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시리즈 통·나·무] 대구공동모금회 57호 아너소사이어티 김성태 한백 F&S 대표

  • 최미애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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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30   |  발행일 2016-01-30 제5면   |  수정 2016-01-30
“대학생 기부 기사 보고 동참 결심…기부문화 확산에 도움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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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대구 동구 방촌동에서 만난 김성태 한백 F&S 대표. 김 대표는 “대구 지역에서도 더 많은 기부자가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기부는 내 복을 짓는 것입니다.” 지난 27일 대구 동구 방촌동에 위치한 자신의 공장에서 만난 김성태 한백 F&S 대표(53)는 기부의 정의를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는 1억원을 기부하기로 해 대구의 57호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 회원으로 29일 가입했다. 김 대표는 10여년 전부터 대구 지역의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거나 자신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빵을 기부했다.

◆ 어려운 형편을 딛고 일어서다

창녕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아버지 사업 때문에 대구로 이사와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다녔다. 시외버스 회사를 운영했던 부친 덕분에 김 대표와 김 대표의 형, 동생들은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김 대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부친의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온 가족이 야반도주를 해야 했던 것. 이후 김 대표의 가족은 한 곳에서 지내지 못하고 대구 곳곳으로 옮겨 다녔다. 가세가 기울면서 김 대표의 형, 동생을 포함한 여섯 식구가 좁은 단칸방에서 지냈다. 일주일에 3~4끼밖에 먹지 못하는 건 기본이었다. 모친도 행상을 하면서 자녀들의 학비를 벌었다.


하루 걸러 한끼로 버틴 어린시절
제대후 빵 관련업체 영업직 입사
30대 때 베이커리 제조업체 일궈
장애인시설 방문해 생산빵 기부

영남일보 보도 박철상씨에 감동
“아너 가입후 활력” 지인 추천 영향
‘낼 수 있을 때 기부’ 생각에 쾌척
“1억 필요한 곳 발굴해 쓰여지길”


김 대표는 중·고등학교 등록금도 못 낼 정도였다. 먹고사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공고를 갔고 대학도 좀 더 실용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전문대에 입학했다. 학업을 마친 후 군에서 제대한 김 대표는 샤니(지금의 SPC)에 입사해 대리점 관리를 하는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영업사원이 적성에 딱 맞았던 김 대표는 40세가 되기 전에 자신이 직접 기업체를 일구고 싶었다.

1995년부터 힘들게 모은 전세금으로 49㎡(15평)의 점포를 운영하며 식자재 유통업을 시작했다. 이후 제빵·베이커리 제조업에도 뛰어들어 패스트푸드점 등에 공급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형편이 어렵다보니 돈에 대해 늘 아쉬운 마음이 많았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사업을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내 이야기가 나눔 문화 확산에 도움됐으면…

김 대표가 1억원을 선뜻 내놓기로 한 건 영남일보에 소개된 대학생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박철상씨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같은 모임에서 만나고 있는 김장덕 <주>빙고 대표(대구 아너소사이어티 10호)로부터 아너소사이어티의 좋은 점에 대해 들은 영향도 있다. 그는 김 대표에게 “아너소사이어티 가입하면서 기분도 좋아지고 활력도 생겼다”며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을 적극 추천했다.

김 대표는 “나보다 어린 학생이 적지 않은 돈을 지역 사회에 기부했다는 기사를 보고 나도 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처음 봉사활동, 기부를 시작한 건 사업이 자리 잡힌 이후였다. 2000년대 초중반쯤 김 대표 등 50명의 대구 지역 유통업체 관계자들이 모인 협의회에서 라이온스클럽의 단위클럽을 창설한 것. 단순히 같이 모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도 같이 해보자는 취지였다.

이때부터 지역 장애인 시설 등에 빵을 기부하고 직접 시설에서 피자를 구워주는 등 봉사활동을 했다.

물론 자신의 회사 차원에서 소소한 기부도 했다. 김 대표가 재료값을 부담하고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먹을 때마다 100원씩 기부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김 대표는 이번에 기부 약정을 하지 않고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한꺼번에 쾌척했다. 기부 약정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살다보면 내가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질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약정해서 돈을 내는 것보다는 내가 낼 수 있을 때 기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기부를 하고 나서 김 대표는 마음이 오히려 좋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통나무 시리즈 인터뷰에 응하는 건 사실 조금 조심스럽기도 했다고.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 신문 지면에 알리는 게 낯간지러운 것도 있었다.

김 대표는 이번에 자신이 기부한 1억원이 특정 시설에 쓰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발굴해 기부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 기부가 대구 지역에 기부문화가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해서 응했다”고 강조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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