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김해숙 ‘꽃과 사람’ 대표

  • 이은경 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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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13   |  발행일 2016-05-13 제43면   |  수정 2016-06-17
“어제 그꽃인가 싶으면 어느새 피고 지고…30여년 꽃으로 인생 배웠다”
20160513
지난달 20일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꽃과사람’에서 김해숙씨(가운데)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연화산 자락에 자리 잡은 다사 꽃 화훼단지(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엔 꼬마 손님들로 북적였다. 원예체험을 위해 이곳을 찾은 학산초등 5학년 40여명이다. 아이들은 <주>꽃과 사람 김해숙 대표(55)의 지도에 따라 토피어리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물에 불린 수태를 펼쳐 식물을 단단하게 감싸고 귀를 만들고 눈, 코, 입을 달자 어느새 곰돌이 토피어리가 뚝딱 완성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화분을 보물단지처럼 끌어안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아이비, 왜란, 퓨마타, 넉줄고사리, 싱고니움, 천양금, 트리안. 아이들이 만든 토피어리 화분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길게 위로 크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옆으로 넓게 퍼져 자라는 식물도 있다. 물을 좋아해서 자주 자주 물을 뿌려줘야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꽃이 피는 식물도 있고 피지 않는 식물도 있다. 아이들은 다양한 식물을 키우는 다양한 방법을 배우며,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배운다. 그렇게 아이들은 식물과 함께 식물처럼, 푸르고 싱싱하게 자란다.

◆원예 체험을 통한 치유와 힐링의 공간

김 대표가 이곳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4천200여㎡(1천300여평) 원예 단지의 문을 연 것은 2011년. 30여년간 꽃과 함께하면서 마음속에 간직해 온 오래된 사명감 때문이다. 원예 체험을 통한 치유와 힐링의 효과를 널리 알리겠다는 것.


대학 4년 때 화훼생산 오빠 영향
자연스레 꽃학원 다니며 꽃공부
대학 관련학과 개설때 박사과정

“화병노인 플라워테라피 강의 등
꽃으로 치유·위로받는 결과 보람
원예활동이 아동 심신 치유 효과도”

석창포 보고 ‘꽃 없으니 철수’요구
외려 꽃에 대한 인식 전환 계기로
“첼시플라워쇼서 韓 꽃문화 알릴 것”



마음속 끓어넘치던 열정과 달리 현실은 냉혹했다. 비만 오면 차가 푹푹 빠지는 땅을 다지기 위해 마사토만 스무 트럭을 부었다. 여름 장마 땐 마당의 배수가 걱정이었고 눈이 오면 폭설에 무너지는 비닐하우스가 애를 먹였다. 온도 조절을 제대로 못해 식물들이 모조리 얼어죽어버린 가슴 아픈 기억도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햇빛, 바람, 비. 머릿속으로 꿈꾸던 이상은 쉽게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다. 죽을 힘을 다해 한번 해보자. 당장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생겼지만 오랜 꿈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달성군수에게 무작정 편지를 써서 “꽃 박사 아무개인데 ‘달성꽃피다’란 슬로건이 관내에 많이 붙어 있는데 나 같은 박사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호기도 부려봤다.

그렇게 몇년 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다사 꽃 화훼단지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지금은 유치원과 초·중·고생들의 플라워테라피 현장 학습 장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꽃가꾸기기초’ ‘행복한 원예생활’ ‘선비가 즐긴 꽃문화’ ‘원예치료’ ‘꽃으로 찾는 나’ ‘여름에 만나는 우리 꽃’ ‘꽃을 든 시니어’ 등 다양한 주제로 강의도 이뤄진다. 2013년에는 꽃을 이용해 체험 학습을 제공하고 각종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마을 기업 ‘꽃과 사람’도 설립했다.

