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영화 ‘시간이탈자’ 여주인공 1인2역 임수정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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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22   |  발행일 2016-04-22 제40면   |  수정 2016-04-22
“두 번의 사랑과 두 번의 죽음…드문 경험서 내 여성성 찾게 됐어요”
[시네토크] 영화 ‘시간이탈자’ 여주인공 1인2역 임수정

감성추적스릴러를 표방한 ‘시간이탈자’는 1983년과 2015년의 시간차를 두고,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한 두 남자의 고군분투를 숨 가쁘게 따라간다. 1983년의 남자 지환(조정석)과 2015년의 남자 건우(이진욱)는 우연히 서로의 꿈을 통해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데, 임수정이 연기한 윤정과 소은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며 두 남자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오랜 중국활동 후 컴백한 곽재용 감독의 신작은 이처럼 시공간을 넘나드는 복잡한 스릴러 형식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중의 반응은 즉각적이다. 개봉 이후 현재(20일)까지 국내 박스오피스 정상을 한 번도 내주지 않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긴 국내 멜로 장르에 한 획을 그은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의 곽재용 감독과 그의 새로운 뮤즈로 탄생한 임수정의 의기투합이 아닌가. 곽 감독은 스릴러 장르지만 자신의 장기인 멜로 감성을 영화에 제대로 녹여내기 위해 가장 먼저 임수정을 떠올렸고, 평소 스릴러 장르를 즐겨했던 그녀는 그의 부름에 반색하며 화답했다. “이야기에 완전히 반했다. 정말 단 한 줄, 한 페이지도 멈추지 않고 쭉 읽히더라.”

‘시간이탈자’는 스릴러와 판타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며 30년 전의 미제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의 힘으로 러닝타임을 지탱해간다. 누구보다 “낯선 환경에 던져지는 게 좋고, 그래야 힘도 더 발휘되고 적극적으로 변한다”는 임수정에겐 딱 부합되는 장르의 영화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연기에 대한 아쉬움과 고민에서 해방된 듯 한결 편안하고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배우라는 직업은 정말 나와 잘 맞다. 이처럼 연기를 통해 나를 표현하거나 드러내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임수정은 이번에도 충만된 에너지와 열정으로 관객과 당당히 마주했다. 그런 그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네토크] 영화 ‘시간이탈자’ 여주인공 1인2역 임수정

“미제 살인 다룬 스릴러 판타지물로
곽재용 감독標 감성 잘 녹아 만족
1983년 윤정-2015년 소은役 맡아
조정석·이진욱과 멜로 연기 행복

연기·흥행 다 인정받는 30대 女優로
몇년 내 만족할 만한 작품 내고파
차기작은 김종관 감독 저예산영화
쉰에도 소녀·관능적 감성 지니고파”

▶두 남자로부터 사랑을 받는 역할이다. 행복했겠다.

“정말 행복했다(웃음). 정석씨와 진욱씨의 캐스팅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 건, 두 분의 성격이 다르면서 비슷한 점이 있는데 그 부분이 시간을 초월해 사랑을 담은 이 영화에 제대로 부합했다는 점이다. 정석씨가 되게 유쾌한데 진지한 반면, 진욱씨는 진지한데 유쾌한 게 있다. 또 감독님까지 여배우를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분이라서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촬영했다.”

▶윤정과 소은은 시대를 달리하지만 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닮았다.

“시나리오에서도 외모는 물론 손가락 세는 방법까지 똑같을 만큼 두 인물이 닮은 것으로 설정돼 있었다. 덕분에 처음에 가졌던 1인 2역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대신 두 인물 사이에 30년이라는 간극이 존재하는 만큼 약간의 차별화가 필요했고 그래서 생각해낸 게 여성성에 변화를 주는 것이었다. 1983년의 윤정은 어쨌든 지금보다는 더 여성스럽고 소녀 감성을 지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약혼자와 함께 웨딩드레스를 보러 가는 게 당연시되고 있지만 당시의 윤정은 그게 부끄러워 혼자 간다. 반면 2015년의 소은은 요즘 여성처럼 활동적이고 자기 감정에 솔직한 면을 부각시켰다.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가 흥미로웠던 건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가 대부분 소녀 혹은 중성적이거나,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나가지만 히스테릭한 여성이었다면, 이번에는 두 인물 다 수동적이고 여성성이 극대화된 캐릭터라는 점이다. 의상이나 헤어스타일도 캐릭터에 맞게 사랑스럽게 잘 나온 것 같다.”


▶중국활동 후 오랜만에 국내 무대로 돌아온 곽재용 감독과의 작업인데 어땠나.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 모두 신인일 때부터 좋아한 작품이다. 특히 곽재용 감독님은 로맨스영화에 관한 한 탁월한 감각과 능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촬영현장에서 활약하는 몇 안 되는 노장 감독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심 기대하고 응원했다. 결과적으로도 ‘시간이탈자’는 곽재용 감독님 특유의 감성이 잘 녹아 있어서 만족한다.”


