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룸·13시간

  • 윤용섭
  • |
  • 입력 2016-03-04   |  발행일 2016-03-04 제41면   |  수정 2016-03-04


7년간의 감금과 탈출…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충격적 실화 그려

20160304

“잘잤니 램프야, 옷장아, TV야, 세면대야, 변기야.” 다섯번째 생일을 맞은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은 눈을 뜨자마자 방 안의 사물들에게 아침인사를 건넨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바깥 세상을 접해보지 못한 잭은 창고를 개조한 좁은 방에서 엄마 조이(브리 라슨)와 단둘이 산다. 조이는 열입곱살에 납치돼 이곳에서 7년을 보냈다. 그동안 몇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 와중에 납치범 닉(숀 브리저스)의 아이를 갖게 된다. 비록 납치범의 피가 섞여 있지만 잭은 조이에게 있어 유일한 삶의 이유가 된다. 조이는 더 이상 비좁은 방에 아이를 가둬 둘 수 없다고 생각해 탈출을 계획하고 기적적으로 성공한다.


친딸 감금 ‘프리츨 사건’ 모티브 소설 원작
근친상간 등 자극적 설정보다 모성애에 초점
브리 라슨 혼신의 열연…‘오스카 여우주연상’


‘룸’은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요제프 프리츨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엠마 도노휴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아버지에게 감금돼 24년 동안 지하 감옥에 갇혀 아이를 낳아 키운 엘리자베스 프리츨의 충격적인 실화다. 영화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납치와 감금, 근친상간이라는 자극적이고 반인륜적인 설정으로 흥미를 자극하기보다는 조이의 모성애를 중심으로 한 강한 생존력과 회복력에 주목한다. 이는 원작자인 엠마 도노휴가 영화의 각본을 맡으면서 힘을 얻었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좁은 방 안에서 나름의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담은 전반부와 탈출에 성공한 두 모자의 단절됐던 세상과의 조우를 그린 후반부다. “옛날 옛날 엄마는 하루 종일 울다가, TV보다가 좀비가 될 뻔 했대요. 근데 하늘나라에서 내가 내려온 거죠.” 잭의 인상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처럼 룸에서의 일상은 러닝타임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이야기적으로 중요하다. 천장의 채광창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구인 감옥 같은 방. 하지만 잭에게는 풍성한 이야깃거리로 가득한 행복하고 즐거운 ‘진짜’ 놀이 공간이다.

잭은 탈출을 결심한 엄마로부터 지금껏 보고 배운 건 모두 가짜이고, 진짜 세상은 밖에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이 방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에 화가 나고 두렵기도 하지만 엄마의 간절함을 느낀 잭은 큰 용기를 낸다.

카메라는 이후 잭의 시선으로 그가 응시하는 세상을 조심스럽게 비춘다. 엄마가 아닌 다른 누구와도 소통한 적 없었던 잭은 TV 속에서나 봐왔던 다양한 사람과 사물들이 실재한다는 사실에 놀란다. 또 다른 가족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고, 살아있는 강아지를 만진 건 무엇보다 신기한 경험이다. 이렇듯 잭은 혼란스럽고 두려웠던 감정에서 차츰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간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세간의 관심은 이들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을 낳는다. 조이와의 인터뷰를 가진 한 방송사 앵커는 “아이가 크면 아버지에 대해 말할 건가. 또 잭이 평범하게 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진 않았느냐”며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할 질문을 던진다. 잭은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말한다. “가끔 룸이 그리워. 엄마와 항상 같이 있을 수 있잖아.”

탄탄한 각본에 더해 두 사람의 심리와 감정을 세심하게 포착한 연출도 좋았지만 ‘룸’에서 가장 주목할 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다. 잭 역을 맡은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섬세한 감정 연기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고, 조이 그 자체가 되어 혼신의 열연을 펼친 브리 라슨의 절제된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그녀는 ‘룸’으로 제88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장르:드라마 등급:15세 관람가)


13시간
‘무장괴한의 美영사관 습격’ 늑장 정부 대신 여섯 용병이 나섰다

20160304

독재자 카다피의 42년 철권통치가 끝난(2011년) 리비아는 세계에서 테러 위협이 가장 높은 12개국의 도시 중 두 곳을 포함하고 있다.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와 벵가지다. 2012년 9월11일, 벵가지 소재 미국 영사관에 총기와 수류탄을 든 수십 명의 무장 괴한이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영사관에는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를 포함해 실전 경험이 부족한 소수의 경호원이 있었다. 무장 괴한들을 상대하기에는 수적으로나 화력으로나 한참 열세였던 그들은 즉시 벵가지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하던 CIA와 미국 정부에 다급하게 구원을 요청한다. 촌각을 다툴 만큼 위급한 상황이지만 미 정부와 CIA는 늑장 대처로 일관한다. 그때 상황의 긴박함을 인지한 6명의 민간 특수 용병들이 구출작전에 나선다.


마이클 베이 감독 숨막히는 리얼 액션 눈길
힐러리의 아킬레스건인 ‘리비아 사건’ 소재
전형적인 미국식 영웅주의 공식 다소 부담


미첼 주코프의 원작 논픽션을 토대로 한 ‘13시간’은 지옥도와 같았던 그날의 현장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어떤 지원과 협력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국민을 구하기 위해 과감히 몸을 던진 6명의 용병이 그 주인공이다. 미국 해병대와 특수부대 출신으로 구성된 이들은 벵가지에서 비밀리에 정보를 수집 중인 CIA 요원들의 보호 임무를 맡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탄로날 것을 우려해 구출작전에 회의적인 CIA 소장과 마찰을 빚는다.

이 사건은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당시 국무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힐러리는 사건의 내용을 전달받고도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안타까운 희생을 낳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CIA 비밀기지까지 무장세력의 타깃이 된 일촉즉발의 상황이 된다.

미 해군에 ‘건십’(지상 또는 해상의 목표물을 중화기로 공격하는 항공기)을 요청해보지만 그들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담담히 직위를 묻는 미 해군에게 “난 미국인이에요”라고 외쳐야 할 만큼 자국민 보호를 우선시했던 미 정부는 시스템의 허점과 함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그 모든 상황을 아우르며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을 박진감 넘치는 액션 시퀀스로 유려하게 펼쳐낸다.

그는 13시간의 구출작전을 시간대별로 포착해 긴장감과 서사를 쌓아가는 전반부가 지나면 그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사실적인 이미지로 중반 이후를 힘차고 속도감 있게 달려간다. 총알이 비오듯 날아오고 바로 뒤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아비규환의 상황은 다큐멘터리를 보듯 너무도 생생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볼거리와 재미를 담보하는 상업영화로서의 미덕은 충분히 갖춘 셈이다.

다만 문제는 이런 장르의 영화에서 종종 껄끄럽게 느껴지는 미국식 영웅주의다. 6명 용병의 살신성인에 가까운 애국주의에 경도된 나머지 벵가지 사태가 발생했던 원인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단순히 미국에 반친화적인 반군단체를 적으로 간주하는 그들의 이분법적 논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영화 후반부 총격전으로 널부러져 있는 반군의 시신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리비아 여인들을 비춘 건 그 점에서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장르:액션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