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땅 또다른 증거”…‘수토사 뱃길’울진에서 재현

  • 김중엽,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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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5 07:39  |  수정 2016-05-25 07:39  |  발행일 2016-05-25 제13면
조선시대 섬의 日人 토벌대
구산항서 100여명 출항행렬
행사엔 주민 등 500여명 참석
“독도는 우리땅 또다른 증거”…‘수토사 뱃길’울진에서 재현
지난 20일 ‘2016 울진 수토사 뱃길 재현’ 행사에서 100여명의 수토사 행렬이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일원을 행진하고 있다. <울진문화원 제공>

‘2016 울진 수토사(搜討使) 뱃길 재현’ 행사가 지난 20일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대풍헌 일원에서 열렸다. 울진군이 주최하고 울진문화원이 주관한 이날 행사는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울진 구산항에서 출항한 수토사 일행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는 주민 등 5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수토사 행렬 재현

지역 학생과 풍물패, 육해군 장병 등 100여명으로 구성된 행렬은 갑옷을 입은 수토사와 그를 따르는 군관, 수군, 포수 등으로 구성됐다. 행렬은 월송포만호가 머물렀다는 월송포진에서 수토사가 배를 기다렸다는 대풍헌까지 2개 구간으로 나눠 행진했다. 조정의 명을 상징하는 수토사 깃발, 용(龍)깃발, 그리고 군대의 명령을 상징하는 영(令)깃발 등이 등장해 행렬의 위엄을 더했다. 또한 수토사 일행을 따라나선 사공의 모습까지 재현해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행진을 마친 후 대풍헌에서는 상황극이 펼쳐졌다. 상황극은 수토사가 울릉도 출정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으며, 해신에게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고유제(告由祭) 장면도 연출됐다. 이후 수토사가 칼을 빼들고 행렬 전체가 구산항에서 배에 오르는 것으로 행사는 마무리됐다. 내달 11~13일 구산리 및 울릉도·독도 일원에서는 ‘수토사의 후예 울릉도·독도 학술탐사’ 행사도 열릴 예정이다.

수토사 뱃길 재현은 조선시대 수토제도와 관련 있다. ‘수토’는 ‘수색하여 토벌한다’는 뜻이다. 울진에서 출발한 수토사가 울릉도에 들어가서 섬의 형편을 살핀 후, 울릉도에 숨어 사는 주민이나 일본인을 찾아내 토벌한다는 것이다.

수토제도를 말하면서 조선 어부 안용복을 빼놓을 수 없다. 안용복은 1693년 울릉도에 들어갔다 일본 어부들에게 납치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 사건으로 조선조정과 일본 막부 사이에는 울릉도 영유권 분쟁이 일어났다. 이후 조선은 삼척영장과 월송만호의 관직에 오른 자를 수토사로 임명, 2~3년마다 한 번씩 울릉도를 교대로 관리케했다. 조선의 이러한 수토제도는 1694년 삼척영장 장한상(張漢相)의 울릉도 수토 후부터 1894년 폐지 때까지 200년간 지속됐다.

조선의 수토제도는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가 지속적으로 우리의 영토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1695년부터 일본에서는 ‘죽도도해금지령’이 내려졌고, 일본인이 울릉도·독도에 들어가면 일본에서 처벌을 받았다. 수토제도는 조선이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확고히 한 정책 중 하나였던 셈이다.

◆ 울진과 수토제도

울진과 조선 수토제도의 인연은 깊다. 울릉도로 향한 수토사의 뱃길이 울진 구산항에서 시작된 것은 울진의 역사·지리적 특성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울진은 울릉도·독도 항해의 전진기지였다. 옛 문헌에 따르면 울릉도는 고려시대부터 울진현의 부속 섬이었고, 조선시대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울진현의 땅이었다. 맑은 날 울진에서는 육안으로 울릉도를 볼 수 있다. 울진과 울릉도·독도는 하나의 생활권이었다.

물론 조선 초만 해도 강원도 삼척 등지에서 출발하는 등 울릉도 항로는 일정치 않았다. 하지만 18세기부터는 구산항이 수토사 일행의 확실한 출항기점으로 자리잡았다. 동해항로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구산항을 출발해 울릉도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구산리 한가운데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목조건물 대풍헌(待風軒)의 내력도 남다르다. 대풍헌은 ‘바람을 기다리는 집’이라는 뜻이다. 원래 마을의 중대사를 논의하는 동사(洞舍)였지만, 조선 후기 구산항에서 수토사들이 순풍을 기다리는 장소가 됐다. 대풍헌에 머물던 수토사들은 최적의 때를 기다렸다가 구산항에서 울릉도로 향했던 것이다.

현재의 대풍헌은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응하는 문화유산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울릉도·독도 영유권 확보의 출발점이 대풍헌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수토사들이 머무른 장소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며, 우리나라가 울릉도·독도를 지속적으로 관리했다는 실질적 증거로 손색이 없다.

임광원 울진군수는 “대풍원 등은 울릉도·독도 영유권의 상징이다. 울진의 수토사 관련 유적을 전국적인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울진=김중엽기자 kjynks@yeongnam.com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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