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남해에 소처럼 떠있는 ‘수우도’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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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7   |  발행일 2016-05-27 제38면   |  수정 2016-06-17
걸음마다 동백·야생화…바다를 꿈꾸는 고래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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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봉 가는 암릉에서 바라 본 고래바위의 수려한 광경. 오른쪽으로 멀리 사량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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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봉에서 바라본 해안 절경. 왼쪽에 백두봉과 정면에 금강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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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봉에서 금강봉으로 가는 비경의 암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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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박산에서 내려와 환상의 바다와 몽돌해변을 향해 걷는 트레커들.

신선대에 서니 사량 하·상도 파노라마
해안 암벽 ‘도둑놈꼴창’ 고래바위 눈길
해골바위 등 금강봉 바위군 절경 감탄

밤엔 동백이 은박지처럼 보인단 은박산
189m 정상서 문득 이중섭 그림 떠올라
뭍서 헤엄쳐와 농사 망치는 멧돼지 신기

5월은 잔인하다. 천의 얼굴을 한 축제가, 꽃놀이 뱃놀이 흥타령이, 잠든 통장을 깨운다. 4월은 관광객이 부활하는 달, 5월은 관광객이 순례하는 달이다. 어디서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밀려온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삼천포 유람선 터미널 대형 주차장은 만차가 된다. 수우도 트레킹은 일교차 심한 늦봄, 황사 심한 날, 항구 풍경 흐릿한 5월에 유람선 타고 바닷길을 열면서 시작된다.

뭍에서는 삼천포항과 그 너머로 각산과 와룡산 산군이 미완성 정물화처럼 희미하고, 좌로는 300년의 전통이 있는 재래식 멸치잡이 죽방렴이 보이고 삼천포와 창선도를 잇는 각각 다른 공법으로 만든 5개 다리의 아름다운 광경이 시선을 빼앗아 간다.

삼천포 앞바다는 한려수도이다. 그 수려한 바다 위로 부는 해풍의 춤사위가 날렵하다. 우로는 삼천포 화력발전소의 굴뚝이 우주선 발사대 모습이다. 우리나라 발전량의 7%를 감당한다. 바다로는 사량도와 신수도가 큼직하게 자리 잡고, 작은 섬이 여기저기서 푸른 악보의 음표처럼 점점이 떠 있다. 한려수도 한산호는 익숙한 뱃길을 순탄하게 달린다. 벌써 수우도 섬 그늘이 뱃머리를 적신다.

◆꿈과 안개의 섬 수우도

트레커와 낚시꾼이 선착장에 상륙한다. 낚시꾼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무조건 1천원을 내야한다.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돈을 받는다. 나무가 많고 소를 닮았다고 수우도라 부르는 섬. 힘들 때마다 어딘가에서 파도 철썩대며 나타나는 섬, 현실에서 조난하여 표류하는 영혼이 상륙하는 꿈과 안개의 섬. 수우도는 그 섬과 닮았다.

마을 왼쪽 트레킹 들머리는 비탈길이다. 푸른 숲 오솔길을 느리게 오른다. 조그마한 판자에 ‘빼떼기죽 판매합니다. 학교정문앞 물고기집. 시시로 하우스’란 조잡한 안내판이 있다. 빼떼기 죽은 고구마를 깎아 말린 것을 콩이나 팥과 섞어 끓인 죽이라 한다. 이어 며느리밥풀 군락지를 지나고, 이미 꽃을 떨어버린 진달래 군락지도 지난다. 작은 삼거리에서 우로 조금 가다가 갈림길에서 다시 좌로 걷는다. 드디어 안부에 도착해 숨을 고르고 신선대 작은 돌탑 옆에 선다. 여기는 거의 암벽이고 암릉이다. 부드럽고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신선대다. 이곳은 뛰어난 뷰 포인트다. 사량도 하도, 상도의 파노라마에 감탄한다. 신선대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암벽이 고래바위다. 여기서 금강봉 백두봉으로 휘어지는 만에 매섬이 있고, 이렇게 수려한 작은 만을 옛적에는 도둑놈 꼴창이라 불렀다. 옛날 해적들이 이곳에 해적선을 숨겨서 그런 지명이 생겼다.

5월의 햇빛이 눈부시고, 저 아득한 우주를 지나온 빛이 해벽에 부서지는 그 경치가 멀미 날 정도로 어지럽다. 몇 장의 사진을 촬영하고 다시 한번 비알길 걸어 금강봉으로 간다. 금강봉은 수우도의 비경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뷰 포인트다. 방금 머물렀던 신선대를 살짝 내려다볼 수 있고, 앞으로 가야 할 백두봉의 비경을 알뜰히 볼 수 있는 목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잠시 쉬며 간편식으로 허기를 때운다.

