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신승영 신기술기업협의회장

  • 이영란,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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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8 08:42  |  수정 2016-05-28 09:41  |  발행일 2016-05-28 제22면
“용산전자상가 23㎡ 남짓한 방에서 창업…교통카드 단말기 시장 장악”
20160528
경기도 성남시 분당 에이텍티앤 본사에서 인터뷰를 가진 신승영 대표가 “직장인들이 안정적이면서도 오래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 일자리 창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9년간 다니던 LG전자에 사표 내고
공고 막 졸업한 2명과 수리업 시작
기업에 장비 납품하다가 직접 제조
우리나라 첫 LCD일체형 PC 대박

2007년 교통카드 솔루션시장 진출
서울·대구 넘어 해외서도 승승장구

“기본 충실하고 무모하리만큼 도전을”

신승영 신기술기업협의회장(에이텍티앤 대표이사)가 취임 두 달을 넘기며 ‘기술장인을 희망하는 꿈나무’를 격려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영주 출신인 신 회장은 1993년 에이텍을 창립하고, 1999년 신기술(NET) 인증을 취득한 이래 신기술기업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해오다 지난 3월 2년 임기의 제11대 회장으로 선임됐다. NET 인증 기업 국내 조달시장 진출과 해외 시장개척 지원을 위한 정부정책을 이끌어 낸 공로 등을 인정받았다.

IT업계에서 전 세계 교통카드 단말기를 평정한 기업인으로 유명한 신 회장은 에이텍티앤 등 모두 4개의 회사를 이끌며 2천5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혹자는 그를 보고 ‘기업할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요즘 세계 산업계를 이끌고 있는 이공계 출신 CEO 중 한 사람으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기업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차분하고 치밀해서 실수를 줄여 지속가능한 기업을 일궈낸 신 회장을 지난 25일 경기도 판교에 있는 그의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목표를 설정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라” “한 분야에 미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신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신기술기업협의회는 어떤 곳인가.

“1997년 설립된 신기술(NET) 인증을 획득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 모임으로, 신기술 제품의 국내외 판로 지원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 회사는 신기술인증을 6가지나 받아 정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에이텍티앤은 어떤 업체인가.

“에이텍티앤은 <주>에이텍에서 분리된 기업이다. 모기업은 93년 창업해 일체형PC, LCD 모니터, LCD TV 등을 만드는 기업이다. 에이텍은 설립 초기에는 컴퓨터 부품의 유지보수 업무에 주력했지만, 자사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97년 부설 연구소를 설립하며 제조업체로 거듭났다. 현재는 산업용 디스플레이 중심으로 기업이 운영되고 있다.

에이텍티앤은 버스·택시 등에 쓰이는 교통카드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업이다. 2007년 교통카드 솔루션 시장에 진출한 뒤 전문화를 위해 지난해 분사했다. 나 역시 이 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에이텍티앤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1회용 교통카드 단말기 솔루션을 서울지하철 1호선에서 8호선까지 모든 역사에 납품했으며, 우리가 개발한 요금징수 단말기도 서울시내 모든 버스와 택시에서 쓰이고 있다. 해외에서도 2010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콜롬비아, 몽골, 코트디부아르에서 우리 제품이 쓰인다. 대구에도 도시철도 3호선 발권시스템, 1·2호선 신분증 인식기 교체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외에도 시스템통합(SI) 사업을 진행하는 에이텍아이엔에스, 에이텍시스템을 비롯해 총 4개 회사가 운영 중으로 총 매출은 지난해 2천300억원, 직원은 730명 정도다.”

▶고향이 영주라고 들었다.

