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6] 청송 국가지질공원 Geo-tourism <10> 주왕산 ‘연화굴’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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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1   |  발행일 2016-06-21 제13면   |  수정 2021-06-17 17:34
기괴한 바위 사이 연화봉이 숨겨둔 길이 10m 동굴은 폐허의 사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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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굴은 화산재가 급격히 식어 굳어진 주왕산 응회암 지대에 속한다. 높이 3m, 너비 5m, 길이 10m의 통로형 굴로, 햇살이 비칠 때면 호롱 모양을 한 실루엣을 살며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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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굴 주변은 기괴한 형상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그 틈을 비집고 뚫려있는 굴은 마치 외진 기도실 같기도 하고 고독한 독방처럼 보이기도 한다.

 

허리는 굽되, 기어가지 않을 정도로만 디딤돌을 마련해 둔 가파른 외길이다. 커다란 바위들과,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돌들이 도처에서 쳐다본다. 아틀라스처럼 구부정하지만 저돌적으로 전진한다. 덜컥 헐거운 돌멩이가 추락처럼 뛰어 내려가면 걸음은 산사태처럼 움찔한다. 고개를 들어 앞을 올려다보면 다만 서늘한 숲이 내려다보이고, 슬쩍 주위를 살피면 오래된 성벽과 같은 돌 무리가 미처 제 몸을 다 숨기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길의 끝이다. 숨을 고르기 위한 한 평 남짓한 평지뿐, 눈앞에는 바위의 사원과 같은 연화굴이 가로막고 서 있다.

 

 

#1. 건축가 없는 건축, 연화굴

연화굴은 주왕산의 주 등산로에서 이탈해 산 중턱에 숨은 듯 자리한 굴이다. 풍상에 닳은 성곽 같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문 같다. 구구한 전설로만 전해져온 역사시대 이전의 수도원을 발굴해낸 것 같은 놀라운 느낌이다. 서원모가 쓴 ‘주왕산지’에 보면 1932년경 황생이라는 이가 뽕잎을 따러 왔다가 무성한 등나무 줄기에 감춰져 있던 이곳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은 서원모는 친구들과 함께 찾아와 이름을 적고 연하굴(烟霞窟)이라 명명했다. 봉우리 이름과 근사한 것을 취한 것이라 한다. 

 

화산재가 식어 굳어진 응회암굴
냉각 과정서 특정방향 절리 형성
동굴 뚫린 지점에 수직절리 발달
상부 판상절리…아래는 괴상절리


굴 벽면엔 암회색 ‘피아메’ 결정
화산재가 압착돼 광물로 변한 것

 


봉우리는 연화봉(蓮花峯)이다. 모습이 연꽃을 닮았다 한다. 그 아래에 연화굴(蓮花窟)이 있다. 이름은 손쉬운 방향으로 정착한 듯하다. 연화굴은 높이 3m, 너비 5m, 길이 10m의 통로형 굴이다. 터널이고 돌문이다.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만든, 건축가 없는 건축이다. 굴 바닥과 입구 앞까지 크고 작은 돌들이 거친 너덜겅처럼 흩어져 있다. 굴 옆으로는 기괴한 형상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병풍바위에서 계곡수가 나와 굴 바닥으로 흘러내린다는데, 물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드문 이끼들과 습기를 먹은 대기에서 계곡수를 떠올린다.

공기는 시원하고 고요하다. 굴의 어둠 속에서 햇살은 더 환해 호롱 모양을 한 굴의 실루엣이 선명하다. 그 옛날 새겼다는 서원모와 친구들의 이름은 찾아지지 않는다. 뒤편은 암벽이 가로막고 서 있다. 굴은 지나가라는 듯 열어놓고는 이내 걸음을 잡는다. 양쪽의 좁은 틈으로 어디론가 이어질 것 같은데 나아갈 수 없다. 검은색을 띤 암벽이 축축하다.

머리 위로는 길고 좁은 하늘이 보인다. 폐허가 된 사원 같다. 외진 기도실이고 고독한 독방 같다. 눈 깊은 사람이 앉아 있는 것만 같은데, 19세기 사람 류정문은 이곳을 보고 ‘허물이 남아 누운 용’이 생각난다 했다.

#2. 절리의 침식이 만든 굴

주왕산은 대부분이 화산재가 급격히 식어 굳어진 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화굴 역시 주왕산 응회암 지대에 속한다. 응회암은 냉각되는 과정에서 특정한 방향의 절리를 형성한다. 굴이 뚫려있는 지점은 수직절리가 발달하고 있다. 10~20㎝ 내외의 조밀한 간격으로 발달한 수직절리로, 작고 길쭉하고 각진 암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양새다. 이런 암석 조각들이 떨어져 나와 굴을 만들었다고 한다.

상부는 수평의 판상절리가 발달해 있다. 간격이 조밀해 두툼한 고깃덩어리로 보이기도 한다.

아래쪽은 불규칙한 괴상의 절리다. 지면과 평행한 절리가 약간 우세하지만 드물게는 수직절리도 보인다. 이러한 판상, 주상, 불규칙 절리대는 단속적으로 변화한다. 이는 연화굴을 이루는 응회암체가 불규칙적이고 복합적으로 냉각되었음을 시사한다.

