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환의 별난집 별난맛] 대구 국수 3색3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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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13   |  발행일 2016-05-13 제42면   |  수정 2016-08-03
국수 면발같이 긴 역사…40년 안된 국숫집은 명함도 못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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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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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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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동 할매 콩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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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마을

대구는 전국 최고의 국수 소비도시다. 다른 도시 사람들보다 연간 3배는 더 먹는다고 한다. 마른 형태의 소면인 ‘건면’으로 선보인 대구 최초 브랜드 ‘닭표국수’, 전국 최초의 제분·제면기계를 갖춘 국수공장으로 1933년 설립돼 83년 세월을 보내 온 ‘풍국면’이 있다. 삼성의 전신인 삼성상회의 ‘별표국수’ 공장도 34년 대구 중구 인교동에서 국수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어 곰표, 소표, 왕관, 금성 등 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국수 시장의 60% 이상을 대구에서 독점했다.

대구가 국수의 본고장이 된 이유는 뭘까? 기계 설비가 현대화되기 전에는 국수 형태로 만들어 이틀 정도 자연건조 상태로 말렸다. 분지에 위치한 대구는 덥고 습기가 적은 고온 건조한 날씨 덕에 국수를 말리는 데 최적의 조건이었다. 지금이야 사라진 풍경이지만, 60~70년대만 해도 동네마다 골목 어귀에 대나무발 건조대에 길게 국수를 내걸고 말리던 가내 수공업 형태의 국수 공장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경부선 경유지로 일제강점기 전국 물류 생산의 유통거점도시로 발달했고, 6·25전쟁 이후 미국의 구호용 물자에 의존했던 밀가루를 다른 지역에서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는 것도 한 몫을 했다. 또 덥기로 정평이 난 도시인 만큼 무더운 여름철 입맛 없을 때 후루룩 한 그릇으로 요기가 되는 국수의 수요가 다른 도시보다 유독 많았다.

◆ 대구 누른국수와 육국수

우리나라에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국수들이 많다. 제주의 고기국수, 전남의 팥칼국수, 부산의 밀면과 비빔국수와 구포국수, 정선의 콧등치기국수와 올챙이국수, 의령의 메밀소바, 안동의 건진국수, 옥천의 생선국수, 영월의 꼴둑국수, 춘천·봉평·양양·원주의 막국수, 화성의 바지락칼국수, 구룡포의 모리국수 등.

대구에는 누른(누름)국수와 육국수가 있다. 대구의 육국수는 얼큰한 대구 육개장에 밥 대신 세면을 말아 먹는다. 콩가루를 넣어 누른색이 난다고 ‘누른’국수가 되었다는 말도 있고, 홍두깨로 넓고 얇게 누른다고 ‘누름’국수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他도시보다 3배 더…‘전국 최고 소비’
닭표국수·풍국면·별표국수 브랜드로
80년대까지 시장의 60% 이상 독점도

육개장에 밥 대신 세면 말아먹는 육국수
콩가루 섞어서 홍두깨로 민 누른국수
지역특색 살린 도시 대표 면요리 자리

서남빌딩 뒤 골목·서문시장 좌판 ‘名物’
태양칼국수·칠성동할매콩국수·국수마을
오랜 내공으로 다져진 손맛 종일 북적



누른국수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홍두깨로 얇고 널찍하게 민 다음 가늘게 채로 썰어 사골이나 해물은 일절 쓰지 않고 진하게 우려낸 멸치국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국물이 걸쭉하지 않고 담백하면서 깔끔하다. 고명으로는 호박채와 부추나 청방 배추를 곁들이고 깻가루를 얹고 간장에 뭉텅뭉텅 썬 대파·청양고추, 고춧가루와 참기름 한 방울이 들어간 빡빡한 양념장을 한 숟가락 끼얹어야 제맛이 난다.

예전의 누른국수는 큰 솥에 제법 굵직한 ‘대멸’이라는 육수 내는 멸치와 국수, 그리고 채소를 같이 넣고 푹 삶아 빡빡한 양념장을 얹어 먹었다. 누른국수는 옛날 대구에서 집집마다 해 먹었다. 예전과는 조리방법이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원형의 맛을 간직한 누른국수는 서문시장 내에 산재해 있다.

서남빌딩 뒷골목에 몰려있는 국수골목과 수제비·잔치국수·비빔국수·찹쌀수제비·콩국수까지 다양한 면 종류가 있는 1지구와 4지구 사이 20여개의 좌판은 서문시장의 명물 1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 사람의 유별난 국수사랑을 증명하듯 추우나 더우나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멸치·무·다시마로 진하게 우려낸 맛국물에 울퉁불퉁하게 손으로 썬 면과 부추·채 썬 호박이나 청방 배추를 넣어 같이 삶는다. 여기에 김가루와 깻가루를 얹고 양념장 한 숟가락을 끼얹어 낸다. 적당히 간이 밴 면발은 쫄깃하고 개운하다. 구수하면서 기분 좋게 짭조름한 국물이라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우게 된다.

대구에는 다양한 국숫집이 있다. 국수의 모양과 맛이란 것이 거의 비슷한 것 같지만, 고유의 개성과 특별한 맛이 있는, 오랜 세월의 내공이 무색지 않게 하루 종일 붐비는 3가지 맛의 유명 국숫집을 소개한다.

◆ 태양칼국수

담백하면서 국물이 먹을수록 부드러운 감칠맛이 있다. 약간은 중독성도 있다. 한번 입에 대면 젓가락이 쉽게 멈추질 않는다.

