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영덕 블루로드 B코스와 죽도산 전망대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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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08   |  발행일 2016-04-08 제36면   |  수정 2016-06-17
남빛 바다 끼고 걷는 갯바윗길과 솔숲길…굽이 돌 때마다 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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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공원에서 본 동해바다와 죽도산까지 해안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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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물리 지나 본 동해안의 갯바위와 멀리 죽도산의 아름다운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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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블루로드 B코스, 동해바다와 함께 걷는 환상의 트레킹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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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유마을에서 본 죽도산 전망대와 동해바다의 절경이 아름답다.


해맞이공원∼축산항 ‘푸른대게의 길’
산과 바다 어우러진 해안경치 환상적

‘대게 원조’ 차유마을 지나 해송길 일품
출렁다리 건너 피라미드 같은 죽도산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이 四色의 절경

해파랑길 21구간 출발지인 영덕 해맞이 공원 돌비 앞에 선다. 동해 바다는 남빛 의상을 입고 수평선까지 푸른 마스카라를 그린다. 그 아슬한 남빛 선과 맞물려 하얀 뭉게구름이 솜사탕처럼 피어있다. 그 위로 맑은 청잣빛 하늘이 곡옥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언덕배기 도로 아래로 해맞이 공원이, 그 뒤로는 해풍이 돌리는 풍력발전기의 거대한 바람개비가 우두둑 우두둑 소리를 내며 그린 에너지를 만든다. 나는 갑자기 실어증에 걸린다. 이런 황홀한 경관은 책갈피 속의 문자나 도화지에 그리는 크레파스로는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오감으로 느끼고,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법열의 붓으로만 표현되는 언어 밖의 경관이다.

동해에 가면 신화처럼 숨 쉬는 고래 잡으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가는 송창식의 고래 사냥도 연상되고,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사는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도 만나보고 싶다.

◆뱀 사냥으로 인한 산불이 만든 에덴동산

붉은 토번을 머리에 쓰고 대게 집게발을 형상화한 창포말 등대와 오늘 트레킹의 종착지인 축산 죽도산까지 펼쳐지는 해안경치는 그야말로 환몽이고 신비롭다. ‘푸른대게의 길’이라 부르는 B코스 첫발을 내딛는다. 해맞이 공원 나무 데크 계단길이다. 산책로와 갖가지 조형물이 아기자기하다.

해맞이 공원과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된 경위는 이러하다. 1997년 이 일대에 큰 산불이 나 해안과 인근 산을 온통 태워 버렸다. 마을 개구쟁이들이 뱀을 잡는다고 뱀 구멍에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었다. 며칠간 꺼지지 않은 불길에 주위 일대 해안은 황폐화되고 민둥산이 되었다. 불에 타다 만 나무로 나무 계단을 만들고, 그 불탄 자리 해안에 해맞이 공원을 만들었다. 민둥산에는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여 아름다운 경관, 녹색 환경, 녹색 에너지 생산이라는 세 마리 대게를 다 잡았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이었던 뱀 사냥으로 인한 산불이 이곳을 동해의 에덴동산으로 만들었다.

푹신한 흙길에 발바닥이 호강한다. 아련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두 귀를 황홀하게 한다. 바다는 나를 겸허하게 한다. 큰길로 오르고 대로를 걸어 대탄해변을 지난다. 삼거리 정자도 그냥 지나치고 오보해변으로 들어선다. 바다가 기암괴석에 앉아 해바라기하며 졸고 있는 갈매기를 멀리서 온 파도소리가 흔들어 깨운다.

해녀상이 서있다. 물질을 하여 자식을 키우고 살림을 살아가는 바다마을 여인들의 성스러운 조형상이다.

“저 바다 속에 돈이 있지라우. 갯마을에 태어나 갯마을로 시집와 평생 물질하고 살아스니께요. 저 바닷속에 나의 모든 것이 있구만이라.”

몇 년 전 부산 이기대 해안에서 모닥불로 몸을 말리던 어느 해녀와, 멀리 전라도 여수에서 왔다는, 나눈 대화가 잠시 머릿결로 흘러간다. 나는 그때 해녀들의 밥상이, 사랑이, 바다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노물리 마을을 통과하면서 해안 산자락길이 나타난다. 얕은 오르막 내리막과 또 오불꼬불 도는 길은 더없이 쉽고 편했다. 멀고 먼 옛날 이야기 속에서 한없이 출렁출렁 밀려오는 파도는 나의 영혼을 이리저리 헹구어낸다.

◆길은 대나무 묵화 같은 한 폭 동양화 같고

석리로 들어서자 길은 온통 돌길이다. 바닷가에도 모래는 한줌도 보이지 않는다. 길가에 군인상이 있다. 동해 해파랑길은 과거 동해바다로 침투하는 무장공비들을 막기 위한 전방초소역할을 한 길을 하나로 이은 길이다. 비록 지금은 자유로운 걷기 길이 되었지만 나라를 지키는 군인정신은 영원히 유효하다는 조형상이다.

해송이 뿜어내는 공기가 맑고 상쾌하다. 바다의 오존이 소나무 피톤치드와 섞인 공기는 심신을 정화시켜준다. 심호흡을 한다. 정신까지 맑아진다. 어느덧 경정3리에 도착한다. 역시 어부들이 사는 바닷가 마을은 어선들과 잡은 고기를 말리는 광경과 각종 어구로 너절하여 산만하나 삶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 어촌에는 유난히 갈매기도 많다. 사람이 접근해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아마 어부들과 더불어 살아온 오랜 시간이 이런 풍경을 만들었을 것이다.

