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으면 온몸 부르트며 숲 가득 봄을 틔우는 ‘자작자작’ 소리 ③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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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19   |  발행일 2016-02-19 제35면   |  수정 2016-02-19
◆ 자작나무숲 미술관 원종호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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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호 관장의 작품. 오대산 주변 한 밭에 드문드문 심긴 자작나무. 마치 오래된 다리뼈를 세워둔 것 같다(위쪽). 강원도 태백시 삼수령 반대편에 자리한 함백산 자작나무숲의 앙상하면서도 고졸한 모습. 흡사 봄이 오는 소리 같다. <원종호 자작나무숲 미술관 관장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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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백두산 여행길 자작숲 조우
 보는 순간 큰 울림 고향 돌아와 식재
 96년 카페 만들어 찍은 사진 전시도


“천마총 천마도·해인사 팔만대장경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사실 아세요
 수피 흰 나무는 원산지가 우리나라
 낙엽 후∼새싹 직전까지 감상 제맛”

 

무엇에 꽂히면 그 꽂히게 만든 사물에 ‘빙의’된다.

자작나무교의 교주 같은 ‘자작나무숲’ 미술관 원종호 관장. 그의 머리카락은 갓 벗겨진 자작나무 수피 버전이다. 1990년 정부가 50년대 이승만 정권에 의해 아까시나무를 집단식재하던 때처럼 자작나무 조림 기획을 하고 있을 때 원 관장은 백두산 가는 길에 거대한 자작나무숲과 조우한다.

“가냘픈 흰색이 애잔하고 너무 쓸쓸했다. 그 자작나무숲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내 방황도 내 여행도 멈출 것 같았다.”

화가에서 목장주, 그 꿈을 버린 그 사내는 결국 여생을 자작나무와 살기로 결심한다. 81년에는 니콘카메라를 구입했다. 83년에는 원주 치악산에 빙의된다. 툭하면 치악산에 있었다. 거기서 몽롱한 치악사진을 건져낸다. 그 흐름을 갖고 91년 치악산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연다.

원 관장은 고향 횡성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백두산을 다녀온 뒤부터 30㎝ 남짓한 1년 된 묘목 1만2천주를 횡성군 우천면 두곡리 둑실마을 선산에 심었다. 살아남은 건 4천여 그루. 그 놈들이 자라 이젠 그를 빛내기 시작한다.

원 관장은 이런 말을 했다.

“자작나무는 생명·생장·축복의 나무이다. 만주인들은 자작나무로 별을 담는 주머니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신성한 기운을 지닌 나무다. 나무 이름이 왜 자작나무냐 하면, 마른 나무를 땔감으로 불을 지피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나무의 조직이 지나치게 단단하거나 무르지 않으며 썩지 않고 벌레를 먹지 않기 때문에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의 재료 역시 자작나무 껍질이다. 신혼부부들이 화촉을 밝힐 때 사용했던 나무이기도 하다.

날이 차가워질수록 껍질 속의 수분이 적어지면서 흰 빛깔이 더욱 도드라진다. 이맘때 나무의 가장 빛나는 ‘나신(裸身)’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하얀 피부도 20년이 넘어서면 일반 나무의 피부처럼 돌아간다.

원 관장은 96년 자신이 기거할 곳에 카페를 만들고 자신이 어렵사리 찍은 사진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자연스럽게 횡성의 명물이 된 것이다.

당초 인제행 때 원 관장을 만나 인터뷰를 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몇 차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가 독자를 위해 아끼는 사진까지 선물로 보내왔다.

▶자작나무를 예찬해주시죠. 우리가 모르는 자작나무만의 생태,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두드러진 특징 등을 정리해주시죠.

