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茶는 경주 기림사에서 간 것…김교각 스님이 전파"

  • 송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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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13 07:43  |  수정 2016-05-13 14:55  |  발행일 2016-05-13 제5면
기림사는 한반도의 첫 차 재배지
김교각 스님, 중국 구화산 전파
20160513
12일 기림사 부주지 영송 스님이 사찰 내 약사전에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헌다벽화를 설명하고 있다.

경주 양북면 함월산에 위치한 천년고찰 기림사(祇林寺)가 한국의 차(茶) 성지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12일 기림사 선방에서 만난 부주지 영송 운암 스님은 “신라의 왕자로 태어나 출가 후 중국으로 건너가 지장보살로 추앙 받는 김교각 스님(696~794)이 사실은 기림사의 차 종자를 가져가 중국 구화산에 심었다”고 밝혔다. 영송 스님에 따르면 정토불교가 인도에서 해양실크로드를 따라 기림사로 전파될 당시 ‘헌다’(獻茶·신불에게 차를 올림) 문화와 함께 차 종자가 들어왔으며,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기림사에서 차를 심어 재배했다고 한다. 영송 스님은 이어 교각 스님이 중국에 차 종자를 보급했다는 기록이 구화산에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교각 스님의 차 종자 중국 보급은 신라 흥덕왕 3년(828) 김대렴이 당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었다는 삼국사기 기록보다 109년이나 앞선다.

기림사는 ‘한국 茶의 성지’
헌다벽화·오종수 등 
국내 가장 오래된 茶 유적

신라때 김대렴 唐서 유입했다는
삼국사기 기록보다 109년 앞서
 
신라茶 국제문화센터 건립 등
茶의 전통 이어가기 위해 온 힘
용맹정진 훌륭한 학승 배출 매진
교육도량 불국금강학림 개설 준비

◆차의 성지

기림사의 창건 설화에 따르면 기원년 전후 인도로부터 정토불교문화가 유입됐고, 이와 함께 급수봉다(汲水奉茶·부처에게 차를 달여 공양함)로 차 문화가 자연스럽게 유입됐다. 따라서 한국 차 문화의 전래 시기는 2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승려 광유가 임정사(林井寺)를 지어 오종수(五種水·다섯 종류의 샘물)로 헌다하고 급수양화(汲水養花·오종수를 길어 다섯가지 꽃을 키움)로 수행했다.

기림사에는 차와 관련된 유적으로 오종수 외에도 약사전에 국내 최고(最古)의 헌다벽화가 있다. 헌다벽화는 1654년 효종 5년 사찰 중창 당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는 기림사 창건기에 따라 급수봉다를 수행하는 사라수왕이 급수유나의 소임을 맡아 기림사를 창건한 광유 스님에게 헌다하는 모습을 담았다. 한국불교의 차 문화는 신라의 원효 스님, 고려의 각유 스님, 조선의 매월당 김시습과 초의 스님, 현재 기림사 주지인 일해 덕민 스님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영송 스님은 이같은 차 유적과 차맥이 이어지고 있는 기림사를 한국의 차 성지로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기림사는 현재 △신라차와 말차 문화 복원 △신라차 국제문화센터 건립 △국제 차 문화제 개최 △내년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 폐막식 유치 등을 추진하고 있다.

기림사의 차밭은 신라 때부터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도 1만㎡ 규모의 차밭이 있으며 더 넓히고 있는 중이다. 기림사 주변에는 자생적으로 죽로차가 자라고 있다. 영송 스님이 차 가공(수제) 공간을 만들어 차를 보급하고 있다.

◆전통강맥 잇는다

기림사는 사라져 가는 불교의 전통강맥을 잇고 훌륭한 학승을 배출하기 위해 불국금강학림 개설을 준비 중이다. 기림사는 지난 3월28일 사찰 내 대적광전에서 불국사승가대학장이며 주지인 일해 덕민 스님의 강맥을 부주지 영송 스님에게 전수했다. 덕민 스님은 이날 전강제자 영송 스님에게 전강게(傳講偈·문중의 제자로 인정한다는 글)를 전수하고 “불조의 혜명이 면면상속할 수 있도록 용맹정진하고 후학양성에 진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덕민 스님은 석전 한영, 고봉 태수, 우룡종한 스님으로 이어지는 조계종 전통강맥을 계승한 대강백이다. 1957년 13세의 나이로 우룡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덕민 스님은 1965년 청암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고봉·우룡·고산 스님 등 당대 선지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또 1972년 태동고전연구원을 수료했으며 1973~87년 당대 최고의 한학자로 알려진 추연 권용현 선생의 문하에서 한학을 배웠다. 1970년 법주사 승가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한 후 후학 양성에 매진했으며 1988년 쌍계사 강주와 범어사 강주를 역임했다. 덕민 스님은 전 교육원장 무비 스님과 함께 세속적 학문을 배우지 않고 독학으로 대강백에 오른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 강맥을 전수한 영송 스님은 덕민 스님의 첫 전강제자로 1987년 해인사에서 일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91년 쌍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91~98년 쌍계사 승가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1999~2013년 중국 베이징대에서 수학했고, 현재 기림사 부주지를 맡고 있다.
글·사진=경주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천년고찰 기림사 = 기림사는 광복 전에는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사찰로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였다. 창건설화에는 기원 전·후 인도의 승려 광유가 500명의 제자를 교화한 임정사(林井寺)를 지었다고 전한다. 선덕여왕 20년(643)에 원효대사가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이름을 바꿨다는 설도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31대 신문왕이 동해에서 용으로 화한 선왕으로부터 ‘만파식적’을 얻어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림사 서편 시냇가에서 잠시 쉬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기림사에는 사찰 본전인 대적광전(보물 제833호)과 건칠보살좌상,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에서 발견된 문적(文籍) 등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매월당 김시습이 기림사에 머문 인연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세운 매월당 사당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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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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