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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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17   |  발행일 2016-06-17 제43면   |  수정 2016-06-17
‘로코’ 그릇에 담아낸 존엄사 이야기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현충일 저녁, 객석을 꽉 메운 관객들은 재벌 불구남과 촌티 생뚱녀의 러브스토리에 연신 파안대소하다가 막판 영화가 존엄사 문제를 들이대자 웃어대던 안면 근육에 생뚱맞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연극 연출가 테아 샤록이 감독해 영화화한 ‘미 비포 유(Me Before You)’는 로맨틱 코미디의 그릇에 담아낸 의미심장한 인생 매뉴얼이다.

69세의 알 파치노에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안겨줬던 ‘당신들은 잭을 알지 못해!’(You Don’t Know Jack·2009)는 죽음의 고통에 직면한 불치병 환자를 안락사시킨 잭 케보키언 박사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1990년부터 8년간 130여명을 안락사시킨 잭은 2급살인죄로 25년형을 선고받고 8년6개월 복역 후 2007년 가석방되었다가 2010년 6월 타계하였다. 영화 속에서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죽음을 맞고 싶을 정도로 삶이 고통스러운 절박한 이들에게 그들의 적극적 동의를 받아 숭고한 인간적 정의에서 안락사를 시행한다. 물론 의학적 치료가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한 경우에 한해서였다.

‘미 비포 유’ 역시 존엄사(안락사)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이를 이야기로 끌어들여 풀어내는 방식은 다르며 메시지의 층위도 판이하다.

성채를 보유한 갑부 집안의 상속자로 모든 것을 갖춘 청년 사업가 윌(샘 클라플린)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다. 카페 여급에서 잘린 후, 일자리가 절박하던 백수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가 그의 간병인 자리를 꿰차게 된다. 비록 몸은 불구나 최상류층 DNA가 골수에 가득 찬 깔끔남과 궁색한 서민층 체취에 찌들어 옷차림에서 말투까지 촌스럽기 그지없는 순진녀의 이상한 동거는 깔끔남의 존엄사 의지와 맞부딪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워 삶의 이유를 상실한 이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기 위해 자신의 소신을 펼치는 염라대왕(안락사 시술 의사)의 시각에 초점이 맞춰진 ‘당신들은 잭을 알지 못해!’가 존엄사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일종의 사회고발극이라면 ‘미 비포 유’는 보다 적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전향적 자세에 대해 로맨스의 달콤한 일상에 버무려 진중하게 일갈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이젠 죽음과 이에 이르는 공포에 속수무책으로 전전긍긍하며 삶을 좀먹기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법을 익힐 때라고 영화는 강변한다. 스스로 선택한 삶의 시나리오(로맨스)가 죽음을 얼마나 의미롭게 하는지 보여준다. 윌의 마지막 주문대로 파리의 노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가게에서 향수를 구입한 후, 다이애나비가 최후를 맞았던 알렉산더 3세 다리를 건너 콩코드 광장으로 향하는 루이자의 활기찬 뒷모습에서 가치있는 죽음이 의미있는 삶에게 보내는 뜨거운 갈채가 들려왔다.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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