부두이자 도로인 길을 지나자 아름다운 숲길, 해파랑길이 계속된다. 파도는 여전히 쉴 사이 없이 밀려와 갯바위에서 부서진다.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 저 무한히 반복되는 파도소리 그 하얀 물거품, 사람을 질리게 하는 무의미한 저 디오니소스식 생성과 소멸,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의미없는 반복은 죽음과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음은 경정1리. 아름다운 동해 어촌마을을 지나고 바닷가 오솔길을 한 번 더 걸어 경정2리 차유마을에 닿는다.

대게원조마을비가 이곳에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경정마을을 순시할 때 수라상에 대게가 올라 맛있게 먹었다는 기록이 있어 ‘영덕대게원조마을’이라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또 해양수산부로부터 ‘아름다운 어촌마을’로도 선정되었다. 대게는 발 마디가 대나무를 닮아 대게이며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뛰어나며, 다량의 필수아미노산이 포함된 영양의 보고이다. 그렇게 돌아보니 오늘 걸어온 길이 어떻게 보면 대나무 묵화 같은 한 폭의 동양화였다. 차유마을은 어촌체험마을이다. 통발체험, 갯바위낚시, 맨손잡이 등 체험을 할 수 있다.

◆걷는 것은 자연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

이제 숲길로 접어든다. 오늘 트레킹의 날머리가 되는 축산항까지 1㎞ 남짓 남았다. 해송 삼림욕을 할 수 있는 우거진 숲정이길이 나타난다. 느닷없는 행운이다. 바닷가는 더욱 기암괴석과 간혹 가풀막진 해식애길이 나타나지만 위험이 없어 긴장되고 스릴만 넘쳐난다. 오사바사한 길이 끝나면 거기에 긴 백사장이 신기루처럼 나타나고, 축산항으로 건너가는 출렁다리인 현수교가 보인다. 그 뒤로 마치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생긴 죽도산이 고주박잠을 자고 있다. 나는 백사장길 지나고, 출렁다리 건너면서 헝가리 무곡 제5번을 듣는다. 마음 저 아득한 바닥에서 들려오는 헝가리 무곡 제5번은 흰 물거품에 섞여 부서지곤 하던 나의 영혼을 정박시켜주었다.

죽도산 데크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선다. 북으로 뱀같이 구불구불한 해안과 후포항 더 멀리 푸른빛으로 하늘까지 닿는 바다가 보인다. 남으로는 오늘 걸어온 해안이 대게의 발처럼 이어지면서 멀리 해맞이 공원과 영덕 풍력발전단지의 바람개비가 아름답게 돌고 있다. 파란바다 초록의 산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돌아가는 환상적인 바람개비들은 절경 중의 절경이다. 서로는 소가 누워있는 모습과 닮은 동해의 미항인 축산항이 보이고, 그 너머 대소산 봉수대와 작은 산군이 길게 늘어져 있어 내륙도 그야말로 천혜의 비경이다. 죽도산 자락 대나무 숲속에 조성된 데크길과 전망대도 예사로운 경치가 아니다.

전망대 안을 몇 바퀴 돈다. 전망대 벽에 걸어둔 세계의 유명한 등대사진과 해설을 보면서 한 바퀴 돌고, 사방의 경치를 보면서 한 바퀴 돌고, 죽도산 자락길을 보면서 한 바퀴 돌고, 그래도 아직 삭지 못한 어떤 분노 때문에 한 바퀴 돌고, 그래서 몇 바퀴나 돌았다.

“바다를 꿈꾸는 산길, 걷는 것은 자연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A코스의 멘트가 끝까지 남아 있었던 영덕 블루로드 B길은 죽도산 전망대에서 최후의 불꽃을 태운다. 하얀 전망대 기둥에 원형의 얼굴을 한 전망대 방과 꼭두머리에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머리띠를 두른 죽도산 전망대는 그 자체가 완성된 미학이었다. ‘코난 바다를 품다’라는 전망대 바로 아래 찻집을 지나고, 바다를 집게발로 집고 있는 축산항 접안도로를 걸어서 남씨 발상지에 도착해 트레킹 일정을 마친다. 블루로드 B코스는 마법의 향기 속을 걷는 판타지의 하루였다.

글= 김찬일(시인·대구문협 이사)

사진=김석(대우여행사 이사)
http://cafe.daum.net/dmschi

☞ 여행정보

▶트레킹코스(영덕 블루로드 B코스): 해맞이공원~대탄항~오보해수욕장~노물리(해녀상)~석리(군인상)~경정3리~경정1리~경정2리(차유마을, 원조대게마을비, 어촌체험마을)~백사장과 출렁다리~죽도산 전망대~축산항 남씨발상지. (12.2㎞, 5시간 소요)

▶문의: 영덕군청 관광과 (054)730-6394, 영덕 문화원 (054)734-2456, 삼사해상공원관광안내소 (054)730-6398, 어촌체험마을 (054)732-4967

▶주위 볼거리: 괴시리 전통마을, 신돌석 장군 생가지 및 유적지, 인량리 전통마을, 영덕 신재생에너지 전시관, 강구항 대게거리, 삼사해상공원, 풍력발전단지

▶주소: 영덕군 영덕읍 해맞이길 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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