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에 아들 잃은 구미 김덕종씨의 ‘잔인한 5월’

  • 최보규,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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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03 07:16  |  수정 2016-05-03 09:55  |  발행일 2016-05-03 제3면
“5살 승준이가 숨 차니깐 뛰지 못하고 앉아서만 놀았던 것”
20160503
김덕종씨는 “100명이 넘는 국민이 죽었는데 정부는 사태해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호흡 힘들자 2009년 5월 입원
나흘만에 그만 이세상 떠나…
옥시 英본사 갔지만 문전박대
그들의 사과에는 진정성 없어

2011년 8월31일. 남쪽 하늘엔 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이날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발표와 함께 조용하던 세상은 뒤집어졌다. 수년에 걸쳐 신고돼 온 원인미상의 폐손상 질병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발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추측은 얼마 안 가 최종 확정됐다. 대표적인 가습기 살균제인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이 출시된 지 꼭 10년이 지난 해였다.

그 사이 수많은 국민은 호흡기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를 들이마셨다.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와 임산부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넣은 가습기 살균제가 잔인한 화살이 돼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조사의 부정을 알리고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러나 기업들은 입을 닫았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책임지는 사람 없는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 사이 피해자 규모는 전국적으로 530명(사망자 146명)에 이르렀다. 대구·경북에서는 33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이 중 8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2005년 9월 구미시에 거주하는 김덕종씨(40)는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품에 안았다. 결혼 2년여 만에 찾아온 소중한 아들 승준이었다.

“아이가 자주 앉아서 놀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뛰기 힘들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어요. 계속 숨이 차니까….”

승준이는 어릴 때부터 감기와 폐렴을 자주 앓았다. 이런 아들을 위해 김씨는 항상 가습기를 틀어줬다. 청결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도 어김없이 넣었다. 그러던 2009년 5월 승준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급히 데려간 경북대병원에 입원한 지 나흘. 승준이는 눈을 감았다. 그 직전까지도 아이는 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5월은 김씨에게 잔인한 달이 됐다.

“병원에선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이라고 했어요. 그러다 2011년 정부 발표가 나고, 다른 피해자들과 승준이의 증상이 비슷해 정부에 조사를 신청했습니다. 내가 넣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는 걸 알고 나니 더 힘들더라고요. 결국은 내가 죽인 게 됐으니까…. 너무 힘들었습니다.”

김씨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김씨는 지난해 5월 영국에 위치한 옥시 본사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본사 차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김씨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한국 옥시에 부탁해서 미리 미팅 날짜를 잡았지만 입구에서부터 거절당했어요. 기어이 만난 본사 직원들은 한국은 별도의 법인이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일 옥시 본사 대표는 한국을 찾아 공식 사과를 전했다. “오늘(2일) 한 사과는 피해자들에게 하는 진정한 사과가 아닙니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니까 억지 사과하는 정도로밖에 안 보이네요. 사과는 사과하는 사람이 피해자를 찾아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김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씨는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불만을 털어놨다. “피해자들이 대책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개인과 기업 간의 문제라는 입장만 반복했습니다. 정부가 너무 무능합니다. 100명 넘는 국민이 죽었는데도 관심이 없어요. 이것 때문에 이민 간 피해자들도 있습니다.”

김씨는 승준이가 “옆에만이라도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뱉고 수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당시 사용하던 가습기 살균제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모든 문제가 정리되는 날, 그땐 이것도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씨는 손에 들려있던 가습기 살균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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