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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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15   |  발행일 2016-03-15 제30면   |  수정 2016-03-15
20160315
여 정 시인

욕망뿐인 그릇된 낙원서도
성당의 종소리 같은 빛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부드러운 감정 싹트게 해야
그리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연극으로도 영화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남북전쟁과 산업혁명 등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환경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명작이 그러하듯 다의적 해석과 다양한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필자는 영화(엘리아 카잔 감독, 오스카 사울 & 테네시 윌리엄스 각본, 1951)와 희곡(범우희곡선 5,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범우사, 1995년 초판 2쇄)을 다시 보면서 등장인물들의 대사로만 전해지는 ‘벨 레브’에 주목해봤다. ‘벨 레브’는 미시시피에 있는 농장이 딸려있는 큰 저택으로, 여주인공 블랭취 두보이스(등장인물의 이름은 범우희곡선 5를 따름)에 의해 저당 잡혀버린 고향집이다. 프랑스어인 ‘벨 레브’는 우리말로 ‘아름다운 꿈’이다.

무대에도 스크린에도 없는 이 숨은 배경 ‘벨 레브’는 포커의 뒤집어 놓은 히든카드처럼 어쩌면 극 중에 드러난 주 배경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벨 레브’가 온전히 ‘아름다운 꿈’이었을 때 블랭취는 열여섯 소녀였다. 말 못할 무엇인가 도움을 청하러 온 시를 쓰는 한 소년 앨런을 만나 숭배할 정도로 사랑을 했고 둘은 어디론가 도망을 갔다가 돌아와 결혼을 했다.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봄날 과수원 같다고 얘기하는 블랭취(흰색) 두보이스(숲)를 통해 볼 때 ‘아름다운 꿈’은 자연과 사랑과 시와 어우러져 온전했다.

하지만 블랭취의 ‘아름다운 꿈’도 고향집 ‘벨 레브’도 욕정과 죽음으로 인해 잃어버리게 된다. 앨런의 동성애와 권총자살 그리고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오빠들의 오입질과 가족·친척들에게 물밀듯이 밀려드는 병과 죽음, 거기에 드는 대가와 비용으로 한순간에 혹은 차츰차츰 블랭취에게서 빠져나가고 ‘벨 레버’를 ‘앰블러 앤드 앰블러’ 회사에 저당 잡혀 잃어버리고 만다.

만약 이 작품에 한 장의 히든카드가 더 있다면 그 숨은 배경은 블랭취가 영어 교사를 하며 2년을 보낸 ‘로렐’이 될 것이다. 그녀는 앨런과 ‘벨 레브’를 잃은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또 공포감에 질려있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낯선 사람들과 수많은 정사를 가지며 여기저기를 찾아 떠돈다. 마침내 열일곱 소년에게까지 미치게 되고, 결국 그녀는 학교에서도 로렐에서도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블랭취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 ‘묘지’라는 이름의 전차로 갈아타고 여섯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린 뉴올리언스 시(市)에 있는 빈민구역 극락(極樂)은 다른 빈민가와는 달리 퇴폐적인 매력이 출렁이는 곳이다. 10년 전 벨 레브(아름다운 꿈)를 버리고 떠난 여동생 스텔라 카웰스키와 공병대 특무상사 출신인 남편 스탠리 카웰스키가 이곳에 살고 있다. 블랭취가 짐을 푼 다음 날부터 스탠리는 아내 것은 남편 것이라는 나폴레옹 법전을 들먹이며 이미 잃어버린 ‘벨 레브’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대립한다. 어쩌면 이곳은 아름다운 꿈(벨 레브)을 상실했거나 망각했거나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존과 쾌락과 승리를 위해 짐승의 욕망을 폭력적으로 발산하고 기계적으로 충족하는 썩어가는 육체의 도박판인지도 모른다. 여동생이 아기를 낳으러 병원에 간 날, 블랭취는 자신이 함정에 빠진 걸 자각하지만 늘 대립한 스탠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이후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된 블랭취는 강압적인 간호사와 친절한 의사에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반자의적으로 시골로 정양을 가게 된다.

사실, 블랭취는 ‘벨 레브’를 지키기 위해 혼자 사투를 벌였고 물질과 육체의 욕망뿐인 그릇된 낙원에서도 ‘아름다운 꿈’을 회복하려 했다. 그녀가 여동생에게 했던 말이,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울려 퍼진다. 예를 들자면 미술, 시, 음악, 그러한 새로운 빛이 이 세상에 나타났어.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부드러운 감정을 싹트게 했어. 우린 그것을 길러야 돼. 어떻게 해서든지 지키고 우리의 깃발로 치켜올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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