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영덕 오십천 오천솔밭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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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7   |  발행일 2016-05-27 제37면   |  수정 2016-05-27
푸른 천변 붉은 소나무 밭…마음에 맑은 바람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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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솔밭. 1428년경 마을을 개척한 야은(野隱) 배담(裵湛)의 후손들이 조성한 솔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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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사이로 오십천 물길이 보인다. 여름철 최고의 물놀이 장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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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읍 구미리에 자리한 평산신씨 영덕파의 재실 수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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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산면 용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모고재.

15세기 마을 개척한 배담 후손이 조성
둑에 서면 바늘쌈지 펼쳐놓은 듯 빼곡
맞은편엔 수직 절벽이 물길따라 늘어서
은어잡이와 함께 유원지·캠핑장 각광

소나무 꽃 피는 시절인데, 소나무 키 높아 보이지 않는다. 푸르고 뾰족한 잎들도 하늘에 있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다만 강건하고 젊은 혈기가 느껴지는 맨 몸들이다. 그들은 넉넉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위압적인 규모의 숲도 아니어서 밝음도 넉넉하다. 솔밭 너머로 둑길과 먼 마을의 실루엣도 보이고, 오십천 푸른 수면도 조각으로 보인다. 밝음과 물 향과 솔 향 가득한 오천솔밭이다.

◆ 소나무 꽃 피는 계절, 오천솔밭

송림이라 하지 않고 솔밭이라 했다. 할머니의 텃밭처럼 소박하고 겸손한 이름이다. 영덕 지품면 오천리의 오십천 변, 물줄기가 절벽을 만나 커다랗게 휘어진 곳에 오천솔밭이 자리한다. 1428년경 야은(野隱) 배담(裵湛)이라는 분이 산세에 반해 마을을 개척했고 그의 후손들이 이곳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한 그루 한그루 밭 매듯 심었기에 솔밭이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천솔밭은 시간이 지나면서 유원지가 되었고 지금은 식수대, 화장실, 샤워실, 매점, 주차장 시설을 갖춘 캠핑장으로 이름 높다.

맞은 편에는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 물길 따라 늘어서 있다. 그 아래로 오십천(五十川)이 흐른다. 영덕군에서 가장 큰 하천으로 주왕산국립공원에서 발원해 이곳 지품면을 관통한 뒤 강구항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수면이 거울이라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겠다. 맞은 편 절벽에 물 깊어 위험하다는 노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수심이 깊은 곳은 접근 금지지만 가족단위 물놀이 장소로 최고라는 평이 있다.

적갈색의 나무줄기가 완연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윗부분이 붉어진다던데, 보기엔 젊어 보여도 그 나이는 꽤 되었나 보다. 이러한 붉은 수피 때문에 적송(赤松)이라 불린다. 주로 내륙 지방에서 자란다고 ‘육송(陸松)’이라고도 하고, 여인의 자태처럼 부드러운 느낌이라 ‘여송(女松)’이라 부르기도 한다. 적송의 영어 이름은 ‘일본적송(Japanese red pine)’이다. 일본이 먼저 세계에 알리면서 생긴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서 소나무를 적송이라 부른 예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소나무는 1억년 이상 전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중생대 백악기부터 신생대를 거쳐 현재까지 우리나라 전국에서 가장 잘 적응해 온 나무로 한반도는 소나무의 세계적인 중심지다. 지난해 광복절 즈음 국립수목원에서 발행한 ‘한반도 자생식물 영어이름 목록집’에는 ‘한국 적송’(Korean red pine)으로 표기되었다. 나무 이름의 광복이라 했다.