면발은 쫄깃쫄깃하다기보다는 쫀득한 편이다. 국물 맛이 겉돌지 않고 면발과 잘 어우러진다. 경상도 국수 특유의 알싸한 맛은 전혀 없다. 은은한 맛이 제주도 고기국수 같기도 하다. 쇠고기 사골과 사태 국물로 맛을 낸 떡국의 맛국물 같기도 하다.

이 집의 진하지 않고 연한 국물은 돼지 사골과 사태를 오랜 시간 고아낸 맛이다. 잡내가 전혀 없다. 느끼함도 없다. 묵직한 듯하다. 은은한 깔끔한 맛이다.

주문과 동시에 맛국물에 삶아낸 통통한 면발은 국물 맛과 너무 잘 어울린다. 면발이 유달리 부드럽다. 삶은 면에서도 짭조름함을 느낄 수 있다. 양념장과 어우러져 씹을수록 고소하고 차지다. 깨를 듬뿍 올려서인지 고소한 향이 먹는 내내 진하게 코로 전해진다. 고명으로 올린 살짝 양념한 간 고기가 사이사이 씹히는 맛도 일품이다. 참깨가루에 묻혀 먹는 돼지고기 수육도 인기메뉴다. 적당히 지방이 있어 촉촉하고 부드럽다. 소금기가 전혀 없는 참깨가루에 살짝 찍어 먹는 돼지고기 수육은 쫀득하면서 보들보들하다. 고소한 향내까지 있다. 의외로 궁합이 잘 맞다. 37년 같은 장소에서 영업하다가 얼마 전 인근의 입식과 좌식을 고루 갖춘 1·2층의 현대식 건물로 이전했다.

▶예약전화: (053)951-0321
▶위 치: 대구 동구 신암2동 1332-48
▶영업시간: 오전 11시~밤 10시
▶휴 무: 없음
▶주차시설: 없음

◆칠성동 할매 콩국수

만드는 노력에 비하여 너무 속절없을 정도로 첫맛은 ‘g단조 무반주 첼로 선율’ 같은 무덤덤한 맛이다. 그저 순백의 콩국과 국수가 전부다. 그렇지만 첫맛은 시원하고, 국수가 목구멍으로 후루룩 넘어갈 때는 구수하고 묘한 향내가 은은하게 목 깊숙한 곳까지 감돈다.

콩국수 만드는 과정은 꽤 치밀하다. 우선 콩국을 만드는 것부터 번잡하다. 실하고 단단하면서 낱알이 고른 매끈한 흰콩부터 고른다. 콩을 깨끗이 씻어 일일이 건진 다음 물을 흥건히 붓고 하룻밤을 담가 불린다. 불려놓은 콩을 너무 삶아도, 덜 삶아도 비린내가 비친다. 살짝 삶아 비벼서 껍질을 벗기고 깨와 땅콩 등 몇 가지 견과류와 함께 곱게 갈아 체에 거른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붐빈다. 전국 최고의 콩국숫집이다. 사시사철 콩국수 하나만 낸다.

장소를 몇 번 옮겼지만 40여년 세월 속에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콩국수를 팔았다고 한다. 콩국물이 얼마나 진한지 콩죽 같다. 채 썰어 식용유에 볶아 고명으로 얹는 애호박이 사이사이 씹혀 콩국수의 구수함을 더해준다.

▶예약전화: (053)422-8101
▶위 치: 대구 북구 칠성동2가 347-4
▶영업시간: 4~9월은 오전 11시~오후 8시30분, 10~3월은 오전 11시~오후 5시30분.
▶휴 무: 매주 일요일
▶주차시설: 자체 및 간선도로변

◆국수마을

그때그때 삶은 면에 미리 삶아둔 부추를 듬뿍 얹고 참기름 한 방울에 통깨, 잘게 부순 김을 얹는다. 멸치로 진하게 우려낸 맛국물을 붓고 3일 정도 숙성한 양념장을 풀어 양은그릇에 수북하게 담아 내는 잔치국수다. 면발이 보통의 소면과는 다르게 옅은 노란색을 띠고 있다. 시중에서 파는 세면보다 조금은 굵은 소면에 가깝다. 훨씬 쫄깃하고 입안에서 씹히는 식감이 다르다. 흔히 먹어본 잔치국수보다는 쫀득하다. 국물 한 모금을 들이켜면 멸치로 내린 것이 당연한 듯 진하게 멸치 향이 퍼진다. 미리 풀어진 양념장 때문인지 기분 좋은 짭짤함에 먹기가 좋다. 맛국물을 낼 때 고운 고춧가루를 풀어서인지 색이 붉은 것에 비해 맵지는 않지만 살짝 매콤하다. 적지 않은 양이지만 금세 한 그릇이 국물까지 깨끗하게 비워 바닥이 보인다.

추우나 더우나 미지근한 국물 맛이 감칠맛이 있다. 어지간히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밑반찬은 청양고추와 찍어 먹을 된장, 적당히 익은 깍두기가 전부다. 간소하다. 다른 곁들임 반찬이 없어도 맛에 부족함이 없다. 40년 동안 달랑 잔치국수 하나로만 맛을 지키는 곳이다.

▶예약전화: (053)355-4724
▶위 치: 대구 북구 노원동1가 503
▶영업시간: 오전 11시10분~오후 6시30분
▶휴 무: 매주 일요일
▶주차시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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