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43 <끝>] 안동소주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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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11   |  발행일 2016-02-11 제22면   |  수정 2016-02-11
신라인도 즐겼던 45도 소주…일제 탄압 딛고 두 명인이 맥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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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안동소주는 세계적 위스키 생산을 위해 최근 오크통 80개를 수입해 숙성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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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화 명인(가운데)이 전수자인 아들 부부와 함께 안동소주 전술을 담기 위해 고두밥을 준비하고 있다.


◇반남박씨 가문 ‘명인 안동소주’
3단 발효 비법으로 100일 이상 숙성
오크통 숙성·低度酒로 세계화 추진

◇안동김씨 가문 ‘민속주 안동소주’
밀누룩으로만 만들어 특유의 감칠맛
전수자 배경화씨 소주박사학위 받아

안동소주(安東燒酎)는 안동에서 전승되어온 증류식 소주다. 재료는 멥쌀과 누룩, 물이다. 멥쌀을 찐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전술을 만든 후, 이 전술을 솥에 넣고 소주고리와 냉각기를 솥 위에 얹은 뒤 불을 지펴서 열을 가하면, 전술이 증발하면서 냉각기에 닿아 액체로 변해 소주고리 관을 타고 떨어진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전통 소주로 안동소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안동에서 특히 소주의 제조법이 발달한 것은 원나라의 한반도 진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려 때인 13세기에 원나라가 한반도에 진출했는데, 당시 일본 원정을 위한 원나라의 병참기지가 있던 안동과 개성 등을 중심으로 소주가 유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동소주를 비롯한 소주는 고려시대 권문세가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민간요법으로 배앓이 때 마시거나 독충에 물린 데 바르는 등 약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고려 말기에 경상도 원수를 지낸 김진(金鎭)이 소주를 즐겨 ‘소주도(燒酒徒)’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사대부들이 호사스러워져서 소주를 많이 마셔 취해야만 그만뒀다는 내용도 있다.

안동소주의 기원을 신라시대부터 잡기도 한다. 증류기술은 아랍지역의 연금술사들에 의해서 발명되었고, 당시 신라는 아랍과 활발한 중계무역을 벌여왔다. 이때 페르시아 유리잔과 함께 증류주 제조법이 전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당나라도 증류식 술을 마셨으니 증류식 술은 신라시대부터 마시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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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증류식 소주는 안동의 종가를 비롯한 여러 민가에서 가양주로 전승되어 왔으나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주세법(1909년)과 주세령(1916년)을 공포해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술을 빚지 못하게 하면서 가양주 전승이 단절되다시피 했다. 당시 참사를 지낸 권태연이 1920년 안동시 남문동에 공장을 세우고 ‘제비원 소주’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 제비원 소주는 전통 가양주 안동소주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제조되었다. 이것은 한때 우리나라 전국은 물론 일본과 만주에까지 판매되면서 명성을 떨쳤다.

광복 후에도 술 빚는 일과 쌀 사용 금지 정책이 시행되자 안동소주는 몇몇 집안에서 몰래 만들어 제주나 손님 접대용 등으로 빚어오면서 겨우 명맥이 유지되었다. 그러다 민속주 제조가 허가되기 시작하면서 안동소주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박재서(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호)의 ‘명인 안동소주’와 조옥화(경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0호)의 ‘민속주 안동소주’다.



◆반남박씨 가문의 가양주 맥 이은 박재서 ‘명인 안동소주’

‘명인 안동소주’는 안동의 반남박씨 가문에서 대대로 전수되어온 가양주의 맥을 이은 소주다. 명인 안동소주는 박재서 명인의 15대조 은곡(隱谷) 박진(1477~1566)으로부터 비롯된다. 유학자인 박진은 말년에 안동부 동쪽 광산촌에 은거하면서 초당을 짓고 후진을 가르치며 살았는데, 이때 부인 안동권씨가 빚은 소주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후부터 박씨 가문의 가양주로 전해내려 온 것이다.

