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학의 문화읽기] 내빈 소개와 축사를 없앤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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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7   |  발행일 2016-05-27 제22면   |  수정 2016-05-27
20160527
문학평론가

문화행사장에서의 의전이
행사의 내실 다지는 것보다
내빈소개와 축사에 더 신경
문화계가 변화를 선도해야
작은 것부터 바꿔나갈 필요

의식(儀式)을 특별히 잘 치르기는 매우 어렵다. 의식은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 또는 정해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를 말하며 의전(儀典)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군(軍)에서는 명사나 귀빈을 예우하거나 어떤 행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거행하는 분열이나 사열 따위의 군대 의식을 가리키기도 한다. 법식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벌어지는 각종 행사에서 주최 측은 골머리를 앓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문화 행사에서 더하다. 의식을 의미 있게 치르기 위해 골치가 아픈 것이 아니라 행사에 참석한 내빈들을 소개하고, 축사를 하게 해야 하는 것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내빈을 소개하고 축사를 하는 것은 사실 행사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하지 않아도 행사 진행에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행사가 깔끔하게 진행될 수 있다.

문화행사장에서 내빈 소개와 축사를 생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행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내빈으로 소개되거나 축사를 하기 위해 참석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는 사람들은 대개 힘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빈을 소개하지 않거나 축사의 시간을 주지 않으면 주최 측이 욕을 먹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혼쭐이 나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지기도 하고 앞으로 두고보자는 위협까지 받는 경우도 없지 않다.

지난 금요일 이상화기념사업회와 대구시 수성문화원이 주최한 ‘2016 상화문학제’의 행사로 마련된 ‘제31회 이상화 시인상 시상식’에서는 과감하게 내빈 소개와 축사를 생략한 행사를 치렀다. 주최 측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자리엔 기초자치단체장, 시의회 의원, 시청 고위 간부도 나와 있었다. 그들도 불평하지 않았고 그런 의식 진행에 불만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 까닭은 그들이 1부 개막식, 2부 시상식, 3부 기념공연까지 1시간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빈으로 소개받고 축사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은 내빈 소개가 끝나거나 축사 시간이 지나면 대개 행사장을 떠난다. 행사를 위해 행사장에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알리기 위해 행사장에 오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떠날 때는 행사장이 술렁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행사 진행의 맥이 끊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날 행사에 참석한 내빈들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한 사람도 이석하지 않았다.

행사장에 얼굴 내밀러 오는 정치인들은, 특히 문화 행사장에 와서 그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있으면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 국민 위해 할 일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까지 아까워서 그런가. 행사장에 끝까지 있을 시간이 없다면 행사장에 오지 않는 것이 행사를 돕는 일이다. 문화계에서도 문화 행사는 문화적으로 치르고, 유명 인사들이 와야 행사가 성공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릴 때가 되었다. 문화 행사에 무조건 사람만 많이 오면 성공하는 것이라는 정치권적, 행정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문화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시대의 선구자 이상화 시인을 기리는 시상식에서의 이 같은 전례가 대구 문화계 의전의 틀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빈 소개가 하도 골치 아프니까 최근엔 영상물을 만들어 직함과 성명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온 사람도 오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소개되기도 한다. 이렇게 구차하게 진행되니까 의식은 저절로 지겹게 되고, 행사 시작부터 혼란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화는 언제 어디서나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변화는 거대 담론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작은 것에서부터 바꾸어야 할 것을 바꾸는 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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