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전화 한통·클릭 한번의 약속이라도 소중히 지켜야죠”

  • 최은지
  • |
  • 입력 2016-05-02 07:56  |  수정 2016-05-02 07:56  |  발행일 2016-05-02 제18면
‘노쇼’ 1위 부끄러운 나라 대한민국
‘나 하나쯤…’ 하는 생각 버려야
권리엔 의무 따른다는 마음 가지고
상대 입장서 배려하는 자세 필요해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전화 한통·클릭 한번의 약속이라도 소중히 지켜야죠”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어떤 여인이 숲에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길을 찾으려고 계속 걷다 지친 여인은 우물가에 가서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디뎌 우물 속으로 빠졌고, 다급해진 여인은 큰 소리로 도와달라고 외쳤습니다.

마침 우물 옆을 지나가던 한 나그네가 그 소리를 듣고 줄을 늘어뜨려서 여인을 꺼내 주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남녀는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고 숲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며칠 뒤 다시 길을 떠나야 했던 나그네는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나그네와 여인은 서로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숲에 있던 족제비 한 마리와 우물을 증인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시간은 흘렀습니다. 여인은 결혼도 하지 않고 나그네를 기다렸지만, 길을 떠났던 나그네는 약속을 까맣게 잊은 채 다른 여인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풀밭에서 놀던 나그네의 아이는 지친 나머지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족제비 한 마리가 자고 있던 아이의 목을 깨물어 죽게 했습니다. 나그네와 아내는 몹시 슬퍼했습니다.

몇 년이 흘러 그들에게 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건강하게 자라 걸음마를 뗀 아이는 우물가로 걸어갔습니다. 그러고는 물에 비친 여러 그림자를 들여다보며 즐거워하다가 그만 우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나그네는 그제야 오래 전에 만난 여인과 나눴던 약속을 떠올렸습니다. 결국 그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고백하고 아내와 헤어졌습니다. 서둘러 예전 그곳으로 돌아간 나그네는 그때까지도 혼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마침내 만난 두 사람은 옛날 나누었던 약속을 지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위의 탈무드 이야기를 통해 약속의 중요성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약속은 장래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하여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약속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작은 약속부터 대통령 공약과 같은 큰 약속이 있습니다. 자신과의 약속도 있고, 다른 사람과의 약속도 있습니다. 또한 아는 사람과의 약속도 있고, 모르는 사람과의 약속도 있습니다. 이러한 약속은 지켜질 때도 있고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모르는 사람과의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 노쇼(NO-SHOW)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노쇼는 예약을 한 손님이 아무 말 없이 나타나지 않는 행위로 음식점, 병원, 비행기, 열차, 공연장 등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는 노쇼 1위 국가이며 노쇼 피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4조5천억원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부끄러운 노쇼 1위라는 결과에는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일단 여기저기 먼저 예약하고, 그때 가서 선택하자’ ‘위약금도 없는데 다른 곳으로 가자’ 등과 같은 미성숙한 시민의식, 예약취소에 대한 무책임, 예약금 시스템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예약금 시스템 및 위약금 제도 도입을 통해 노쇼 비율을 낮출 수 있지만 무엇보다 성숙한 예약문화를 만들기 위한 시민의식 개선이 필요합니다. 예약은 사업주와 고객 간의 약속입니다. 사업주는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은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합니다. 음식점의 경우 주인이 약속을 어기면 손님은 기분이 상하고 식당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반면 손님이 약속을 어기면 주인은 음식 준비와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한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됩니다. 또한 제3자인 다른 손님의 서비스 선택 기회까지 빼앗게 됩니다.

우리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권리에는 의무가 따릅니다. 서비스 선택의 권리만큼 이에 따른 약속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나폴레옹의 말처럼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혹 부득이한 사정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가 발생한다면 무책임한 회피보다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5월은 기념일(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행사, 연휴가 많은 달입니다. 그만큼 음식점, 여행 상품, 철도 및 항공권, 숙박시설 등 서비스 직종의 수요가 증가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무책임한 노쇼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서비스 업의 피해 또한 커지게 됩니다. 고객은 예약 약속을 지키고, 사업주는 약속을 지킨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노쇼는 근절되지 않을까요. 전화 한 통,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맺어진 작은 약속을 잘 지켜 고객과 사업주 모두 행복한 5월을 보냈으면 합니다.

신민식<대구학생문화센터 교육연구사·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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