“영주에서 태어나 영주중, 영광고, 영남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LG전자(당시 금성전자)에 다니다 창업했다. 고향 영주, 모교인 영남대 등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준 대구·경북에 대해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주와 영남대에 장학금을 보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기업가로서의 꿈을 키웠나.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막연히 은행원이 꿈이었다. 당시에 은행은 최고의 직장이었다. 봉급을 많이 주기 때문이었다. 나는 6남매 중 3남으로 소위 ‘끼인 자식’이었다. 또 아버지가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다. 박봉에 형제 여섯을 가르쳐야 했으니,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서울은 갈 생각도 못했고, 누나가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영남대로 갈 수 있었다. 은행원이 되고 싶었던 꿈은 타 지역으로 나가려면 돈이 없으니까 막연히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 언어보다는 수학을 좋아해서 이과에 진학했고, 전공을 선택할 때도 취업 때문에 전자공학을 선택했다. 서울에 가고 싶었지만 그나마 대구(영남대)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창업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LG전자에서 9년 근무하는데 결국 ‘학연’에서 많이 부딪혔다. 장래를 생각해보니 결국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같은 상위권 대학 출신에 진급이 밀릴 수 있다는 ‘밑그림’이 그려졌다. 나중에 내 동기들 밑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은 나 스스로 용납될 것 같지 않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과감히 박차고 나왔다. 93년, 30대 중반에 서울 용산 전자상가의 7평(약 23㎡) 남짓한 방에서 공고를 막 졸업한 어린 직원 2명과 수리업을 시작했다.”

▶회사 안정되기까지 어려움도 많이 겪었겠다.

“전 직장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10년 가까이 했던 터라 회사를 창립했어도 사업 아이템은 기존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처음에는 컴퓨터 부품 수리로 사업을 시작했다. 비교적 큰 규모로 거창하게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성실하게 일한 결과 신뢰가 차곡차곡 쌓여 직접 장비를 납품해 달라는 고객의 요청을 계기로 제조업에 뛰어들게 됐다. 그때가 우리나라 최대 경제위기가 찾아온 IMF시절이었다. 당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많은 인력을 축소했다. 또 문을 닫는 기업들 역시 줄을 이으면서 인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 능력 있는 인재들을 채용해서 제품개발에 나섰다.”

▶‘역주행’이 성공의 발판이 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우리 제품이 없으면 장래가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것이 적중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자체 개발한 ‘LCD 일체형 PC’가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교통카드 시스템 사업에 뛰어들어 시장을 장악했고, 현재 동남아로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뉴질랜드와 말레이시아, 콜롬비아에 버스시스템을 구축했고 러시아를 비롯해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 신규시장 개척을 바라보고 있다. 그 결과 2012년 1천180억원에 이르던 매출액은 올해 1천800억원으로 껑충 뛰어오를 전망이다.”

▶창업자로서 특별한 방식이 있나.

“우리 회사 직원들은 1년 의무 교육시간이 120시간이다. 내·외부 강사 교육 등으로 사람들을 키워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학력보다 실력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완전히 정착되어야 한다고 본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늘 생각하는 부분이 전문분야 역량에 따라 제대로 대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수한 사례도 있다. 고졸 사원이 입사해 회사에 다니면서 대학·대학원을 마치고 지금은 임원(상무)으로 근무하고 있는 직원이 있다. 아주 일을 잘한다. 현재 임직원들 가운데 석·박사 과정을 지원받으며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꽤 있다. 회사가 직원들과 같이 성장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어도 힘들지 않고 버틸 수 있더라. 결국 ‘사람’이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가장 큰 것은 일자리 창출 아닌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앞길을 닦아나가는 좋은 사람들이 우리 회사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는 것은 큰 보람이다.”

▶지역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첫째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약속 잘 지키고 의자 정리 잘 하고 전화벨이 울리면 전화도 빨리 받고 하는 그런 기본을 잘 지켜야 한다. 둘째는 ‘무모하리만큼 도전하라’이다. 마지막 셋째는 ‘한 분야에 미쳐라’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몰두하면 무엇인가는 분명 이뤄지더라. 당장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 회장은 인터뷰 내내 “고향과 모교가 성장의 밑거름이 돼 주었다”며 “고맙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는 대구·경북에 대한 애정이 많다는 방증이다. 그는 또 기업인으로서 직장인들이 안정적이면서도 오래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 일자리 창출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다짐을 거듭 밝혔다. 신 회장이 걸어갈 길에 기대가 한층 모아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영란기자 yrlee@yeongnam.com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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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 선임기자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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