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시리즈 통·나·무] 경북 31번째 아너소사이어티 권동기 안동청과합자회사 대표

  • 명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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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13   |  발행일 2016-02-13 제6면   |  수정 2016-02-13
“안동사과 팔도로 유통시켰듯 나눔문화 널리 퍼트리고 싶어요”
20160213
젊은 시절 겪은 어려움은 지금의 권동기 대표를 있게 한 소중한 자산이다. 권 대표는 이제 굶주린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할 줄 아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기부를 많이 하는 이유는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저도 그들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좌절을 맛본 사람이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을 찾아 돕는 것이죠.”

권동기 안동청과 합자회사 대표(57)를 기부행렬로 이끌어 낸 힘. 그것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이었다.

지역에서 어려운 이웃을 찾아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던 그는, 지난해 1월 경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화를 걸었다. 권 대표는 수화기 너머로 1억원 기부 의사를 밝혔고,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 회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경북의 31번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탄생한 순간이다.

사과도매업으로 빚 시달렸지만
주산지 북상하자 매출 전국 1위
형편 나아지면서 주변 돌아보니
도움 절실한 곳 생각보다 많아
끼니 거르는 학생 급식비 도와

“먼저 베풀어야 큰 영향력 발휘”
영남일보 소개 회원 등에 영향
기부 활성화 위해 동참 결심해

◆안동의 사과왕

안동에서 태어난 권 대표는 한약방을 운영하던 부친 덕분에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도 있었지만, 그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시절, 권 대표는 부잣집 도련님이기보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주먹대장으로 통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리더십을 보였던 권 대표는 성인이 되면서부터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심을 갖기 시작했다. 군에서 제대한 그는 사과의 미래를 내다보기 시작했다. 당시에 사과는 안동과 문경 등 경북 북부지역보다 대구능금이 유명했다.

그가 지천에 사과가 널렸던 대구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과의 가능성을 내다봤던 사정이 궁금해졌다.

권 대표는 “어릴 적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하면서, 다 차려놓은 밥상보다는 무언가를 키워가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그 순간에도 어려운 길을 택했던 것은, 쉬운 일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남쪽지방의 기온이 올라가는 것에 주목했고, 사과 주산지도 북상하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사과는 일교차가 큰 지역일수록 농사가 잘 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내 고향 안동과 일대 지역에서 사과가 많이 날 것이라 생각했고, 사과 도매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어떠한 과학적 판단이나 경제적 개념도 없이 직감만으로 업계에 뛰어든 것이다. 당연히 결과는 냉혹했다. 당장 돈벌이에 나섰지만 돈은 들어오지 않고 빚 독촉장만 날아들었다.

하지만 권 대표의 직감이 통했던 것일까. 사과 주산지가 북상하면서 경북 북부지역에서도 대구능금을 뛰어넘는 품질의 사과가 속속 생산돼,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권 대표는 “한때는 서울 가락시장보다 더 성업을 이룰 때가 있었다. 전국 팔도에서 우리 시장으로 사과를 사기 위해서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1996년부터 현재까지 전국 농산물 도매시장 법인 중에서 ‘사과 매출액 전국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국 사과거래량의 10%가 권 대표의 손바닥 위에 놓인 것이다.

◆어려운 이들은 왜 그리도 많던지…

“형편이 어느 정도 나아지면서 주변 이웃을 도우려 나선 순간, 어려운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줄 그제서야 깨달았다.”

첫 기부의 기억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권 대표는 이같이 답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기부를 위해 나선 권 대표는 안동 풍산고 학생 몇몇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들었다. 집안사정이 어려워 끼니를 거르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권 대표는 “친구와의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도저히 흘려 들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바로 학교로 찾아가 학생들의 급식비를 대신 내준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권 대표의 기부인생이 시작됐지만, 생각지도 못한 부담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는 “생판 모르는 남들에게 도움을 주던 중 어느 순간 내 주위 사람들은 잘 챙기고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사과시장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시장을 찾아주는 주변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나를 원망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 대표의 걱정과는 달리 주위에서는 원망보다 존경의 시선을 보내왔다. 권 대표의 기부인생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권 대표가 1억원을 기부하기로 하고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을 결심한 데는 지인들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사교모임을 통해 인연을 맺은 지인들이 잇따라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것을 본 것. 같은 모임에서 만나고 있는 이재업 동성환경산업 대표(경북 24번째 아너소사이어티·영남일보 2015년 7월11일자 5면 보도)와 신현수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으로부터 아너소사이어티의 좋은 점에 대해 들은 영향도 있다. 신현수 회장은 권 대표에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먼저 베푸는 것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지역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꼭 도움을 달라”며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을 적극 추천했다.

권 대표는 마지막으로 “기부를 하고 으스대는 것 같아서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나도 주변 사람들이 크게 나누는 것을 보고 기부행렬에 동참했다”며 “내 사연이 지역 곳곳에 알려져서 기부문화가 활성화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글·사진=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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