“수피가 흰색인 이 나무는 원산지가 우리나라인데, 흔히들 외국나무인 줄 알고 있지요. 실제 백두산에 많이 자생하고 있으며 남한의 자작나무는 모두 인공 조림입니다. 이 나무의 특징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낙엽이 진 후부터 새싹이 나올 때가 제격입니다. 그래서 겨울나무로 유명하지요. 이 나무는 오래되어도 직경이 90㎝ 이상 크지 않으며 20m 이상 자랍니다.”

▶전국에 여러 군락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국내에는 수많은 자작나무숲이 있으며 모두 산림청에서 조림한 것입니다. 국내 최대 군락지는 함백산으로 알고 있어요. 그 외 강원도 인제, 홍천, 횡성, 대관령, 태백, 충북, 경기도 지역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자작나무 사진찍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 사진작업은 이 나무를 통해서 내게 전달되는 기운, 즉 에너지를 표현한 작업이죠. 그 흰색 수피로부터 내게 전해지는 자연의 기운을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자작나무숲 미술관을 제대로 즐기는 법을 알려주세요.

“우리 미술관은 3만3천㎡ 대지에 자작나무숲, 정원, 산책로, 3개의 실내 전시장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곳에 오면 사계절의 오묘한 색의 앙상블을 만끽할 수 있어요. 겨울에 제 빛을 발휘하는 자작나무숲은 여름이면 연둣빛 그늘을 내어주죠. 가을이면 샛노란 단풍잎으로 인사합니다. 자작나무숲 속에 위치한 철쭉동산은 매년 5월 초 아름다운 분홍빛으로 관객들을 맞이하고 겨울에는 풍성한 눈꽃으로 피어납니다. 식물뿐 아니라 산토끼·개구리를 비롯한 야생의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서식하는 ‘생태인문학 복합상영관’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자작나무숲 미술관 TIP

오는 3월까지는 오전 11시 개관, 매주 화~목요일 휴관. 여타 기간에는 매주 수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은 2만원. 청소년은 1만원. 횡성군 우천면 두곡리 둑실마을. (033)342-6833

공식 홈페이지(www.jjsoup.com)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jjsoup/)

☞ 또다른 자작나무 명품 군락지

삼척 하장∼태백 간
35번 국도 ‘삼수령길’

응봉산 정상 오르면
가슴 뻥 뚫리는 절경


추운 곳을 좋아하는 특성상 자작나무 군락지는 대부분 강원도에 올인한다. 그중 첫손에 꼽히는 곳이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과 태백시를 잇는 35번 국도 삼수령길. 한강·낙동강·오십천이 시작되는 곳이 태백 삼수령이다. 태백 시내에서 황지교 네거리를 지나 35번 국도변으로 자작나무 군락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인제군 남면 수산리 응봉산(매봉산). 여기도 자작나무가 엄청난 규모로 자라고 있다. 소양호 한쪽 자락을 따라 들어선 수산리 산골 마을이 자작나무숲 탐방의 들머리. 이곳에서 정상을 거쳐 원점으로 회귀까지 10㎞ 정도 된다. 자작나무를 잘 보기 위해서는 높은 곳으로 올라야 한다.

횡계? 여기도 만만찮은 자작나무 고향이다. 영동고속도로 횡계 나들목을 나와 우회전한 뒤 횡계 시가지 초입에서 옛 영동고속도로 방향으로 좌회전해 올라가다 보면 왼편에서 자작나무 군락지와 만날 수 있다. 언제 가더라도 두어 명의 사진작가와 만날 수 있을 만큼 촬영지로 많이 알려진 곳. 대관령 양떼목장을 지나 횡계 시내로 들어오는 옛길 주변에도 드문드문 자작나무들이 자생하고 있다.

또 정선군 고한읍에서 태백시로 가는 두문동재 고갯길도 자작나무숲으로 ‘짱’이다. 이 밖에 진부에서 정선으로 향하는 59번 국도변 수항리계곡, 평창 오대산 상원사에서 홍천군 내면 명개리로 향하는 북대사길, 철원의 복주산자연휴양림 등에서도 예쁜 자작나무 군락지와 만날 수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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