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아노말리사·하이-라이즈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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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01   |  발행일 2016-04-01 제41면   |  수정 2016-04-01

아노말리사
권태로운 중년男의 하룻밤 일탈 그린 ‘어른용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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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유발 전문가이자 스타 강사로 나름 인기를 얻고 있는 중년의 남자 마이클 스톤(데이비드 튤리스). 정작 그는 지독한 무기력과 외로움으로 인해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강연을 위해 예전에 살았던 신시내티로 출장을 온다. 프레골리 호텔에 여장을 푼 그는 아내와의 건조한 통화를 끝낸 후 10여년 전에 헤어진 옛 애인에게 전화를 건다. 다소의 기대감과 떨림으로 호텔에서 재회한 두 사람. 하지만 마이클의 섣부른 행동으로 만남은 곧 민망하게 끝난다. 크게 낙심해 객실로 돌아온 마이클은 우연히 마주친 리사를 통해 권태로운 일상을 탈출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한다.


재담꾼 찰리 카우프만의 첫 스톱모션 애니
1261개 얼굴·1천여 의상 제작 리얼리티 업
남녀 주인공 외 수많은 인물 목소리 단 1명



‘아노말리사’는 ‘천재 이야기꾼’ 찰리 카우프만의 첫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그는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의 각본과 ‘시네도키, 뉴욕’을 감독하고 ‘이터널 선샤인’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영화에 모티브가 된 건 그가 예전에 프란시스 프레골리란 필명으로 작업한 연극이다. 라디오처럼 목소리로만 진행되는 이 독특한 방식의 연극은 자기 외의 모든 타인을 위장한 동일 인물로 인식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인 ‘프레골리 망상’을 다룬다. 이 증상을 “감독에게 영감을 주는 현상”이라고 정의한 찰리 카우프만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로 인식해, 이를 개성 없는 사회를 풍자하는 방식으로 은유한다.

마이클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하룻밤 동안의 이 여정은 낯설지만 독창적이다. 권태에 찌든 중년 남성의 일탈이 그리 새로울 건 없지만 관계와 소통에 관한 철학적 주제를 마이클의 심리와 감정으로 치환해낸 접근방식은 인상깊다. 그 속에 녹여낸 삶의 고독, 외로움, 사랑, 행복 등 카우프만이 천착해왔던 보편적인 감정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의 메시지도 매력적이다.

변칙이라는 뜻의 ‘아노말리’와 여주인공 이름인 ‘리사’를 합친 영화의 제목처럼 ‘아노말리사’는 기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흥미롭고 색다른 차원의 제작방식을 시도했다. 먼저 눈길을 끄는 건 3D 프린팅 기술로 출력된 놀랍도록 섬세하고 사실적인 캐릭터들이다. 그야말로 노력과 열정이 빚어낸 리얼리티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이를 위해 1천261개의 얼굴과 1천개가 넘는 의상과 소품을 만들어냈고, 2초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매일 48개의 프레임을 만들었다. 특히 전형적인 스톱모션 영화와의 차별을 위해 이마와 턱, 2개 부분으로 나눠진 얼굴판의 연결부위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인간과 비슷해 보이는 로봇을 보면 생기는 불쾌감)’를 영리하게 비켜갔다.

영화 속 수 많은 인물은 마이클과 리사를 제외하면 남녀노소 전원의 목소리는 톰 누난이 맡았다. 이는 연극 공연 당시 예산 상의 문제로 한 명의 배우가 여럿을 연기한 것에 기인했지만,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두 같게 들린다는 설정은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주제와도 제대로 맞아 떨어진다. 인간 관계의 희망과 열망을 누구보다 독창적으로 풀어낸 또 한 편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장르:애니메이션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하이-라이즈
악몽 같은 그들의 유토피아…‘설국열차’ 수직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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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로열(제레미 아이언스)이 설계한 40층 아파트 하이라이즈. 고소득층 사람들만이 입주할 수 있는 이곳은 슈퍼마켓, 수영장, 학교 등 모든 편의시설과 서비스가 마련되어 있어 외부로 나갈 필요가 없는 유토피아다. 이곳에 지적이고 섹시한 외모의 생리학과 부교수 랭(톰 히들스턴)이 새로 입주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통의 개념이었던 엘리베이터 고장을 시작으로 잦은 정전, 의문의 추락사와 폭행사건 등이 발생하고, 하이라이즈의 결함이 하나씩 더해질수록 심해지는 차별과 불평등은 갈등을 유발하며 사람들의 숨겨진 본성까지 건드리게 된다.

‘하이-라이즈’는 1975년 런던에 세워진 가상의 최첨단 고층아파트 하이라이즈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신분에 맞는 층에 거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설국열차’의 수직 버전으로 읽힌다. 인류 마지막 생존 지역인 열차처럼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한정되고 폐쇄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점이 그렇고, 공간마다 철저히 분리된 계급으로 인해 갈등과 대립이 시작되고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닮았다. 특히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인간이 창조한 절망적 풍경, 그리고 환경 발전으로 생겨난 심리학적 결과에 대한 우화적인 접근은 절묘하게 상통한다.


1975년 신분 따라 층 나뉜 40층 아파트 배경
‘태양의 제국’의 J.G. 발라드 동명소설 원작
인물 내면·계층간 갈등 묘사 관념적 아쉬움



‘태양의 제국’으로 가디언상을 수상한 J.G. 발라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현대 사회 속 인간의 불안하고 어두운 심리를 묘사한 초현실주의 문학에 독보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이름을 알린 그는 이같은 문학적 차별성으로 ‘발라드스러운’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하이-라이즈’는 그 맥락에서 미래사회에 대한 경각심과 철학적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현대인의 야만적 본성과 사회결함의 근원을 고발함으로써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나약한 정신세계가 빚어내는 불협화음 말이다.

영화는 원작에 서술된 독특하고 매혹적인 공간들을 세심하고 꼼꼼히 재현하는데 힘쓴다. 75년의 레트로한 모습과 흡사 유토피아를 연상케하는 미래적 모습이 뒤섞인 공간과, 시간과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 디스토피아로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색다른 체험이다. 동시에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따라 인물 간의 갈등과 대립, 예측불허 사고 등은 21세기형 신세계 스릴러라는 독특한 SF세계를 구축한다. 벤 웨틀리 감독은 “아마도 환상적인 악몽을 꾸는 기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인물들의 내면이나 계층 간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사건 동기에 대한 묘사는 너무 관념적이라 의미 전달에선 좀 아쉽다. 그럼에도 인간 욕망의 그릇된 광기와 나르시시즘의 끝을 보여주는 퇴폐스러움은 매혹적으로 극에 녹아들어 서사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상쇄시킨다. 톰 히들스턴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랭 역을 맡아 치명적인 매력과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그만의 연기 스펙트럼과 매력으로 소화했다. 그 스스로도 이번 촬영을 생애 가장 즐겁고 창의적인 경험으로 꼽았다고 하니, 주목된다. (장르:스릴러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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