특히 박 명인의 조모 남양홍씨의 안동소주 양조비법이 특히 뛰어나 인근 동리에 명성이 자자했으며, 이는 며느리인 영월신씨에게 전수되었다. 박 명인은 어려서부터 소주 제조에 관심이 많아 조모와 모친에게서 그 제조비법을 이어받아 안동소주를 빚어왔다. 성인이 된 후, 1960년대 초까지 소주 제조로 명성이 자자했던 ‘제비원 소주’의 제조 명장 장동섭씨에게서 양조비법을 배워 그 장점을 가문의 전통비법에 가미해 소주를 빚기 시작했다. 전술을 청주로 걸러 사용하고, 일정 기간 숙성을 거쳐 소주 특유의 누룩향과 탄내를 최소화시킨 것이다. 안동소주의 대중화·고급화를 위해서였다. 1992년에는 안동소주 제조면허 인가를 받아 법인을 설립, 안동소주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지정됐다.

명인 안동소주는 3단 사입방식을 거쳐 전술을 완성한다. 멥쌀 고두밥과 누룩, 물로 밑술을 담가 4~5일 발효한 후 다시 6배 정도의 같은 재료를 섞어 추가한 후 4일 발효시키고, 또다시 그 배의 재료를 더 섞어 15~20일간 발효시킨다. 이렇게 잘 발효된 전술을 청주로 만들어 증류해 소주를 내린 후 최소 100일 이상 숙성시킨다. 누룩은 쌀누룩(70%)과 밀누룩(30%)을 만들어 쓴다.

명인 안동소주는 처음에는 알코올 도수 45도와 35도 두 종류를 생산했으나 지금은 22도와 19도 소주도 함께 생산하고 있다.

한편 명인 안동소주는 세계적 위스키 생산을 목표로 최근 오크통(20ℓ) 80개를 수입해 안동소주 숙성을 시작했다. 박 명인은 안동소주가 어떤 위스키보다도 좋은 술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박 명인은 전통 소주 활성화는 우리 소주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국내 농산물 소비를 촉진시키며 고용을 늘리는 등 많은 이로움이 있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생산과 유통을 위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명인 안동소주는 박찬관 대표가 그 전수자로 맥을 잇고 있다.

◆안동김씨 가문의 조옥화 ‘민속주 안동소주’

조옥화 명인(1922년생)의 ‘민속주 안동소주’는 조 명인이 어릴 적 친정 어머니가 애주가였던 아버지를 위해 안동소주를 빚던 것을 보면서 배운 것에다 시집와서 안동김씨 가문에서 빚던 안동소주 방법을 가미해 가양주로 빚어왔다. 그러다 1987년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받았다. 그리고 1990년 9월 안동소주 제조 면허를 취득하면서 안동소주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안동시 신안동 시댁에서 만들어 팔았는데, 인기가 좋아 집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설 정도였다. 1993년에는 현재의 위치(안동시 수상동)에 새로 양조장을 개설해 본격적으로 안동소주를 생산했다. 2000년에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0호로 지정됐다.

민속주 안동소주는 밀 누룩과 멥쌀 고두밥, 물이 원료다. 고두밥과 빻은 누룩을 섞으면서 물을 부어 전술을 담근다. 비율은 누룩 1, 고두밥 3, 물 2로 한다. 15일 정도 발효시키고 나면 감칠맛 나는 전술이 완성된다. 이 전술을 솥에 담고 그 위에 소주고리와 냉각기를 얹어 김이 새지 않게 틈을 막은 후 열을 가하면, 전술이 증발하면서 냉각기의 차가운 물에 의해 냉각되어 소주고리 관을 통해 흘러내려 소주가 모아진다. 처음에는 매우 높은 도수의 소주가 나오다가 차차 낮아지는데, 가장 좋은 향과 맛이 나는 45도 소주로 마무리한다.

민속주 안동소주는 45도 소주만 생산한다.

민속주 안동소주 제조법은 조 명인의 아들 김연박씨와 며느리 배경화씨가 전수자로 이어받아 민속주 안동소주를 생산하고 있다. 배씨는 안동소주를 주제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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