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자식이 뭐길래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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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05   |  발행일 2016-02-05 제23면   |  수정 2016-02-05
[조정래 칼럼] 자식이 뭐길래

내 동생은 총각시절 어린아이들을 싫어했다. 어리광을 부리며 안기려는 아이의 이마를 사정없이 무참하게 밀어내곤 했다. 그러던 그가 장가를 간 뒤에 제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로 키우고 있다. 그 아이가 커서 군대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지금까지 그러하다. 어떻게 그렇게 표변할 수 있냐는 핀잔에는 ‘다 그런 거 아니우’라며 대수롭잖게 받아넘긴다. 옛말이 하나도 그른 것 없다. 이율배반이지만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이고 호오와 선악을 넘어선 욕구일 터.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한다’ 했다.

축구 선수 김병지가 최근 초등 2년생 아들의 급우 폭행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다. 가해자이면서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김 선수는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통해 적극 해명에 나섰다. 급기야는 상대 학부모와 인터뷰에 응한 해당 학교 담임과 교장 등을 상대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진실게임처럼 앞으로도 진위를 가리기 힘들 게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으로 비화했다. 어쨌든 볼썽사납고, 이 같은 부모의 과잉대응은 비일비재하다. 아이를 두둔하느라 담임교사를 폭행하는 세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신기남 국회의원은 ‘로스쿨 아들 구제 의혹’에 휘말려 당내 윤리심판원으로부터 당원자격정지 3개월이란 징계를 받았다.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시범 케이스에 걸려 사실상 공천에서 배제되는 철퇴를 맞았다. 그보다 더한 국회의원의 자녀 인사청탁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많았다. 심지어 로스쿨 출신 자녀를 취업시키기 위해 기존 채용공고의 지원 자격까지 대폭 수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갑 중의 갑, 슈퍼 갑 국회의원도 있었는데. 고관대작의 자녀를 위해서라면 없는 자리도 만드는 지경이라니, 바야흐로 부와 신분이 대물림되는 시대, ‘흙수저들’의 탄식과 자조가 온 나라를 뒤흔든다.

공공기관은 국회의원과 고위직 공무원 인사청탁의 주요 타깃이다. 취업난 등으로 공기업이 상종가를 치는 데다 주인 없는 회사여서 외부의 영향력 행사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모 공기업 인사 담당 임원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신규 채용에서 인사청탁 비율이 10~15%에 이를 것이라고 실토했다. 이에 다른 공공기관 인사 담당 직원은 무슨 소리냐, 20%도 넘는다고 단언한다. 이렇게 ‘금수저’가 밥상을 차지하는 사이, ‘흙수저’와 ‘헬조선’은 시나브로 노숙인과 고담도시로 방기된다. 실력만으로는 공기업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흙수저의 타박에 아빠 흙수저는 눈시울만 붉힐 뿐이고.

누군들 아들 취직 부탁을 하고 싶지 않을까. 할 수만 있다면 인지상정 아닐 것인가. 문제는 청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통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제도와 시스템의 미비 탓이다. 청탁이나 부탁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방안이 모색되고 강구될 수밖에 없다. 조짐과 징조는 농후하고 긍정적이다. 인사청탁 비리가 잇따라 터져나오고 이에 대해 엄정한 처리를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는다. 인사 부조리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있을 것인가.

보육대란과 교육에 이어 청년 취업난에 이르기까지 자식들의 문제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대간이자 마룻대고 들보다. 우리 모두 자식 몸살을 앓는다. 자식이 뭐길래, 애물단지고 ‘웬수’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일자리를 다투고 집을 차지하려 신경전을 벌인다. 이전투구다. 취업,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 소위 ‘삼포’세대에서 희망까지 포기한 ‘칠포’세대라는 절망의 신조어가 유행한다. 젊은이의 수난시대이자 부모의 수난시대다.

내일부터 설 연휴다. 취직 못해 귀향마저 꺼리는 젊은이들이여, 부모들의 가슴도 탄다. 자식의 문제는 이제 가족적 과제를 넘어 국가적 의제다. 박근혜 대통령도 청년취업 문제로 가슴이 타 숯 검댕이라 했다. 편애와 청탁은 공공의 적이고 건강한 공동체 형성을 해치는 암덩어리다. 자식을 위해 오물을 덮어쓰기를 마다하는 ‘잘난’ 부모가 더는 나와선 안된다. 내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 했다. 과연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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