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食口 의미 되새기자] <상> 갈수록 줄어드는 ‘가족 저녁식사’

  • 손선우 서정혁 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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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02   |  발행일 2016-05-02 제3면   |  수정 2016-05-02
밥 ‘식(食)’ 자와 입 ‘구(口)’ 자로 이뤄진 ‘식구’라는 단어는 원래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뜻한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요즘은 식구끼리 밥상을 같이하기가 쉽지 않다. 식구의 의미가 퇴색된 것은 가족 구성원의 외부 활동이 늘고, 1인 가구가 증가한 탓일까. 아니면 바쁜 일상 속에서 빠르고 간편한 식문화가 가족의 식사시간을 빼앗아 갔기 때문일까. 2016년 5월 가정의 달에 ‘식구’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가족 인터뷰 
친구들과는 수다떨고 먹지만…가족 절반만 저녁식사 참석 
식사하며 1시간쯤 가족회의…대화 안길어 식사 20분만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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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혜원양(17·혜화여고 1년)=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날은 타지에서 일하는 아빠가 집에 오는 주말뿐이다. 함께 밥 먹는 데는 30분도 안 걸린다. 얘기는 별로 안 하고, 밥 먹고 나면 각자 방에 들어간다. 주말에만 보는 아빠와 서먹하진 않다. 가끔 거실 소파에 앉아서 장난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아빠에게 고민을 털어놓지는 않는다. 고민상담은 친구들이 편하다. 친구들과 밥 먹으면 수다 떠느라 1시간30분이나 걸린다. 엄마 아빠랑 식사시간보다 3배 이상 길다. 엄마 아빠도 바쁘고, 나도 학교와 학원을 다니느라 바빠서 서로 얼굴을 잘 보지 못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 친구들도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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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아씨(여·28·공무원)= 주말 아침이면 부모와 여동생 등 4명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한다. 그마저도 점심 땐 3명, 저녁 땐 2명으로 인원이 줄어든다. 식사 자리에서 고민이나 고충을 털어놓지는 않는다. 20분간의 식사시간 동안 무거운 이야기는 안 한다. 일상적인 대화가 편하기 때문이다. 식사자리에서 고민을 부모에게 얘기하면 걱정할까봐 오히려 부담스럽다. 한 집에 가족 4명이 살고 있지만 평일 아침에 식사를 함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직 부모님만 항상 아침 식사를 함께한다. 출근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서둘러 출근을 한다. 이렇다 보니 식사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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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거룡씨(45·건축사 사무소 청어람 대표)= 평일엔 야근에다 회식 등 각종 모임으로 집에 일찍 들어가기가 힘들다. 주말엔 가급적이면 가족과 함께 있으려고 한다. 주말 아침은 같이 먹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려고 애쓴다. 1시간 정도의 식사를 하면서 가족회의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주말에도 학원 등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아이들이 고교에 진학할 나이가 되면 지금만큼도 지내지 못할 것 같다. 가족 중심의 문화가 옅어지는 건 이제 어느 가족에게서나 나타나는 평범한 현상이다. 친구들의 가정도 나와 비슷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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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재(50·대구 북구의원)= 가족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 지 오래됐다. 아들은 혼자 등교시각에 맞춰 간단하게 빵을 구워 먹고 나가고, 아내와도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가 힘들다. 저녁식사는 주말에만 같이 할 수 있다. 평일엔 일이 일찍 끝나 집에 가더라도 아들이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하고 늦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주말에 함께 밥을 먹는 시간도 20분밖에 안 된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은 온종일 학교에만 있는데,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부모와 얘기하진 않는다. 물어봐도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 그나마 가족 대소사의 경우 스마트폰 단체 채팅방에서 상의하는 데 위안을 삼는다. 대화가 줄어들고 있다는 걸 느낄 때면 왠지 씁쓸해진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서정혁기자 seo1900@yeongnam.com


