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양산 천성산 내원사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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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10   |  발행일 2016-06-10 제37면   |  수정 2016-06-10
“딱, 딱, 딱!” 절집 죽비소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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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동국제일선원의 개원을 위해 축성한 선해일륜. 출입금지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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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 초입에 자리한 산령각. 산신이 천명의 성인이 날 곳이라 예언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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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이 금지된 내원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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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대법당인 선나원, 금고와 가마솥이 있는 육각정자, 수행공간인 죽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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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소금강’이라 불린 내원사 계곡.

원효 가르침에 1천명 득도 전설 깃든 곳
신라 때 창건 대둔사 90여 암자 중 하나
6·25때 전소…1959년 ‘선해일륜’ 낙성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대부분 출입통제
육각정자에 있던 고려 청동북 보물 지정
빼어난 풍광의 6㎞ 계곡 ‘소금강’ 불려

갈등은 길었고, 결국 터널은 뚫렸다. 그 터널의 이름이 ‘원효’라 한다. 산의 내상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골짜기는 아주 평화롭고 아름답다. 산의 원래 이름은 원적산이었으나 원효대사의 제자 천명이 이곳에서 득도했다하여 천성산(千聖山)이 되었다 한다. 산은 영남 알프스의 남쪽 주봉이고 북쪽으로 흐르는 골짜기 6㎞는 소금강이라 불린다. 자꾸만 멈추게 되고 자꾸만 휘둘러보게 된다. 너 괜찮으냐고.

◆ 천명의 성인이 난 산, 천성산

“6시까지는 나오세요.” 일주문에서 입장료를 받는 아저씨가 말씀하신다. 산길이 밝은 동안에만 접근할 수 있는 산이다. 일주문을 통과하자마자 내원사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면 바로 왼쪽 길가에 산령각이 자리한다. 청량한 그늘 속 한 줄기 햇살이 산령각 지붕에 꽂혀 있고 700년 된 소나무가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다.

문무왕 때인 673년 원효대사가 동래 척판암에 머물고 계실 때다. 대사는 당나라의 종남산 운제사(혹은 태화사)에서 수도하던 1천명 대중이 사고를 당할 것을 미리 아시고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拓板救衆)’이라 쓴 판자를 날려 보낸다. 대중이 공중에 뜬 판자를 보고 놀라 법당을 뛰쳐나온 순간 뒷산이 무너져 절이 매몰되어 버렸다. 위기를 모면한 1천명의 대중은 신라로 와 원효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원효대사는 그들이 머물 곳을 찾다 원적산에 이르렀는데, 산신이 마중 나와 “이곳이 1천명이 득도할 곳이니 청컨대 이곳으로 들어와 머무소서”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곳이 지금의 산령각 자리다.

원효대사는 산령각에서 5리쯤 떨어진 곳에 대둔사(大屯寺)를 창건하고 상·중·하 내원암과 89개의 암자를 지어 1천명의 제자를 머물게 했다. 그리고 상봉에서 ‘화엄경’을 강론했는데 지금 그곳은 ‘화엄벌’이라 불린다. 1천명의 제자 중 988명이 이 산에서, 나머지 8명은 팔공산(八公山)에서, 4명은 사불산(四佛山)에서 득도했다 한다. 이후 원적산은 천성산이 되었다.

산령각에서 내원사까지는 3㎞ 조금 넘는 거리다. 숲은 활엽수와 침엽수가 사이좋게 뒤섞여 빛과 그늘이 동시에 넉넉하다. 자동차 한 대만큼의 너비지만 곳곳에 교행을 위한 배려가 있고, 물놀이하기 좋은 계곡 옆에는 화장실이 자리한다. 간간이 길을 덮치듯 나타나는 기암들은 사천왕처럼 느껴진다. 물은 어찌 그리도 맑은지. 계곡을 건너는 다리마다 멈춰 서서 골짜기에 넋 잃는다. 숨찰 만큼 가파른 길도 아니고 긴장할 만큼 굽이진 길도 아니다. 걸으면 더욱 좋았을 아늑한 승경이다.

◆ 동국제일선원, 내원사

아스팔트길이 끝나면 여의교(女意橋) 너머 내원사가 보인다. 내원사는 비구니들의 참선 도량이다. 다리 이름에서 공간의 성격을 미리 가늠한다. 한쪽에는 ‘일행삼매(一行三昧)’라 새겨져 있다. ‘가고 멈추고 앉고 눕고 간에 항상 곧은 마음을 쓰라’는 엄중한 말씀이시다. 미끄럼틀처럼 기울어진 길 옆에 대숲이 짙고, 몇 분 보살님들이 화단을 정리하고 계신다.

‘내원사’ 현판 걸린 입구에 출입금지 바리케이드가 서 있다. 곁의 원화당 옆구리를 지나 경내로 진입한다. 천성산의 능선이 사방을 꽃잎처럼 감싸 안은 가운데 10여 채의 건물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참선하고 공부하는 곳이다 보니 대부분이 출입통제다. 대둔사는 창건 후의 고려시대 사적은 전하는 바가 없고 조선시대에 몇 차례 중창되었으나 조선 중엽쯤 이미 거의 다 폐허가 되었다 한다. 그중 살아남은 하내원이 지금의 내원사다.

내원사가 비구니들의 참선 도량이 된 것은 6·25전쟁 이후의 일이다.

내원사는 전쟁 중 공비들의 방화로 전소되었다고 한다. 이후 1955년 수옥스님이 주지로 오시면서 비구니들을 위한 선원을 짓기로 뜻을 세우고 1959년 선방인 선해일륜(禪海一輪)을 완공했다. 동국제일선원의 개원이었다. 대법당인 ‘선나원(禪那院)’은 최근에 불사를 일으킨 모양새다. ‘선나’는 마음을 모아 선악을 생각지 않고, 시비에 관계치 말고, 유무에 간섭하지 않으며, 안락한 마음자세를 견지함을 뜻한다고 한다. 선나원 앞에 ‘선해일륜’이 자리한다.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모질지는 않아서 넘어다 볼 수 있다. 단청이 번쩍번쩍거리는데도 기품이 있다.

◆ 소리 없는 절집

경내의 육각 정자 안에 청동 금고(청동북)가 걸려 있다. 금고는 범종이나 운판처럼 소리를 내는 징 모양의 불구(佛具) 중 하나다. 내원사 금고에는 고려 선종 8년인 1091년에 금인사에서 만들어졌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만들어진 시기가 분명하고 상태도 양호해 보물 제173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곳의 것은 모형이고 진품은 통도사 성보 박물관에 있다. 그 아래는 아주 낡고 큰 가마솥이 놓여있다. 제작연대는 알 수 없지만 내원사 대대로 전해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완벽한 녹과 뚜렷한 금이, 오래된 고난처럼 여겨진다.

그러고 보니 범종각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내원사는 각 건물의 용도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전부가 수행공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내방객이 가장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기념품 가게다.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의미일 게다. 가게 옆에 차방이 있다.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무료 차 공양을 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먼 데 사는 그리운 친구 같은 절집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통도사 IC로 나가 35번 국도를 타고 양산방향으로 간다. 내원사입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주차료는 소형 2천원, 대형 5천원. 입장료는 성인 2천원, 청소년과 군경은 1천200원, 어린이 1천원이다. 보통 내원사 200m 전방에 주차를 하고 걸어올라가는데, 운이 따르면 여의교 앞까지 갈 수 있다. 한여름의 내원사 계곡은 새벽에 가도 자리가 없을 만큼 물놀이객으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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