◆꽃은 보면 떠오르는 듀센 미소

프랑스 심리학자 듀센은 인간이 왜 꽃을 좋아하는지 실험했다. 인간이 좋아하는 4가지, 즉 먹는 것(과일), 받는 것(선물), 읽는 것(책), 만지고 향기 맡는 것(꽃)에 대한 반응에서 조사 대상자의 99%가 좋아하는 미소를 보였다. 이 결과에 따라 ‘듀센미소’라는 고유명사가 생겼다. 가장 자연스러운 미소,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꼬리가 자연스레 따라 올라가는 그런 미소를 ‘듀센 미소’라 한다. 꽃을 보고 만지고 향을 맡을 때는 듀센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니, 현대인들에겐 가장 힐링이 되는 소재임에 틀림이 없다.

김 대표가 오랜 시간 공들여 온 플라워테라피, 즉 원예치료가 바로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꽃의 색·향기·형태가 나타내는 좋은 기운을 받아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숨도 못 쉴 정도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칫 독선적이고 여유 없는 삶에서 꽃, 식물을 가까이 키우고 가꾸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옛날 양반들도 모든 것은 하인들을 시키지만 꽃 가꾸고 차 우리는 것만은 스스로 했다. 그만큼 정신건강에 좋다는 얘기다. 아이들의 정서불안,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과 같은 청소년 병리 현상을 개선하는 데도 꽃을 이용한 플라워테라피는 뛰어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꽃을 가꾸며 자연 속에서 뛰놀면 관찰력·집중력·창의력을 높이고 자연 치유의 효과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아동의 원예체험활동이 정서지능과 사회성 향상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통해 꽃을 이용한 치유 효과를 과학적으로 분석·검증한 바 있다. 김 대표는 화훼단지 내 플라워테라피 체험 및 자연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한 56개 학교 2천500여명의 학생 중 일부를 대상으로 정서지능 변화, 사회성 변화, 대인관계 향상 등 세 가지 영역에서의 변화를 분석했다.

“연구결과 원예체험활동을 통해서 연구 대상 아동들은 정서지능 발달과 창의성 및 자주성에 긍정적 영향을 받는 것으로 뚜렷하게 나타났다. 꽃과 식물을 통해서 오감을 발달시키고, 사회성을 길러주고 인성 함양과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교육이 장기적으로 이뤄질 경우 또 ADHD와 같은 정서적 문제점을 가진 아동일수록 그 효과는 컸다. 산만하고 번잡스럽던 아이들이 체험활동을 통해 차분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본래 갖고 있던 동심을 되찾아가는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이런 결과를 좀 더 확산시켜나가는 것이 나의 꿈이다.”

◆꽃으로 치유되고 위로받기를

김 대표가 꽃과 첫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집안의 분위기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대학 4학년 때 오빠가 영농후계자로 지정되어 화훼류생산을 하며 조경사업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꽃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당시는 문화센터가 없던 시절이라 이리저리 꽃 학원을 찾아 다녔다. 꽃에 대한 애정과 공부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덕분에 17년을 공부해야 주어지는 독립중앙회(서라벌꽃예술협회 도연꽃예술중앙회장)를 1995년 서른넷이라는 이른 나이에 받아 이목을 끌었다.

“꽃꽂이가 아닌 플라워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정식으로 생기고 대학에 학과가 개설되면서 박사과정을 등록했다. 당시 고1이던 아들의 과외비와 대학원 등록금이 더해지면서 가계의 부담도 컸다. 아들과 의논을 했다. 아들이 자기는 과외 없이 혼자서 공부할 수 있으니 엄마 공부를 해라고 하더라. 못 이기는 척 꽃 공부를 계속했다. 학생에게 지식과 테크닉을 전달하는 교수에서 이제는 사회 구성원의 정신건강을 위한 원예치료까지 꽃과 관련한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엔 달서구 노인복지관의 독거어르신 및 화병어르신을 위한 플라워테라피를 진행했다. 15명의 어르신들의 얼굴은 어둡고 불안했다. ‘안녕하세요’라는 김 대표의 첫 인사에 그들은 팔짱을 끼고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으로 화답했다. 질문을 하면 ‘통과’라고 묵살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꽃을 쥐어 주었다. 8회의 강의가 끝날 땐 ‘고맙다’며 ‘복받으라’는 인사를 눈물을 흘려가며 했다.

