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거류산(해발 570.5m, 경남 고성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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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25   |  발행일 2016-03-25 제38면   |  수정 2016-03-25
바다로 뛰어드는 찰나…산은 아낙의 외침에 그 자리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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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류산 정상을 오르면서 뒤돌아본 풍경. 거북바위 뒤로 한반도 지형을 닮은 당동만이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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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표석 바로앞 바위에 뿌리를 내린 수령 300년으로 추정되는 소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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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거류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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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전시관. 히말라야 16좌를 오르면서 쓴 등산장비 등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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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오르면서 내려다본 거북바위.

산길 오르면 당동만과 남해 발아래
절벽 이룬 바윗길 지나자 거북바위
멀리 삿갓 쓴 듯 뾰족한 정상 눈 앞에

꼭대기 바위 틈의 300년된 소사나무
하산땐 거류산성·엄홍길전시관 볼만

봄빛이 무르익어 언 땅을 녹이는데 꽃샘 추위에 주눅이 들었는지 미적거리며 뒷걸음질치는 기온 때문에 마음이 조급하다. 아예 남쪽으로 봄 마중을 나간다. 고성의 거류산(巨流山)이다.

저녁밥을 짓던 아낙이 성큼성큼 바다로 걸어가는 산을 보고 놀라 부지깽이를 두드리며 “저기 산이 걸어간다”고 소리치며 외쳤더니 산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아름다운 다도해의 풍경과 이른 봄꽃을 볼 수 있겠다는 설렘으로 들머리로 향하는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구름이 가득하고 새치름한 기온으로 덧옷을 하나 입어야 할 정도다.

동부농협 하나로마트 맞은편 감동마을 표지석이 세워진 마을길로 들어선다. 광명사를 지나고 왼쪽으로 오르면 거류산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정상 1.9㎞, 엄홍길전시관 5.1㎞’ 이정표를 따라 2분 정도 가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완만한 흙길인데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게 침목을 깔아두었고, 길섶에는 넝쿨식물인 마삭줄이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20분을 오르자 묵무덤을 지나고 제법 큰 봉분의 부부합장묘를 지나자 숲 사이로 서서히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산비탈을 돌아 15분 더 오르면 왼쪽으로 평평한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지나온 길 뒤로는 구절산이 해안선과 마주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당동만과 남해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인다. 당동만 정면으로 작은 섬들이 보이지만 지척인 거제도는 희뿌연 구름이 가로막아 가늠만 할 뿐이다.

전망대에서 돌아서면 바로 계단이 놓여있다. 예전에는 철제 계단이었는데 지난해 목제 계단으로 말끔히 정비를 해두었다. 두어번 계단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절벽을 이룬 바윗길을 지난다. 정면으로는 거북바위가 막고 있고, 오른쪽 멀리 삿갓을 씌워놓은 것처럼 뾰족한 정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혹자는 이를 알프스 3대 북벽 중의 하나인 마터호른 봉우리처럼 뾰족하다고 해서 한국의 마터호른이라 불렀다.

바위구간을 지나 거북바위를 오르는 구간은 절벽을 오른쪽으로 돌아난 길에 계단과 데크가 깔려있다. 절벽 아래를 지나는데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응달진 곳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보이기도 한다. 너무 성급했나. 알싸한 향기를 뿜는 생강나무는 막 꽃망울을 터트렸고, 진달래는 곧 터트릴 듯 토실하게 물이 올랐는데, 아직 기온은 게으름을 피운다.

거북바위는 몸집이 큰 바위봉우리와 작은 봉우리를 합치면 거북 모양을 닮았다고 붙여졌는데 오르면서는 그 형체를 알 수 없고 정상 가까이에서 내려다봐야 그 모습을 드러낸다. 큰 바위봉우리를 돌아 오르면 거북의 몸통이 되는 봉우리로 오를 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어두었고, 돌아내려와 머리가 되는 봉우리로 건널 수 있도록 다리가 놓여 있다. 이 두 봉우리를 그냥 지나쳐 돌아가는 우회하는 길이 나 있어 대부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이번에 동행한 이들은 군위가 고향인 산성산악회 회원들이다. 학창시절 4~5㎞나 되는 거리를 아침저녁으로 걸어서 통학을 하며 기초체력을 길러서인지 우회하는 길을 버리고 곧장 올라선다. 큰 봉우리를 돌아 나와 작은 봉우리로 건너면 사면에 굵은 로프가 매져있다. 올라서서 정상 방향으로 진행하면 안부로 연결되는 계단이 놓여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멀리서 보았을 때 삿갓을 쓴 형태의 구간이다.

