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마크제이콥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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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17   |  발행일 2016-06-17 제40면   |  수정 2016-06-17
‘한 끗 차이’ 고급-저급 패션의 경계를 허물다
20160617
마크 제이콥스 2016 S/S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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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입고 싶어하는 옷 만든다’ 철학
기존 명품과 달리 실용·상업 가치 무게
넝마주이 거리패션을 하이패션 승화한
‘그런지룩 창시자’로 패션계 혁신 주도

유복한 유년…13세 때부터 패션 열정
페리 엘리스 만난 후 본격 디자인공부
祖母에게 배운 뜨개질 등 패션에 영향
1984년 선뵌 스웨터 ‘스케치북 컬렉션’
美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소장되기도


옷이란 고결한 예술 작품이 아닌 판매에 목적을 둔 상품이며, 자신은 예술가가 아닌 패션디자이너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다.

고급스러움과 캐주얼함을 오가며, 옷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구매할 수 있는 명품’을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한 동명의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를 이끌어가고 있는 그는 기존의 명품 브랜드와는 달리 실용적이고 상업적인 가치가 있는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는 젊은이들의 기호를 파악하여 독창적으로 풀어내는 탁월한 능력으로 의류, 가방, 시계, 신발, 향수, 코스메틱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예술작품이 아닌 ‘한 소녀가 입고 싶어 하는 옷’을 만든다는 철학을 고수하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63년 4월9일, 뉴욕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마크 제이콥스는 연예계 스타들을 관리하는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William Morris agency)의 유능한 에이전트인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가 7세가 되던 해 아버지가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세 번의 재혼으로 뉴저지, 롱 아일랜드, 브롱스로 옮겨 다니게 되었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어머니는 전혀 자식들을 돌보지 않았기에 1980년, 그가 17세가 되던 해에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떠나 친할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하였다.

뉴욕의 부촌인 어퍼 웨스트사이드의 유서 깊은 빌딩에 사는 그의 할머니는 교양 넘치는 세련된 귀부인으로, 버그도프 굿맨을 비롯한 고급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던 멋쟁이였다. 그녀는 마크 제이콥스에게 손뜨개를 가르쳐 주고, 항상 용기를 북돋워주는 등 그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마크 제이콥스의 패션에 대한 열정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1976년 13세가 되던 해 그는 당시 가장 전위적인 옷을 판매하던 뉴욕의 부티크 샤리바리(Charivari)를 찾아가 무급에 작은 일이라도 좋으니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바람은 2년 후에나 이루어졌고 그는 샤리바리에서 옷을 정리하고 마네킹에 옷을 입히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샤리바리에서 일하면서 평소 동경하던 패션 디자이너 페리 엘리스(Perry Ellis)를 직접 만나게 되는 기회를 얻었고, 이 만남은 그의 인생에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페리 엘리스는 디자이너를 꿈꾸는 마크 제이콥스에게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 진학을 권했고 그는 1981년, 예술 디자인 고등학교(High School of Art and Design)를 졸업한 뒤 파슨스 디자인스쿨에 입학하였다.

마크 제이콥스는 파슨스 디자인스쿨 재학 시절부터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다. 1984년 졸업 작품으로 영국의 화가 브리지트 라일리(Bridget Riley)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옵아트 문양의 스웨터 3벌을 디자인하였는데, 이를 샤리바리의 주인 바바라 바이저(Barbara Weiser)가 주문해 ‘마크 제이콥스 포 마크 앤 바바라(Marc Jacobs For Marc And Barbara)’라는 라벨을 달아 샤리바리에서 판매하였다.

이 졸업컬렉션으로 마크 제이콥스는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올해의 학생상’을 비롯해 ‘체스터 와인버그 황금 골무상’ ‘페리 엘리스 황금 골무상’ 및 파슨스 디자인스쿨 졸업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상을 휩쓸며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젊고 유능한 디자이너를 찾고 있던 뉴욕의 의류회사 루번 토마스(Reuben Thomas)에 재직 중인 로버트 더피(Robert Duffy)의 눈에 띄어 루번 토마스사에서 새롭게 론칭한 브랜드 ‘스케치북(Sketchbook)’의 디자인을 맡게 되었다.

그는 스케치북 컬렉션에서 폴카 도트 문양의 오버사이즈 니트 스웨터를 선보였는데, 당시 뉴욕타임스는 그의 작품을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젊은 스타일로, 1960년대의 활력에 우아함을 더한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곧 루번 토마스사가 문을 닫게 되면서 스케치북 컬렉션도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이 컬렉션은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루번 토마스사의 폐점 이후, 1984년 로버트 더피는 마크 제이콥스와 함께 ‘제이콥스 더피 디자인 주식회사(Jacobs Duffy design, Inc.)’라는 소규모 패션회사를 설립하고, 1986년 한 패션 유통회사의 후원을 받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의 첫 번째 컬렉션을 발표하였다. 이 컬렉션으로 미국 보그(Vogue)지에 ‘패션계의 떠오르는 별 7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1988년엔 마크 제이콥스와 로버트 더피에게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다. 창립자의 죽음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뉴욕 대표브랜드 ‘페리엘리스’의 여성복 디자인 부사장 및 사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페리 엘리스에서 특유의 다채로운 컬러감과 유머러스한 아메리칸 캐주얼 디자인을 발표하며 4년간 페리 엘리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1992년 페리 엘리스의 봄여름 컬렉션에서 그런지 룩을 선보이며 패션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구겨지고 찢어진 너저분한 의상들은 상류층 고객과 경영진, 패션 언론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고, 페리 엘리스는 컬렉션 의상 생산을 전면적으로 취소하며 마크 제이콥스와 로버트 더피를 해고하였다. 하지만 마크 제이콥스는 넝마주이 거리 패션을 최고급 소재의 하이패션으로 승화시킨 ‘그런지 룩의 창시자’라는 칭호를 받으며 미국 패션 디자이너협회(CFDA)가 주는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페리 엘리스에서 해고된 후, 1993년 마크 제이콥스 가을겨울 컬렉션으로 컴백한 그들은 점차 해외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가며 1997년 뉴욕 소호 지구의 머서 가(Mercer Street)에 첫 독립 매장을 열었다. 그리고 같은 해, 마크 제이콥스와 로버트 더피는 각각 루이뷔통의 아티스틱 디렉터와 스튜디오 디렉터로 발탁되어 루이뷔통의 젊고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루이뷔통은 그를 영입한 뒤 매출이 4배나 상승했고, 루이뷔통의 모기업 LVMH는 마크 제이콥스 브랜드의 지분을 일부 인수하여 그가 재정적 어려움 없이 디자인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루이뷔통과 자신의 브랜드를 오가며 매 시즌 호평을 받던 마크 제이콥스는 자신의 브랜드에만 집중하기 위해, 2013년 10월2일,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마지막 루이뷔통 컬렉션을 발표하고 16년 동안 일했던 루이뷔통을 떠났다.

여전히 자신의 패션 철학을 고수하며, 저속함과 고급스러움을 오가며 자신만의 독특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스타디자이너의 식지 않는 열정을 응원하며, 다시 한 번 패션계의 혁신을 이루어 내길 기대해 본다.

프리밸런스·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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