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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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0 07:59  |  수정 2016-06-20 07:59  |  발행일 2016-06-20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던 사나이

2016년 6월3일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란 이름으로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라이트헤비급 아마추어 챔피언으로 등극한 후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무하마드 알리로 이름을 개명합니다. 알리는 헤비급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빠른 몸놀림으로 유명했는데, 후에 이런 알리의 빠른 발놀림에 영감을 얻어 이소룡도 비교적 정적인 중국의 쿵후에 알리의 스텝을 가미해 권투선수처럼 뛰어다니며 특유의 괴성을 지르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이렇게 현란한 스텝과 입담으로 상대의 기를 죽이던 알리는 1981년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합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1996년, 무하마드 알리는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의 최종 성화 점화자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안타깝게도 알리는 전성기 시절의 화려한 스텝 대신 어눌한 걸음걸이로 손을 떨면서 힘겹게 성화대에 불을 붙였습니다. 알리는 오랜 복서생활을 하며 얻은 직업병인 펀치드렁크 증후군으로 인해 말과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파킨슨병(혹은 파킨슨 증후군)’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환자였던 것입니다.

파킨슨병은 19세기 말에 이 질환을 처음 보고한 영국인 의사 제임스 파킨슨의 이름을 딴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가만히 멈춰있을 때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나 손을 떠는 증상과 같은 특이행동들이 나타납니다. 파킨슨병은 이상 단백질이 신경세포에 쌓이고, 이 신경세포가 괴사하면서 발생하게 됩니다. 이상 단백질 축적으로 인한 파킨슨병 발병 외에도 뇌졸중, 약물 중독, 외상 후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와 같은 복서는 지속적으로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아서 파킨슨병 발병이 시작될 수 있고, 헤딩을 많이 하는 축구 선수 역시 비슷한 이유로 발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 연구를 통해 파킨슨병이 뇌 속 도파민을 분비하는 기관의 이상으로 유발된다는 것을 밝힌 이래 외부에서 도파민을 주입하여 파킨슨병의 증상을 완화해 보려는 시도가 많았지만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주입된 도파민이 몸속에서 분해되어 뇌에 이르는 양이 너무 적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후 도파민의 전구체인 ‘레보도파’ 합성에 성공하고, 이를 먹을 수 있는 약물로의 개발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파킨슨병 치료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됩니다. 더불어 약물이 전달된 말초에서 도파민이 분해되지 않도록 도파민을 분해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약물까지 개발되면서, 이제 파킨슨병은 다른 퇴행성 신경질환과 달리 더 이상 수명을 단축하는 무서운 신경질환이 아니게 됐습니다. 실제 최근 영국과 미국에서 파킨슨병 환자들의 수명은 정상인에 비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보고와 파킨슨병이 인간의 수명을 단축한다는 증거가 없다는 보고가 연달아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백 투 더 퓨처’란 영화로 잘 알려진 배우 마이클 J. 폭스 역시 파킨슨병 환자입니다. 현재 마이클 J. 폭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파킨슨병 연구재단을 설립하여 파킨슨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고 있는 등 약물 개발 이후 거의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배우는 영화에서 서있는 장면에서는 늘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데, 이것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손떨림이 나타나는 것을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자신만의 노력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권투스타일을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고 말하던 무하마드 알리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혹시 지금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을 대상으로 ‘천사처럼 날아서 악마처럼 쏜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을는지요. 그래도 그곳에선 파킨슨병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의 복싱 황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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