바윗길과 얼어붙은 서릿발이 녹은 진흙길을 반복하며 15분을 힘겹게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인 정상이다. 맑은 날이면 거제도와 한려해상국립공원 일대의 크고 작은 섬들을 감상할 수 있으나, 아쉽게도 구절산을 사이에 두고 당항포만과 당동만, 진행방향의 맞은편으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넘어 벽방산까지 조망될 뿐이다.

발아래 보이는 당항포만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기습작전으로 왜군을 격퇴하며 승전고를 울린 당항포대첩의 무대이기도 하다. 정상표석 왼쪽 바위틈에 자라는 소사나무(자작나뭇과)가 눈길을 끈다. 높이는 고작 1m 남짓하지만 수령 300년으로 추정 되는 고목이다. 여러 갈래 가지를 뻗어 뿌리를 박아내린 그 생명력이 경이롭다.

정상에서 남쪽방향 엄홍길전시관 이정표를 따라 내려선다. 다소 가파른 내리막을 7분 정도 진행하면 군데군데 돌무더기가 보이더니 제대로 모습을 갖춘 산성이 나온다. 거류산성(경남문화재자료 제90호) 흔적의 성을 일부 구간은 말끔하게 복원시켜두었다. 둘레 1.4㎞, 성벽 높이 3m, 너비 4m로 가야시대 소가야국이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5분 정도 내려서면 벤치가 놓인 쉼터에 장의사 방향 임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임도로 내려가 장의사를 거쳐 산허리를 돌아 엄홍길전시관으로 갈 수도 있으나 곧장 능선을 따른다. 너덜길이지만 까다로운 길은 아니어서 걷기는 편하다. 20분을 걸으니 작은 봉우리에 닿는데 ‘문암산’으로 적은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주변에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숲에 가려 조망은 없다. 여기에서도 장의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장의사(藏義寺). 절 이름치고는 특이하지만 뜻은 해탈의 염원을 품었다는 절이다. 문암산을 지나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15분 남짓 진행하면 돌탑과 벤치가 놓인 쉼터를 지난다. 이후는 가파른 내리막인데 대부분 계단을 놓아두어 위험한 구간은 없다. 20분을 내려서서 숲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장의사를 돌아온 길과 만나 완만한 흙길을 걷는다. 무덤 몇 기를 지나자 정면으로 주차장과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고향인 고성군에서도 대표로 꼽히는 산인 이곳 산자락에 엄홍길전시관을 세운 것이다. 목적지가 눈에 들어오자 다소 느긋해진다. 숲으로 시선을 돌려 꽃을 찾아보지만 아직 이른지 보이질 않는다. 전시관에 다다를 무렵 빗방울이 떨어진다. 전시관 주차장 둘레에 심어둔 조경수에서 봄꽃을 만났다. 동백꽃이다. 분명 봄을 보았다.

대구시산악연맹 이사 apeloil@hanmail.net

☞ 산행길잡이

동부농협~(20분)~등산안내도~(20분)~무덤~(30분)~전망바위~(30분)~거북바위~(15분)~정상~(8분)~거류산성~(30분)~문암산~(50분)~엄홍길전시관

거류산은 경남 고성군을 대표하는 산으로 남해 일대 섬들과 임진왜란의 전승지인 당항포만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풍광이 빼어난 산이다. 종주코스와 정상까지 왕복하는 원점회귀코스 등 다양하게 등산코스를 잡을 수 있다. 동부농협을 출발하는 종주코스는 약 6.3㎞로 3시간30분 정도 소요되고, 엄홍길전시관을 출발해 정상을 되돌아 나오는 코스는 약 7.3㎞로 4시간이 소요된다.

☞ 교통

구마고속도로 내서IC에서 내려 5번 국도를 따르다 현동교차로에서 진주·통영 14번 국도로 갈아탄다. 삼락교차로에서 좌회전으로 당항만로를 따라 거산삼거리를 지나 한내삼거리까지 간 다음 우회전으로 800m를 가면 왼쪽에 동부농협 하나로마트가 있다.

☞ 주소

동부농협: 경남 고성군 동해면 봉암3길 3
(고성군 동해면 외곡리 851-1번지)

엄홍길전시관: 경남 고성군 거류면 거류로 335
(고성군 거류면 송산리 276번지)
☞ 볼거리

엄홍길전시관

산행 들머리로 잡거나 날머리로 잡는 지점인 거류면 송산리에 2007년 개관한 엄홍길전시관(1천117㎡)이 있다. 엄홍길 대장은 고성군 영현면 봉발리에서 태어났다. 전시관에는 히말라야 8천m가 넘는 16봉우리를 모두 오른 엄 대장의 등반장비와 의류, 각종 기록물이 있다. 개관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며 입장료와 주차요금은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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