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유승민 ‘포스트 박’ 시대를 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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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04

박상병 정치평론가
87세 노모의 기도는 헛되지 않았다. 유승민 의원, 비록 새누리당 ‘공천 파동’의 중심에서 심적 고통도 컸지만 총선 후에는 단박에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발돋움했다. 물론 유 의원을 향한 중도층과 야권 지지자들의 박수소리가 더 클 것이다. 여권 지지층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각이 선 유 의원의 모습에 큰 박수를 보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유 의원의 미래는 밝다고 할 것이다. 여권의 대선 주자들 가운데 유 의원만큼 ‘당의 개혁성’과 ‘표의 확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선 주자가 또 누가 있는가.

4·13 총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독선과 새누리당의 오만에 대한 국민심판의 결과였다. 새누리당 참패의 핵심은 ‘축적된 분노’의 폭발이었다. 그 여파로 더민주가 1당이 되고 국민의당이 38석이라는 큰 성과를 이뤘다. 그렇다면 그 축적된 분노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짚는 것이 이번의 총선 참패를 성찰하는 기본이 아닐까.

국민은 지난 3년간의 경제 실정과 정치 실종, 국정 불통에 대해 박근혜정부를 향해 반복적으로 쓴소리를 했다. 하지만 총선 이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네 탓’하며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그 사이 국민의 고통은 ‘분노의 단계’까지 갔다. 이런 엄중한 현실을 단순한 심판 정도로만 해석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반복적으로 축적된 분노의 폭발, 즉 응징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옳다.

또 하나를 좀 더 세부적으로 본다면 그 응징의 밑바닥에는 ‘유승민 의원’ 문제가 있었다. 정치와 경제 등의 ‘거시적 분노’를 폭발시킨 ‘미시적 분노’는 유승민 의원을 향한 ‘집단적 배제’가 그 원인이었다. 유승민 의원의 언행에 대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유 의원에 대한 지지와 반대의 뜻은 더욱 아니다. 그런 정치적 판단을 넘어서 지극히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문제가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킨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내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도 모자라 사실상 공천에서도 배제하지 않았던가. 후보 등록 직전까지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보인 행태는 정말 말문을 닫게 했다.

그럼에도 세찬 삭풍의 끝에서 유승민 의원은 살아서 ‘잠룡’이 됐다. 이 또한 결정적으로 박 대통령의 작품이다. 이제 박근혜정부 임기는 20개월쯤 남았다. 말 그대로 임기 말이다. 그러나 유승민 의원의 정치 인생은 이제 본궤도에 오른 셈이다. 한 쪽이 기우니 다른 쪽이 차오르는 전형적인 권력의 속성이다. 바로 이러한 권력의 부침이 보수의 심장부라는 대구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포스트 박’을 얘기할 때 유승민 의원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이유라 하겠다.

지난해 7월 박 대통령과 유 의원이 심한 갈등을 빚고 있을 때 유 의원의 모친 강옥성 여사가 청수사 법회에서 공양을 바치며 했던 얘기가 회자된 적이 있다. “물김치는 그저께 밤에 박근혜 대통령이 만드셨고, 쑥떡은 어제 밤 승민이가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노모는 아들 걱정에 잠을 못 이루며 부처님 전에 올릴 공양물을 만드셨을 것이다. 그리고 쑥을 캐고 떡을 빚은 그 여윈 손으로 화해의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 의원의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큰 바람이 지나고 나니 깊이 내린 뿌리의 힘이 드러났다. 유 의원이 보여준 소신과 원칙, 변화와 혁신의 신념은 이제 여권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잠룡의 용트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유 의원은 이제 막 큰 시험대에 올랐을 뿐이다. 낡고 병든 보수를 걷어내고 변화와 혁신의 ‘새로운 보수’를 견인해야 한다. 상처받은 대구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TK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 ‘수구 꼴통’의 그런 보수로는 안 된다. 이 또한 ‘포스트 박’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다. 그러므로 노모의 기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청수사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 기도 소리가 더 간절하게 들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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