둑길에 오르면 오천1리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단정한 몇 채의 집과 초록빛 복숭아밭이 싱그러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곳 지품면 일대는 복사꽃으로 이름나 있다. 몇 해 전 오십천 물줄기 양옆으로 복사꽃이 흐드러져 있던 모습이 기억난다. 둑에서 보는 솔밭은 바늘쌈지 펼쳐놓은 것 마냥 까맣고 빼곡하다. 도도하고 고고하게 선 한 그루의 소나무도 멋있지만 여럿이 함께여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은어의 강, 오십천

솔밭 입구에 ‘영덕황금은어’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은어는 맑고 깨끗한 1급수에 서식하는 ‘청류(淸流)의 귀공자’라고 한다. 봄에는 강을 거슬러 오르고 가을이면 번식을 위해 하류로 내려가는 회귀성 어종이다. 영덕의 황금은어는 등이 푸른빛을 띠는 담녹색이고 가슴지느러미 뒤쪽에 황금색의 문양이 선명하게 나있다고 한다.

어린 은어는 근해에서 겨울을 지내고 이듬해 봄 태어난 하천으로 거슬러 올라온다. 그리고 가을에 산란이 끝나면 대부분 죽는다. 은어의 일생은 1년이다. 먹이부족 등으로 당년 가을에 산란하지 못한 은어는 하천의 깊은 소에서 월동을 한다. 번식하여 대를 잇는 것이 은어의 생이다. 은어의 살에서는 오이향 또는 수박향이 난다고 한다.

오십천은 곧 은어다. 1990년대 초만 해도 먹이를 던져 놓으면 이내 주워 담기 바빴다 한다. 강수량 부족과 수질 악화로 오십천 은어의 명성은 조금 옅어졌지만 영덕군에서는 은어 치어를 꾸준히 방류하고 있다. 지금은 은어들이 오십천으로 돌아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솔밭의 송화 가루가 그들에게도 보약이 될까. 한참 자랄 때인 4월20일부터 5월20일, 산란기간인 9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는 은어 잡이가 금지되어 있다. 이제 낚시꾼들이 은어를 찾아오는 시즌이다.

◆ 수정재와 모고재

오천리의 동쪽 구미리 마을에 숙종 때인 1702년에 건립된 오래된 집이 있다. 복숭아 밭 사이로 난 좁은 고샅길 끝, 복숭아밭을 곁에 둔 건물이다. 이 건물은 평산신씨 입향조인 신희, 중종 때 한성판관을 지낸 현송 신종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신규년 등을 모셨던 재사로 원래 이름은 세덕사(世德詞)였다고 한다. 공부하고 책을 보관하는 수정서사(水晶書舍)를 중심으로 양쪽에 건물이 시립된 모습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지금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만 이용하고 있다.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이지만 곁눈으로 늘 마을을 지켜보는 것 같은 앉음새다.

오천리의 서쪽 용평리에는 오십천의 지류인 대서천(大西川)을 내려다보며 모고재(慕古齋)가 자리한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버린 이명발(李明發)·춘발(春發) 형제가 농사짓고 살던 곳으로 1520년에 후손인 이학(李鶴)이 누각을 짓고 가르치고 공부하며 말년을 보냈다 한다. 통정장예원판결사를 지낸 이정계(李廷桂)는 ‘모고정 앞뜰에 대나무 많이 심어/ 나 스스로 일찍이 속세에 물들지 않으려 했지만/ 날들은 찬 기운 도는 절후로 흘러가느니/ 서로 따르며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보아야겠네’라고 노래했다.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도 저절로 눈에 드는 정자다. 찬 기운 도는 절후는 견뎌 지났는데 어찌 저리도 서늘히 외로운지.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포항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향하다 영덕읍에서 34번 국도 안동, 청송 방향으로 간다. 영덕 읍내를 지나자마자 영덕농업기술센터 옆길로 구미리 마을 끝까지 들어가면 수정재가 있다. 34번 도로로 조금 더 가면 영덕 황금은어 생태 학습장이 있고 잠시 후 오천1리 마을 안쪽 둑길로 가면 천변의 솔밭이 보인다. 34번 국도에서 청송방향 69번 지방도로로 조금 남하하면 달산면사무소 지나 오른쪽에 모고재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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