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가창청도 팔헐(팔조령∼헐티재) 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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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10   |  발행일 2016-06-10 제38면   |  수정 2016-06-10
팔조령서 헐티재로 가는 길 ‘쉼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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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 행정리 한천농로길. 오월 햇살을 받으며 한 그루 나무가 한가롭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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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천을 따라 복숭아 시험장이 있는 가금구라길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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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각북 가는 길에서 보이는 비슬산 조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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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 카페 밀플라워의 임연희 사장.


‘헐티재→팔조령’ 스포츠 버전과 대조
보고 찍고 먹고 놀고 즐기는 문화 코스
역방향으로 달리니 비로소 보이는 것도

한천서원 지나자 둑길 아름드리 나무
브레송의 사진 ‘영원한 풍경’ 옮긴 듯
자계서원선 탁영 삶 재조명 필요 절감
가창칼국수·밀플라워·아자방 ‘식도락’


지난해 3월 다녀온 가창청도 헐팔(헐티재~팔조령) 라이딩 코스를 역주행해 보았다. 동행 없는 혼자만의 여행에 나섰다. 50여㎞에 걸쳐 펼쳐진 이 길을 쉼 없이 달리는 것도 좋았지만, 쉬어가며 찾아볼 알음집들이 있어 나홀로 라이딩을 택했다.

더위가 식어가는 5월 마지막 주 일요일 오후, 신천둔치길이 끝나는 상동교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니 가창교~상동교 3.7㎞ 구간에는 재해예방사업이 한창이었다. 우둘투둘한 노면은 MTB 타기에 좋았다. 가창으로 가려고 장암사 간판 사이에 놓인 해탈교를 건넜다. 가창청도 라이딩은 가창삼거리가 출발선이고 그 주변이 만남의 광장이다. 헐팔라이딩이 스포츠 주행으로 애용된다면, 팔헐(팔조령~헐티재) 라이딩은 보고 찍고 먹고 놀고 즐기는 오감 문화라이딩이다.

가창삼거리에서 한천서원에 가려면 냉천리를 지나 가창로를 따라 3㎞쯤 가면 좌전방에 청마루공방이 보인다. 안전한 곳에서 신호대기를 하다 청마루공방 있는 길로 해서 중앙교를 건너 1.5㎞를 가니 한천서원이 나왔다. 고려 개국공신 충렬공 전이갑과 충강공 전의갑 형제를 배향한 곳이라 찾아보고 싶었는데 팔헐라이딩으로 소원을 성취했다. 여기서도 오늘날 서원이 가진 공통점이 발견됐다. 꽉 닫힌 문 밖에서 담장 너머로 먼 산 구경하듯하다 글 읽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것. 건축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우리시대 서원의 현주소.

한천서원을 뒤로 하고 나오자마자 들어오면서 눈에 꽂힌 중앙교 앞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는 둑방길로 향했다. 흡사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영원한 풍경’과 싱크로율 60~70%를 연상시키는 장면에 반했던 것이다. 나무 뒤로 난 산 이름을 모르는 무지에 안타까워하며, 호기심에 이끌려 난 길을 따라가니 가창초등학교 후문이 나왔다. 자전거 타기에 갓길이 너른 가창로와 상봉을 했다.

대일리에서는 가창로 이면도로인 가창로 119길과 85길, 57길을 번갈아 탔다. 식객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우리밀 착한식당으로 유명한 가창칼국숫집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사장님께 직접 밀농사를 짓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어디서 짓느냐고 재차 물으니, “가르쳐 줬더니 민폐를 끼쳐서 더는 안 가르쳐 준다”고 했다. 구관모식초 명가 앞 어딘가에서 다 자란 우리밀을 보고 촬영도 했기에 더 이상 묻진 않았다.

아주 특별한 우리밀 칼국수로 허기를 채웠으니, 이제 8명이 조를 맞춰 넘어야 했다는 팔조령 옛길을 혼자서 넘을 차례. 가창로 57길과 38길이 가창로로 흘러드는 삼산리에서 팔조령 정상권인 산장휴게소까지는 17분여 걸렸다. 헐티재보다 업힐 구간은 짧은 것 같았다. 헐팔라이딩 때는 있는지조차 인식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팔조령산장휴게소 옥상에 올라가보니 청도 이서국이 한눈에 들어왔다. 팔조령휴게소에서 쉬어가는 라이더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팔조령전망대에서 공무원 출신 주인장의 30년 전 건축 스케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헐팔’로 유명한 가창청도 라이딩을 ‘팔헐’로 역주행해 보기로 한 것은 다음 코스에 있는 ‘밀플라워’(이서면 대곡리 1267번지)라는 자수 카페 때문이었다. 일반의 상상을 깨는 참으로 어색한 이 가정집 카페는 대구에서 수제 팥빙수집을 찾다가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팔조령에서 5~6분 신나게 다운힐해서 목림교차로에 도착한 뒤 대곡길로 좌회전해서 들어가니 중간중간 ‘MILL FLOWER’라고 친절하게 써붙인 안내판이 나타나 길손의 불편을 덜어줬다. 수제팥빙수를 얼음밥 간식으로 먹는데, 감동이 덤으로 물밀 듯 밀려들었다.

