용한 원인도 있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원료육뿐 아니라 토막 내는 방법, 닭고기 부위, 냉동육이나 냉장육, 수입육 사용 여부, 양념을 비롯한 가열방법 등에 대한 과학적, 행정적 품질관리 체계가 미비했다. 춘천닭갈비 발전을 위해 2004년 9월 당시 최성동 시의원이 중심이 되어 ‘춘천닭갈비 발전연구회’를 설립한다. 이후 춘천닭갈비협회도 발족된다.

그 시절 춘천 지역에는 양계장이 많았다. 평소에 닭백숙, 닭튀김 등 다양한 닭요리에 익숙해 있던 춘천 주민들의 입맛을 닭갈비가 사로잡는다. 맛과 푸짐한 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서민들과 대학생, 휴가나 외박을 나온 군인들에게 큰 인기였다. 현재 닭갈비는 1인분(300g)에 1만원 남짓, 70~80년대까지만 해도 150g 정도의 닭갈비 1인분 값이 100~500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춘천닭갈비는 ‘대학생 갈비’ 또는 ‘서민 갈비’란 별명이 붙었다.

◆ 홍천닭갈비와 춘천닭갈비

원래 닭갈비의 탄생지는 춘천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홍천군이다.

홍천식 닭갈비는 냄비에 육수를 넣고 끓이는 ‘닭볶음탕’. 양념한 닭과 각종 채소를 철판에 볶아내는 춘천의 닭갈비와는 요리 방법이 전혀 다르다. 갈빗살을 전혀 사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닭갈비라 이름 붙여진 것은 원조가 뼈째 포를 떠 석쇠에 구워 손으로 잡고 뜯어먹는 형태였기 때문. 이제 뼈 있는 닭갈비(1천원 더 비쌈)는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춘천닭갈비는 대부분 적당한 크기로 토막 낸 닭고기를 양념장에 버무려 7~8시간 이상 재운다. 각자 비법이 따로 있지만 양념장에는 다진 마늘과 생강, 양파, 고춧가루, 설탕, 간장, 맛술 등 20여 가지 재료를 사용한다. 이후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도톰하게 썬 양배추, 고구마, 당근, 깻잎 등과 함께 볶아 먹는다. 타 지역에서 맛보는 닭갈비도 이와 비슷하지만 춘천닭갈비만의 특징으로는 닭고기 토막이 더 크며 쫄면이나 라면 사리가 아닌 우동 사리만을 쓰는 것을 들 수 있다.

◆ 춘천닭갈비 골목

춘천닭갈비는 대구의 막창곱창 골목처럼 명동, 낙원동, 후평동, 온의동, 만천리, 동면, 신북면 등 모두 7군데에 산재한다. 외지인들에게는 명동만 잘 알려져 있다.

제일 먼저 강원도청 근처에 있는 번화가 ‘명동닭갈비골목’을 찾아봤다. 꼭 대구의 평화시장 닭똥집골목 초입을 연상시킨다. 행정구역상으로 여기는 조양동. 그런데 1960년대 요선동시장이 큰 화재를 당해 중앙로와 조양동 사이가 공백이 된다. 춘천시와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불탄 자리에 새로운 쇼핑가를 꾸밀 계획이었다. 그래서 벤치마킹한 게 서울 명동. 그렇게 해서 춘천에 명동이 생겨난다. 68년부터 명동 골목에 우미, 육림, 뚝배기집, 대성 등 4개 업소를 시작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닭갈빗집들이 들어서면서 명동닭갈비골목이 형성된다. 현재는 135m 골목에 16개 업소가 성업 중이다.

닭갈비골목에 위치한 업소들은 93년 ‘계명회’라는 친목단체를 설립했다. 한류드라마 ‘겨울연가’의 영향으로 남이섬을 찾은 일본 여성팬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관광코스로도 이름을 날렸다. 외국 관광객을 위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함께 표기했다. 골목 곳곳에는 조형물과 경관 조명을 새롭게 설치했다. 명동과 브라운5번가 입구 등 닭갈비골목으로 통하는 길목 3곳에는 조형물과 문화홍보판을 설치했다. 골목 중간에 포토존을 설치하고 휴게공간을 마련했다.

초창기 버전의 닭불고기가 먹고 싶어 지척에 있는 ‘원조숯불닭불고기집’으로 갔다. 현재 춘천닭갈비 업소 중 최고참급이다. 좋은 시설 운운하는 사람에겐 별로일 것 같다. 명동골목 번쩍거리는 매머드 업소보다 훨씬 허름한 집이다.

참숯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타는 고기가 꼭 대구의 북성로 돼지불고기를 닮았다. 맛은 범상치 않았다. 국내산 냉장육이기 때문에 가능한 맛이다. 여느 프라이드치킨집의 바비큐치킨과는 차원이 다른 깊은 맛이었다. 원조 음식은 이래서 본바닥에서 먹어야 되는 모양이다.

그다음으로 유명한 닭갈비거리는 소양강댐에서 지척인 ‘신북닭갈비촌’. 여기는 춘천 3대 막국수 중 하나인 샘밭막국수 등이 포진하고 있어 ‘막국수거리’로도 불린다. 근처에 막국수체험박물관까지 있다. 30여 개 업소가 너무 현대풍인 게 아쉬웠다. 맛은 비슷한데 업소 간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상당수가 방송에 노출된 업소라 현수막 홍보전이 너무 뜨겁다. 외지인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럴 땐 덜 유명한 집이 유리하다. 그 거리에서 가장 유명하기도 한 ‘통나무집’, 승용차로 가득하다. 소문맛에 길들여진 사람은 하루를 기다려서도 그런 집에 들어간다. 하지만 기자는 노선을 바꿨다. 한산한 ‘마적산닭갈비’를 찾았다. 유호영 사장이 정색했다. “맛은 솔직히 엇비슷하다. 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정도는 서로 다르다. 이게 문제다. 유명함이 다른 업소의 장점을 밀어버린다. 조만간 유명 경쟁은 끝나고 가장 위생적인 집이 어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디 그의 전망이 맞길!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