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이분법, 최악의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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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01 08:20  |  수정 2016-02-01 08:53  |  발행일 2016-02-01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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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 신화가 딛고 선 결론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생명은 생명을 먹으며 살고, 되풀이되는 희생 없이는 생명도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세계 어디에나 재생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도… 씨를 받아서 다시 부활하는 생명으로 되돌리는 것, 그것은 땅의 본질이며 육체의 신비이다. 신화의 과제는 이 진실을 알기 쉽게 전하는 것이고, 의례의 과제는 이 진실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이때 개인은 자연의 본성과 하나가 된다. 개인은 자기 보호에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기적과 조화를 이루려 한다. 인도의 ‘타이티리아 우파니샤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오, 놀라워라! 오, 놀라워라! 오 놀라워라! 나는 양식이다! 나는 양식을 먹는 자이다! 나는 먹는 자이다! 나는 먹는 자이다! 나는 영광을 예비하는 자이다! … 나는 우주의 질서가 내보낸 맏이이며 신들이 있기 전부터 이미 불멸의 태내에 존재했다! 나를 내보낸 자는 실제로 나를 도와주었다. 양식인 나는 양식을 먹는 사람을 먹는다! 나는 전 세계를 정복했노라!’ 그리고 다음의 문장으로 글을 맺는다. ‘이것을 아는 그에게 밝게 비추는 빛이 있도다.’

이 시를 읊은 사제가 자신과 동일시한 나는 무엇인가를 먹는 나도 아니고 먹히는 나도 아니다. 그것을 먹으면서 먹히는 존재, 곧 초월적이면서 모든 사건과 만물에 내재하는 존재다. 힌두교에서는 이것을 브라만이라 하고, 알공킨족 인디언은 마니투라 하며, 수족 인디언은 와콘다, 이로쿼이족 인디언은 오렌다, 멜리네시아 사람들은 마나 그리고 아프리카 반투족 사이에서는 브왕가로 알려져 있다.

신화와 의례에서 이런 존재들은 그것을 중심으로 만물이 도는 우주의 축으로 상징된다. 일례로 브랴트족과 라프족의 무당이 말하는 하늘의 못이 그것이다. 혹은 무당이 하늘에 오르기 위해서 타고 올라가는 세계수(世界樹)나 거대한 천막 기둥으로 상징되는 세계의 커다란 축으로 보기도 한다. 아이슬란드의 시가집 ‘에다’에서는 그것이 물푸레나무인 이그드라실로 찬미되고 있고, 그리스에서는 올림푸스, 인도에서는 메루 산이며, 아카드와 바빌로니아에서는 수메르인들의 지구라트(성탑, 聖塔)로 상징되어 있다.

무함마드는 이 중심을 코란에서 키블라라고 일컬었다. 그곳은 우리가 그쪽을 향하여 공손히 머리 굽혀야 하는 곳이다. 이슬람교도들에게 그곳이 메카이고, 다른 교도들에게는 예루살렘, 베나레스(바라나시), 로마 그리고 (1959년까지는) 성지 라싸에 있는 달라이 라마의 포탈라궁이기도 하다. 이런 중심지는 모든 종교와 신화에서 어떤 식으로든 상징적으로 풀이되고 있다. 근원적 사고에 민족적 색채가 스며든 것이다. 하지만 그 근원적 사고 자체를 어느 한 곳으로 제한해서 말할 수는 없다. 모든 현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열렬한 신도나 광신도들은 그것을 모른다.’(조지프 캠벨-세계의 신화)

천의무봉한 글을 쓰는 작가들의 특징은 전지적(全知的)입니다. 독서나 체험을 넘어선 사물에 대한 이해가 가히 선험적일 정도이지요. 그것을 저는 릴케가 말한 ‘사물을 보는 법’에 한없는 선의를 바탕한 것이라 해석합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말한 광신도의 이분법은 글쓰기에서도 최악의 소재랍니다. IS나 사이비 종교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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