대곡리에서 포만감을 안고 영적으로 충만해지는 6㎞ 거리 자계서원으로 향했다. 왔던 길을 돌아서 청도박물관~골안교차로~금촌리~학산리를 지나니 각남방향과 각북방향 이서면사무소 분기지점인 신기교차로가 나왔다. 자계서원은 자동차를 몰고 가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자전거로는 감춰져 있는 보물 같았다. 불안해서 내비게이션을 켰다. 우여곡절 끝에 이서교(서원) 건너기 전 동네 어귀에서 자계서원을 알리는 작은 안내판을 만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동방10현에 이름을 올려도 손색이 없을 탁영(濯纓) 김일손, 그 이름을 청도 영남대로에서 발견하진 못했다. 영남사림의 위인을 감말랭이, 싸움소 정도의 대접도 안 해서 될 일인가.

무오사화에서 이름이 거명될 뿐, 역사책에서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조선 초기 성종~연산군 때 문신 김일손 선생은 직필의 사관으로 ‘유자의 진정한 길과 관료의 참된 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셨다. 영남 학맥에서는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선생과 함께 4두마차를 형성하고 있다. 지역사 차원의 연구는 이루어졌으나 그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미약해 관계 집단의 분발을 요한다 하겠다.

밖에서는 지금을 따르지만 안에서는 옛것을 취하는 ‘외금내고(外今內古)’의 정신으로 일관했던 35세 청년이 생을 마감하던 날, 청도 운계(雲溪)의 냇물이 붉은 핏빛으로 변해 3일간 멈추지 않고 흘렀다고 한다. 붉은 피서린 자계서원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직필의 사관(史官)은 사마천을 넘어선 사관으로 추앙받을 면이 있는 분인데, 기념사업이 변변찮은 것 또한 유감스럽다. 설상가상으로 2년 전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인 영귀루가 폭삭 내려앉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뚜렷한 비석 하나 없어 지나가는 자 모두가 탄식하여 마지않았는데”라는 영조대 홍문제학(弘文提學) 윤봉조의 탁영선생 신도비명(神道碑銘)에 마음이 머무른다.

문 닫힌 자계서원을 담장 너머로 짧게 보고, 청도천을 따라 복숭아 시험장이 있는 가금구라길 각북·각남방향 삼거리로 페달을 밟았다. 구라리~가금리~명대리 순으로 지나쳤다. 칠성석물을 지나 이서교 앞 우산1길로부터 각북교까지 펼쳐져 있는 벚나무터널이 주는 시원함은 특별났다. 우산리~삼평리~남산교 순으로 5㎞여 힘써 달리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한옥카페 아자방에 도착했다. 여기도 살림집이 장삿집으로 바뀐 곳이다. 2천600여㎡(800여평)되는 공간에 두루 미친 집주인의 섬세한 손맛이 느껴졌다. 고객은 물론 과객에게도 열려 있는 아자방은 팔헐 라이딩의 화룡점정이었다. 무엇보다 화장실 앞에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를 향기롭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인상깊었다.

어둑해 가는 시간, 헐티재 업힐은 15분 걸렸다. 가창 정대로의 다운힐은 순식간에 끝났다. 머리가 쭈뼛해지는 가창댐 구간을 지나 가창삼거리 원점으로 회귀하니 밤 10시였다.

순서를 바꾸고 방문지를 넣으니 코스는 같았으나 가는 길이 살짝 달라지고 느낌은 완전 달라졌다.

한여름 팔헐라이딩을 맛으로 평하자면 무더위를 잠재우는 수제빙수맛으로 정리하고 싶다. 가까운 칭다오(靑島)에 가는 기분 같기도. 직접 언급하지 못했지만, 이 길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여러 공간들이 우리의 여행길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습관적으로 헐팔라이딩만 하지 말고 팔헐로를 따라 역주행해보면 뜻밖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구간

가창삼거리∼한천서원∼우록 우리밀칼국숫집∼팔조령옛길∼팔조령산장휴게소∼이서면 대곡리 밀플라워∼서원리 자계서원∼가금구라길∼이서교∼이서각북 벚꽃터널∼각북교∼남산리 아자방∼헐티재∼정대∼가창댐∼가창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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