65세 이상 더 외로운 저녁 38%가 ‘나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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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열린 2016 대구가족사랑 대축제에서 권영진 대구시장 등 참석자들이 가족친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2012년 대선 때 ‘저녁이 있는 삶’이란 어느 정치인의 구호가 화제가 됐다. 야근이 일상화된 한국 직장인들에게 저녁 시간을 돌려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큰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삼시 세끼 가운데 저녁식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져 왔다. 가족이 하루 일과 중 제대로 된 여가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저녁 밥상은 각자의 일로 바쁜 가족들을 한데 불러 모아 서로의 얘기를 꺼내놓게 하는 소통의 매개체다. 또 가정이 사회의 기초 구성 단위로 따뜻한 유대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가족끼리 식탁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2005~2014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가족동반 저녁 식사율은 9년 만에 10.2%포인트나 떨어졌다. 2005년 76.0%, 2008년 68.8%, 2010년 68.0%에 이어 2014년 65.8%로 해마다 줄었다.

가족동반 저녁 식사율의 하락은 65세 이상 노년층에서 두드러졌다. 2005년 87.4%에서 2014년 62.0%로 25.4%포인트나 감소했다. 9년 새 13.4%포인트 줄어든 50~64세와 견줘 감소폭이 두 배 가까이 차이 난다.

2005년 가장 높았던 노년층 가족동반 저녁 식사율이 9년 뒤엔 30~40세(67.5%)와 50~64세(62.2%)보다 낮아진 것은 ‘홀몸 어르신의 급증’ 때문으로 분석된다. 보건복지부의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독거 노인 수는 2005년 77만명에서 지난해 137만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문가들은 “짐이 된다는 이유로 가족과 따로 사는 노인들이 많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노인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가족동반 저녁식사 감소세는 남녀 간에서도 차이점이 있다. 남성의 경우 19~29세의 감소폭이 20.5%포인트로 가장 컸지만, 같은 연령층 여성의 감소폭은 5.4%였다. 20대 남성의 경우 병역 이행 등의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65세 이상은 여성의 감소폭(31.5%포인트)이 남성(15.9%포인트)의 두 배 가까이 높다. 이는 남성의 기대수명이 여성에 비해 짧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남성의 경우 6~11세가 유일하게 가족동반 저녁 식사율이 증가했고, 여성은 3~5세, 6~11세, 30~49세는 각각 0.8%포인트, 1.7%포인트, 0.2%포인트 상승했다. 남녀 모두 유소년기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시기여서, 30~40대 여성의 경우 육아에 전념해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남녀 간 가족동반 저녁 식사율 감소폭은 거주지역과 소득수준별로도 차이가 났다. 남성은 농촌에서 도시로 갈수록 감소폭이 커졌다. 동 지역의 감소폭은 13.6%포인트로 읍·면 지역 감소폭(8.5%포인트)에 비해 5.1% 컸다. 반면 여성은 동 지역(6.6%포인트)과 읍·면 지역(7.6%포인트)의 감소폭이 1.0% 차이가 났다. 소득수준별 가족동반 저녁 식사율의 감소폭은 남성의 경우 두 자릿수대로 크게 벌어졌으나, 여성은 한 자릿수대로 낮았다.

국민 건강 통계에선 가족과 함께 식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조사하지 않았으나 가족 구성원들의 외부 활동이 과거보다 활발해지고 혼자 사는 가구도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질병관리본부 측은 분석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연령층은 결혼을 미루며 독립해 혼자 사는 가구가 늘어나고, 노인들도 자녀와 동거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가족동반 저녁 식사율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 가족 동반 저녁 식사율 현황 (단위:%)
  2005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전체 76.0 68.3 68.8 68.1 68.0 66.1 66.4 65.1 65.8
남성 75.3 65.5 66.5 66.4 65.4 63.6 65.6 62.6 62.4
여성 74.5 68.6 68.0 67.0 68.1 66.6 63.3 64.5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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