▶영화에서 두 번 죽는다. 한 영화에서 두 번 죽는다는 게 좀 특이하긴 하다.

“맞다. 확실히 한 영화에서 두 번이나 죽는 건 드문 경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작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경우가 몇 번 있긴 한데, 배우 입장에선 하는 일 없이 덕 보는 일이다(웃음). 죽은 이후는 배우가 보여주는 게 없는데도 관객은 그 인물을 계속 생각하게 되잖나.”


▶만약 환생을 한다면 어떤 얼굴과 직업을 갖길 원하나.

“같은 얼굴은 아니더라도 배우는 다시 해보고 싶다. 아마 지금보다는 훨씬 빨리 이 길에 들어섰을 것 같다. 이왕 할 거면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평소 해왔다. 스무 살 때 모델로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요즘 아이돌처럼 10대 때 미리 진로를 정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의 임수정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은가.

“역시 같다. ‘수정아, 이왕 할 거면 빨리 시작해’라고 말이다. 나도 무명에 가까운 신인 시절이 3년 있었다. 오디션도 많이 봤고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드라마 ‘학교 4’(2001)로 데뷔했고 영화 ‘장화, 홍련’(2003)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때 나이가 이미 20대 중반이었다. 물론 더 일찍 데뷔한다고 해서 그런 기회가 찾아오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연기적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기적 욕심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로 들린다.

“물론이다. 연기와 흥행 모두 인정받는 30대 여배우로 기억되고 싶다. 종종 대표작을 꼽아보라는 질문을 받으면 선뜻 답을 못하겠다. 대중에게 나를 각인시킨 ‘장화, 홍련’이나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이 나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아직 만족할 수 없다. 개인적인 욕심으론 향후 몇 년 안에 나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작품을 뽑아내고 싶다.”


▶예를 든다면.

“‘캐롤’ 같은 영화다. 영화 속 동성애 코드가 회자되긴 했지만 내가 주목한 건 케이트 블란쳇이다. ‘캐롤’은 우리 나라 기준에서는 큰 규모지만 할리우드 기준에서는 저예산 영화다. 케이트 블란쳇은 규모가 큰 상업영화와 저예산 영화를 남나들며 자기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그래서 김종관 감독의 저예산 영화를 차기작으로 선택한 건가.

“그런 마음이 밑바탕이 되어 있긴 하다. 김종관 감독과의 친분도 있지만 시나리오를 재밌게 읽었다. 옴니버스 형식이라 나 말고도 몇 명의 여배우가 출연한다. 난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따로 구분 짓고 싶지 않다. 어떤 영화든 시나리오만 좋다면 참여 의사가 확실히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독립영화계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분명한 건 내가 영화를 정말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든다. 연기할 무대가 마련돼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서 보여주는 게 배우 본연의 모습일 것이라고 말이다. 어차피 접근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연기를 보여주는 건 똑같다. 이젠 그 부분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럴 의지와 용기도 생겼다.”


▶그런 때문인지 이번 영화에선 한결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졌다.

“20대 때는 일밖에 몰랐는데 30대에 접어들면서 배우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연인 임수정의 모습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에 가치를 두고 나름대로 부단히 노력했다. 덕분에 예전의 공허하고 헛헛한 감정은 사라지고 뭔가 좋은 기운이 채워지면서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겁게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그 기운이 모든 것에 영향을 주더라. 내 연기에서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졌다면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매 작품을 통해 항상 뭔가를 느끼고 배운다고 했는데 ‘시간이탈자’에선 무엇을 느끼고 배웠나.

“내 여성성을 찾은 것 같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만들어가는 협업의 즐거움을 새삼 느꼈다.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의지하고 내가 끌어주기도 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점에서 나에겐 치유의 의미로 다가온 영화이다.”


▶여전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동안 미모를 자랑한다.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나 역시 시간 이탈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어리다는 얘기를 들으면 당연히 기분 좋다. 다만 이쪽 세계가 특별한 편이라 오래 있다 보면 자기가 예쁜 줄 아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가능한 한 긴장하고 현실을 자각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SNS 공간을 통해서도 평소 그런 생각을 가끔 드러내곤 하는데 역시 비슷한 나이대에서 가장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더라. 특히 젊어 보이는 외모 이상으로 감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0, 50대가 되어도 ‘저 배우는 정말 소녀 같고 사랑스럽고 관능적인 감성을 지녔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건 여배우로서 최고의 찬사다. 나 역시 그런 여자로, 그런 배우로 남고 싶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 제공=YNK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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