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홍의 시시콜콜 팝컬처] CGV ‘차등가격좌석제’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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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7   |  발행일 2016-05-27 제40면   |  수정 2016-06-17
자릿값, 제대로 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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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 복합상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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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의 좌석별 영화관람료 차등화
서비스 똑같은데 좌석차등제라니…
자리에 걸맞은 보상·지불 없다면
선택 다양화 내세운 꼼수 인상일 뿐

나이 먹어가면서 예전에는 생각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그중에 하나가 어떤 자리에 앉느냐는 것이다. 모임 장소에 가면 내가 앉을 자리가 미리 정해져 있는 곳들이 있다. 가령 내가 일하는 직장 회식자리에서는 이렇다. 제일 상급자가 “오늘 초대 손님인 이 작가님께선 내 옆에 앉으시고, 윤규홍 선생은 그 앞에 앉으시고, 김 실장은 그 옆에 앉고, 조 팀장은 그 앞, 그리고 김 큐(큐레이터의 줄임말)는 그 옆에, 박 큐, 이 큐도 차례대로…”라는 식으로 자리를 지정한다. 그 말투는 부드러운 권유지만 결코 어길 수 없는 질서가 가시화되는 순간이다. TV뉴스를 보면 북한 권력자들이 어떤 식으로 줄 지어있는가를 살피며 서열을 추측한다. 뭐,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다르진 않다.

모든 자리는 그 자리에 걸맞은 보상이나 지불이 정해져 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잊고 살다가 가끔씩 불쑥 튀어 오르는 당황스러운 경우를 만나곤 한다. 요즘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CGV의 입장료 꼼수 인상이 그렇다.

이 영화관이 새로 정한 차등가격좌석제는 상영관 가운데 좌석 값을 올리고, 앞쪽 열과 귀퉁이 자리에 매겨진 가격은 그대로 두는 시책이다. 실은 가격차등좌석제인지, 좌석가격차등제인지, 차등좌석가격제인지, 어느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나 저렇게나 말은 되지만, 이름이 분간되지 않듯 극장 안의 비싼 자리와 덜 비싼 자리도 분간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만약 중간 자리의 인상 폭이 과하다고 생각하면 원래 가격이 매겨진 자리에 앉으면 된다. 이것을 모두 극장 서비스 환경을 더 높이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 만약 이 말에 고개를 끄떡인다면, 그 사람은 세상 참 편하게 사는 것이다.

나는 원래부터 극장 가장자리에 즐겨 앉았다. 중간 좌석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끼어있는 기분 탓에 통로로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옆자리가 좋다. 아무튼 모든 좌석의 시트 색깔이 같고 생김새도 같다는 것은, 보는 위치 이외엔 좋거나 나쁨이 없다는 뜻이다. 음악이나 무용이 실황으로 벌어지는 극장에서 공연자와 관객의 교감이 가장 잘되는 곳을 특석으로 정한 이유는, 예술극장이 일종의 사교의 장으로 쓰인다는 유한계급의 코드까지 품는다. 하지만 컴컴한 극장에서 돈 몇 천원 더 내고 덜 냈다는 것 때문에 선망이나 경멸을 가늠하진 않는다.

애당초 이렇게 결정된 가격정책이 비난 받는 이유는 선택사양을 다양하게 한다는 빈약한 명분으로 슬며시 입장료를 올린 결과 때문이다. 상영관 자리에 지불해야 되는 관객의 지갑 사정을 정말 고려한다면 가격 폭을 더 넓혀야 되는 게 당연하다. 접이식 간이 의자 같은 걸 빌려주고 2천원 정도의 입장료를 받으면 어떨까 싶은 건 어디까지나 내 유치한 상상이긴 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극장에는 입석이 사라졌다. 입석 티켓을 팔던 옛날 극장과 지금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관람 환경은 그 시절 비둘기호 완행열차와 여객기 수준 차이만큼 바뀌긴 했다. 영화관 시설 수준과 함께 오른 건 마케팅의 교묘함이다.

상품 가격 인상에 대한 반감을 분산시키는 방법 가운데 흔히 쓰이는 게 옵션제다.

자동차 옵션 판매제도가 그런데, 요즘 자동차 공장은 지난 세기 초중반 미국 공장처럼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며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완성차를 뽑아내는 방식이 아니다. 포디즘 시대는 지나갔고, 회사들이 갖가지 공정을 끼워 넣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소비자들이 가진 선택 욕구가 갈수록 다양해진다는 배경에서 비롯된다.

우리 극장판의 사정은 관객들이 가지는 다양한 목소리에 대하여 영화 상영관들이 투박하게 처신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있다. 바깥에서 산 먹을거리를 가지고 입장할 수 없다는 규칙을 내세워서 옥신각신하는 영화관과 놀이동산, 운동경기가 열리는 스타디움 등도 있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즐기는 콘텐츠가 바로 거기만 있다는 독점 시장이란 점이다.

영화관은 몇 개의 유력한 업체가 경쟁을 벌이는 구도지만 가격담합에 대한 혐의에서는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좌석 차등화로 편법 인상한 CGV에 대해 여론이 나쁘니까, 같이 입장료를 올리려던 롯데시네마는 한동안 숨죽이고 있다가 이제 상영 시간대별로 유연하게 가격을 매기고 있다고 한다. 이쯤이면 창조경제다. 지금 아무리 여론이 나쁘게 흘러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란 걸 그들은 알고 있다. 그만큼 더 지불해야 되는 돈 몇 천원이 영화 보려는 우리 욕망을 언제까지나 짓누르지 못할 거란 건 담뱃값 인상에도 불구하고 크게 줄어들지 않은 흡연율을 보면 알 수 있다.

대구 수성구에 새로 지은 삼성라이온즈파크는 영화관과 훨씬 구별되는 다양한 좌석 상품을 내어놓고 있다. 잔디가 깔린 맨땅부터 통유리로 둘러싸인 방까지 열 가지가 넘는 자릿값의 차이는 10만원을 넘는다. 새로 지은 야구장을 보려고 많은 관중이 표를 산다. 여기까지는 삼성 라이온즈의 계산이 맞았는데, 사정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경기가 재미없으면 팬들은 줄어든다. 이미 내 주변의 야구광들은 하나둘씩 라이온즈에 대한 애정을 접고 있다. 그래도 뭐, 야구장은 여가를 찾아 즐기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텅텅 비지는 않을 것 같다. 잘 지은 운동장으로 입장수익을 내고, 몸값 비싼 몇몇 선수를 딴 팀에 보내버리면 흑자경영이 될 것도 같다. 어쩌면 2, 3년 내에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흑자경영과 꼴찌를 동시에 기록하는 신기원을 이룰지도 모른다.

영화관은 야구장과 다르다. 삼성 라이온즈와 같은 처참한 콘텐츠는 이내 내려버리고 딴 개봉작을 올리는 게 영화관이다. 아무리 최신식 극장이라도 영화사 120년을 두고 가장 지루한 ‘국가의 탄생’(1915년 작·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감독) 같은 영화만 돌린다면 어떻게 될까.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면서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체험관이나 박물관을 많은 돈을 들여 짓고 콘텐츠 없이 유지비로만 돈을 낭비하는 일을 숱하게 본다. 그런데 영화관은 사정이 다르다. 요즘의 야구 경기 결과와는 다르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를 보고 나오며 우리는 만족해한다. 그러면서도 우린 마음 한편으로 남은 불만이 모두 황당한 가격제 때문이란 사실은 잊어버린다. P&B 아트센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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