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홍의 시시콜콜 팝컬처] 지휘자 김현철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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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29   |  발행일 2016-04-29 제40면   |  수정 2016-06-17
“꼭 한 우물만 팔 이유는 없다”…웃기는 개그맨의 또다른 울림
어눌한 발음으로 내 웃음코드와 통하던 그
클래식 마니아로 여러 무대서 지휘봉 잡아
‘아마급’ 딴지 딛고 한국판 바비 맥퍼린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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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준비를 할 때 KBS ‘아침마당’을 곧잘 켜놓는다. 이 프로그램은 요일마다 정해진 코너가 있는데, 월요일은 ‘고급정보 열전’이란 제목으로 방송이 나간다. 여기에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출연해서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한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을 통해 등수를 매기는 형식이 재미를 더하는 이 프로그램에 나온 누구는 건강 지식을, 또 누구는 교통 상식을 알려준다. 여기에 개그맨 김현철도 나온다. 그가 전하려는 고급 정보는 클래식 음악이다. 개그맨 김현철이 아니라 지휘자 김현철의 자격으로 말이다.

일찍이 나는 김현철식 코미디를 좋아했다. MBC의 어느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왔던 그가 어눌한 발음으로 연기하던 시사프로 진행자 역은 내가 가진 웃음 코드와 통했다. 꼽아보니 그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구나. MBC 코미디 방송이 다른 방송사들과 달리 침체기를 겪은 지난 10년 동안, 나는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뭘 했는지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해 야구중계를 보다가 잠실운동장 관중석에서 카메라에 잡힌 이 개그맨을 다시 봤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경기를 보려고 같은 이름의 가수 김현철도 동시에 잠실을 찾아왔고, 카메라는 이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두 명의 김현철은 모두 삼성 라이온즈의 열성 팬이다. 그날 나는 개그맨 김현철이 가진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가깝게 끌어당긴 카메라 초점은 그의 진지한 얼굴을 담아냈다. 그토록 심각하고도 차분한 모습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코미디 프로에서 카메라는 출연자 여러 명을 전체 구도로 잡는다.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우리는 코미디언의 세세한 표정을 읽을 수 없다. 반면에 야구 중계를 보다 보면, 경기가 뜻대로 안 풀릴 때 수심에 가득 찬 감독의 얼굴을 비춰주는 일이 허다하다. 그럴 때 야구 감독은 참 고독해 보인다. 그리고 멋있다. 배의 선장도 그렇고, 관현악단 지휘자도 그렇지 않나?

그 인상 때문에 나는 TV에서 그가 실내악단을 지휘하는 모습을 처음 보고, 지금껏 그가 걸어온 길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아는 사람들은 다 알 만큼 클래식 마니아였던 김현철은 그동안 크고 작은 무대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실력을 드러내왔다. 그는 여러 방송에 나와서 고전음악을 소개했고, 지금도 네 군데 음악단체에서 지휘 경력을 쌓고 있단다. ‘아침마당’에 나온 지휘자 김현철은 연주할 음악에 관한 정보를 진지하게 설명한다. 진지할수록 웃음을 더 불러내는 식의 개그를 구사해왔던 터라, 지휘봉을 들고 근엄하게 선 모습을 보는 이들의 반응은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실제로 내가 봤을 때, 이 초보 지휘자는 이따금 실수를 범했다. 지휘자들은 단원들을 모아 음을 정제하고 숙련시키는 연습을 거듭해야 하는데, 그의 악단은 음이 얽혀서 통일감을 놓치는 대목을 종종 드러내었다. 어찌되었거나 재미있기는 한데, 마음 편한 감상은 아니었다. 재미란 것도 비슷한 무대가 거듭되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당연히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당사자의 성급함 때문일까, 내 귀에는 그가 만들어내는 음이 색다른 피치를 동반하지 못한 채 강약과 고저를 제대로 통제 못하는 것같이 들렸다.

나보다 몇 배나 예민한 귀를 가진 음악평론가들이 그가 잘하고 못한 점을 찬찬히 따로 짚어서 되먹임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딱하게도 평론가들은 그를 아직 지휘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프로 지휘자가 아니란 점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프로페셔널을 보증하는 확실한 근거는 대학교 전공과 시험 통과 자격증이고, 그게 없으면 아마추어나 취미 생활로 의심받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작 우리나라 클래식 평론가들은 의사나 건축사가 많고, 이들 겸업 종사자들도 음악 대학 졸업장이나 자격증은 당연히 없다는 것이다. 예술 비평은 작품이나 작가를 나누고, 관계를 긋고, 속내를 살피고, 이름을 붙이는 일이다. 어쩌면 지휘자 김현철에 대한 평가는 그런 구분이나 해석이 닿지 못하는 문턱에 걸려있는 게 아닐까?

여기 한 개그맨의 변신에 대한 옹호는 상식적인 선에서 밋밋하게 이루어질 것 같다. 고전 음악에 대중문화의 요소를 끌어들여 음악 팬들을 늘리는 기대 효과가 그것이다. 실제로 스타들은 자신이 한 단계 성숙해질 때마다 자기 팬들도 같이 격상시켰다. 비틀스가 그랬고, 서태지가 그랬지 않나.

좀 다른 사례이긴 한데, 차트 정상에 이름을 올린 바비 맥퍼린도 있다. 그는 팝 음악계에 이름을 알린 뒤에 클래식 거장과의 아카펠라 협연을 몇 번 시도했다. 끝내 그는 본격적인 지휘자로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여러 오케스트라들을 이끈 바 있다. 김현철은 한국판 바비 맥퍼린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현철은 애당초 그들 같은 음악인은 아니다. 그에게 비틀스나 서태지 같은 팬덤도 당연히 없다. 개그맨들은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깎아내리며 남들에게 다가서는 관계로 팬덤의 여지를 애당초 두지 않는다.

더 못되게 보자면, 바비 맥퍼린의 크로스 오버(cross-over) 경력조차도 팝과 클래식계에서 함께 시작된 음반판매 불황에 맞선 이벤트 성격이 강했다. 이 흑인 아카펠라 가수는 처음에는 별종이라고 불렸지만 여하튼 지금은 거장 대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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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과 예술계라는 커다랗고 음험한 체계는 그 속에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만들어 대중의 꿈을 관리하려 한다. 김현철이 지휘하는 무대는 늘 코미디 이미지로 소비된다. 뭐 그래도 괜찮다. 훨씬 소박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 김현철의 고전음악 섭렵기는 언젠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채 보석같이 빛나는 걸작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그는 힘든 월요일 아침에 집을 나서는 우리에게 뭔가를 전

한다. 그것은 인생에서 꼭 한 우물만 팔 이유는 없

으며, 대신 두서너 곳을 더 파더라도 쉬지 말고 하

라는 가르침이다. P&B 아트센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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