◆원시의 목소리와 태초의 환영

다시 봇짐을 메고 걷는다. 몽고말 안장 같은 안부에서 좌로 백두봉으로 가는 능선을 탄다. 로프를 잡고 아슬아슬하게 백두봉 정상에 서면 수우도 남쪽 해벽과 사량도 상·하도, 먼 바다에 있는 섬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거대한 바위군이 고래를 닮은 고래바위, 반대편 바닷가 해안에 타포니와 열쇠구멍, 노치(요철부분)의 해골바위와 금강봉의 우람한 바위군이 황홀한 비경을 선보인다. 이전까지 이렇게 다양하고 아름다운 작은 섬 해벽을 본 적이 없다. 저 자연 그대로 원시의 경관은 문명화된 인간이 잃어버린 영혼을 돌려받는 강렬하고 개인적인 재생 재활의 장소다. 나는 몇 번이나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면서 어디서 들려오는 원시의 목소리를 들었고, 태초의 환영을 보았다. 다른 트레커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밤에는 동백꽃이 은박지처럼 보이는 은박산

다시 저 몽고 말안장 같은 안부로 돌아가 은박산으로 간다. 이제 섬 가장 높은 능선에 올라 가벼운 걸음을 옮긴다. 우거진 나무 숲 사이로 바다가 언뜻언뜻 보인다. 도서지역 특화 조림지로 선정된 수우도에 심은 동백꽃과 왕벚나무에는 비닐물주머니를 달아 물을 공급한다. 동백나무가 60%라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4천956본의 동백나무를 더 심는다고 한다. 거기다 왕벚나무를 더 심어 무성해지면 수우도는 동백꽃과 왕벚나무 꽃가루가 멀리멀리 퍼져 더 많은 트레커가 찾아오는 남해의 꽃섬으로 바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야생화도 간간이 눈에 띈다. 흰 꽃이 섬뜩하게 아름다운 홀아비꽃대는 마치 찔레꽃을 닮아 홀아비꽃대를 보는 순간 짙은 찔레향기가 코를 찌르는 환각에 빠진다.

능선길은 편하고 수월하다. 물주머니를 단 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야생화 삼색병꽃을 만난다. 연붉은 꽃은 정겹고, 소담스럽다. 성서 마태복음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는 말이 있다. 들의 백합화도, 수우도 산 능선의 삼색병꽃도 다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렇게 은박산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 189m에 불과한 높이지만, 수우도 최고봉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조망은 일망무제다. 누가 언제부터 쌓았는지 제법 큰 돌탑이 있고 그 위에 판자에 쓴 수우도 정상목이 돌 사이 끼워져 있다. 동백꽃이 필 무렵 저 멀리 삼천포 항에서 바라보면 밤에는 동백나무가 은박지처럼 보인다고 해서 은박산이라 붙인 이름이다. 나는 여기서 왜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 황소가 생각났을까. 소와 은박지, 이중섭은 삼천포 항과 수우도를 다녀갔는지 모른다. 그 수우도의 해벽이 이중섭의 황소그림과 지나치게 닮아 있다면, 나는 또 하나의 환각에 빠지는 걸까.

◆해벽을 발원으로 한 창작의 샘물이

하산길은 된비탈길이다. 그러나 다소간 내려오면 길은 소의 콧김처럼 순해지고 동백나무 군락이 서늘한 남색 공간을 만든다. 만약 인간의 피가 저 동백나무 잎처럼 짙은 남색이라면 인간은 다투지 않고 평화와 사랑의 깃을 입에 물고 날아가는 천사들이 될지도 모른다.

숲을 나서자 환한 늦봄 햇살에 오금이 저린다. 산 속이라 그런지 덜꿩나무가 흰꽃을, 이것도 마치 찔레꽃처럼 피어있다. 선홍빛의 쥐오줌풀도 간간이 보인다. 수우도는 동백나무와 야생화의 천국이다.

이제 은박지같이 아름답고 하얀 섬에 뭍의 사람이 밀려오면 이곳도 머지않아 진흙탕이 되리라. 사람이 들끓는 곳은 더러워진다. 그러나 사람은 정작 그것을 모른다. 산을 벗어나 해변의 몽돌 밭을 걷는다. 억겁의 파도에 깎여 둥글둥글해진 몽돌은 뼈를 깎는 수행으로 고승의 경지에 오른 바다의 사리라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아름다운 몽돌로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깎여야 했을까.

길은 그렇게 여름에 사용하는 샤워장을 지나고, 흙길을 걷다가 시멘트 길로 나와 선착장에 이른다. 수우리 마을 옆과 뒤로 펼쳐진 섬 유일의 경작지에는 뭍에서 헤엄쳐온 멧돼지 때문에 밭농사를 망친다고 한다. 해안선 길이 7㎞에 불과한 이 섬은 32세대 주민 64명에 불과하지만 전국 60%를 차지하는 홍합 양식으로 가구당 연간 1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알부자 섬이다. 방목하는 흑염소도 지역특산물이다.

섬의 수호신인 설운 장군을 동제 지내는 사당도 있다. 설운 장군의 전설은 그야말로 왜적과 탐관오리를 징치하는 내용이며, 신분이 미천한 섬 백성의 한을 씻어내는 무당의 씻김굿 같은 신령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기다리고 있던 유람선에 오른다. 수우도와의 심리적인 동일시는 이중섭의 은박지 소처럼 해벽을 발원으로 한 창작의 샘물이 뭉클뭉클 솟아나는 트레킹이다.

글=김찬일(시인·대구문협 이사)
사진=김석(대우모두투어 이사)
kc12taegu@hanmail.net

 
☞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수우도 선착장∼섬 좌측 들머리∼신선봉∼금강봉∼안부∼백두봉∼안부∼오를재∼수리강정∼은박산∼몽돌해수욕장∼수우도 선착장(약 6㎞, 4시간 점심시간 포함)

▶문의: 사천시 삼천포 유람선 협회 (055)835-0172∼3, 수우도 동백섬 민박 (055)835-0771, 수우도 특산물 건홍합 택배문의 010-4847-2044, 사천시 문화관광과 (055)831-2727

▶내비게이션 주소: 경남 사천시 대방동 765-3(삼천포 유람선)
▶주위 볼거리: 사천 백천사, 선진리 왜성, 조명군총, 우주항공박물관, 상족암, 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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