대불노인복지관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도 결과가 기대되는 것 중의 하나다. 복지관에서 시간 보내는 어르신들에게 꽃, 식물에 대한 전반적인 강의를 마치고 실습도 몇 가지 했다. 이들은 ‘꽃을든시니어봉사단’으로 발족식을 하고 봉사단체로 거듭났다. 봉사단은 북구 복현동 일대, 쓰레기가 버려진 후미진 곳을 깨끗이 정리하고 꽃정원으로 꾸미는 ‘게릴라정원 꾸미기’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쓰레기를 불법으로 버리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붙여놓거나 CCTV를 설치하는 것보다 예쁜 꽃을 빈 공간에 심어놓으면 쓰레기 무단투기를 훨씬 더 쉽게 막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김 대표는 “복지관, 학교wee센터, 학부모역량강의 등에서 플라워테라피 강의를 하면서 치유받고 위로받는 사람들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영국 첼시플라워쇼 통해 한국 꽃문화 알릴 것

2013년 도동서원에서 가진 석창포전시회는 김 대표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선비의 꽃문화를 대표하는 석창포를 이슈화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동영상까지 올려져 한동안 인기를 얻었다. 그 여세를 몰아 꽃박람회 조성관을 석창포로 꾸며서 전시했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개막 하루 전 석창포를 디스플레이하고 있는데 관계자들이 몇 번 동정을 살피면서 왔다갔다 하더니 김 대표를 불렀다. ‘위에서 꽃이 없으니 철수하라’고 했다는 것. 꽃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하마터면 기껏 되찾아놓은 석창포의 명예까지 잃어버릴 뻔한 일이었다.

최근 한 공공 건물의 개청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 대표는 수생식물로 잔잔한 느낌의 힐링공간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공간과의 어울림, 계절의 변화와 식물과의 관계, 모던한 건축물 분위기와 잘 맞도록 식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특히 수생식물은 온도가 올라가야 무성하게 왕성한 세력을 과시하게 되는데 그때까지는 참고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개청식을 앞두고 알록달록 예쁜 꽃을 기대했던 담당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꽃은 언제 피느냐’고 애태웠다. 그런 이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며 꽃의 의미와 가치를 알려나가고 있는 김 대표. 그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꽃으로 위안을 주는 ‘원예치료 연구소’를 개설하여 플라워테라피의 중요성을 알리고, 영국 첼시플라워쇼에 참가하여 우리나라 꽃 문화의 독특함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김 대표는 꽃을 처음 접했을 땐 필요에 의해 공부를 했지만, 꽃 공부를 하다 보니 수많은 꽃의 이름이 제 각각이듯이 특성도 다 다르다는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어제의 그 꽃인가 싶으면 어느새 피어있고, 눈 돌리면 지고 있고. 아마도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겠는가. 사람 살아가는 것도 시기가 있는 법.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좋은 일이 있으면 그렇지 못한 일도 많다는 것을 그는 꽃을 보면서 깨달았다. 30여년간 고집스럽게 해 온 공부가 사실은 꽃 공부가 아니라 인생공부였는지도 모른다.

“꽃 실습 강의를 하다보면 내 손에 든 꽃은 쳐다보지도 않고 상대방 손에 든 꽃을 헤아리며 욕심을 부리는 수강자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겐 ‘강 건너 동네가 아름다워 보이죠?’라고 웃으며 말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으며 앉은 자리가 꽃자리다. 그 꽃자리를 오래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러운 법이다. 사람이 꽃에게서 배워야 할 가르침이다.”

글=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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