연화굴 뒤편의 검은 암벽은 응회암 수직 절리대에 끼어든 안산암 암맥이다. 응회암의 수직절리 속에 안산암질 암맥이 수평 방향으로 조밀하게 채워져 있다. 방향이 다른 암질이 만나면 틈이 생긴다. 틈으로 인해 침식의 힘은 강해졌다. 틈을 따라 지표수가 흘러 침식은 더욱 활발해졌다. 그 틈을 따라 굴을 구성하는 응회암체가 기울어져 호롱 모양을 만들었고, 틈을 따라 흘러내린 물로 인해 뒤쪽의 틈과 앞쪽 면이 관통하는 터널형의 굴이 되었다.

#3. 동굴의 피아메

무릎이 찢어진 적이 있다. 상처는 얇고 날카로운 유리 파편 모양의 거뭇한 흉터로 남아 있는데, 동굴의 벽면에는 그와 비슷한 자국이 많이 보인다. 회백색 혹은 암회색의 그것은 ‘피아메’라 불린다. 화산 폭발의 분출물 중 물에 뜰 만큼 가벼운 부석의 파편들로, 화산재가 퇴적될 때 압착되어 보다 단단한 구조의 광물로 변한 것들이다.

부석들은 폭발로 인해 하늘을 나는 동안 휘발성 성분이 빠져나가 수많은 공기구멍(氣孔)이 생긴 것이라 한다. 화산재가 높은 온도와 큰 압력을 받아 응회암이 될 때, 부석들은 치이고 눌려 납작해졌다. 공극은 계속 감소되어 밀도가 높아졌고 심하게 편평해져 어두운 유리 파편과 같은 피아메가 되었다. 판상절리나 불규칙절리 부분에는 대부분 피아메가 빠져나가 빠끔하다. 풍화에 의해 빠져나간 것이라 한다. 등산로에서 연화굴로 올라가는 산길에서도 퀭한 피아메들을 발견할 수 있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참고=△주왕산지 △청송지질공원 홈페이지 △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
공동 기획: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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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이 숨어있다 죽음을 맞이한 곳으로 전해지는 주왕굴.

 

주왕산의 동굴들>>> 주왕굴·무장굴·연화굴 등 은둔·수도자의 전설 품어


전설에 의하면 중국 당나라 시대 주왕이 반란을 일으켜 실패한 후 숨어든 곳이 주왕산이다. 주왕산에는 많은 동굴이 있는데, 주왕이 숨어있다 죽음을 맞이한 곳이 주왕굴, 주왕의 군사들이 무기를 숨겨둔 곳이 무장굴이다. 연화굴은 주왕의 군사가 훈련을 하던 곳이라 하고 주왕의 딸 백련공주가 성불한 곳으로도 전해진다.

이들 동굴의 생성은 약 7천만 년 전 주왕산의 형성과 때를 같이한다. 모두 고도 390m에 위치하며 주왕산 응회암대에 속한다. 주왕굴은 높이가 약 5m, 폭은 약 2m인 자연동굴이다. 주왕굴은 좁은 간격의 응회암 수직절리 내에 단층선이 지나가면서 풍화와 침식에 약해져 생긴 굴이라 한다. 주왕굴로 향하는 길목에서 양옆으로 길게 이어진 단애에는 여러 방향과 두께의 수직절리와 함께 주상절리도 볼 수 있고, 피아메도 선명하다.

무장굴은 높이 3~5m, 폭 2.6m, 깊이 6m 규모로 역시 주상절리와 소규모의 단층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현재도 계속 발달하고 있다. 암맥이든 단층이든, 무언가가 끼어들면 변형된다. 그 모습은 은둔자와 수도자의 전설을 품을 만큼 기묘하고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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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성 주변에는 돌 무리만 어지럽게 널려있을 뿐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자하성>>> 신라군사 막으려 쌓은 城...산사면에 돌 무리만 남아


허물어진 성벽 같기도 하고 너덜 같기도 한 돌무지 흐르는 산사면 아래에 자하성(紫霞城) 안내판이 서있다. 연화굴과 가깝게 있다. 주왕이 자신을 잡으러 온 신라 군사를 막기 위해 쌓은 성으로 ‘주왕산성’이라고도 불린다. 지금은 성돌로 추측되는 돌 무리만 어지럽게 널려 있을 뿐 옛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안내판에는 길이가 약 12㎞에 달했다고 적혀 있다. 청송읍지에는 자하성 혹은 주방산성이라 기록되어 있고 길이는 1천450척, 성 안에는 시내가 두 개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음 신집이 1604년에 쓴 ‘유주방산록’에는 ‘신라왕이 적병을 피해 왔을 때 지은 것’이며 ‘짧은 성가퀴는 황량하니 자취는 오래되었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성문이 남아있어 오고 가는 유람객들은 모두 그 문으로 다녔다고 한다. 19세기 창녕 사람 조화승은 ‘연하굴은 그 굴을 통해 자하성에 이르므로 붙여진 이름’이라 했으니, 슬그머니 자하성과 연화굴의 관계를 상상하게 된다. 자하성에 대한 옛 글에는 가끔 ‘돌문’이 애매하게 등장하는데 그것은 혹시 연화굴이 아닐까. 긴 자하성의 문 가운데 하나가 연화굴은 아니었을까. 산길서 본 성벽과 같은 돌 무리가 화들짝 떠오른다.


☞ 여행정보
주왕산 대전사에서 주방천 계곡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자하교 쉼터에서 용추폭포 방향으로 조금 가면 왼쪽에 연화굴 가는 이정표가 있다. 

산길을 200m 정도 오르면 연화굴이다. 

내부로의 접근은 금지되어 있다. 

자하교 쉼터 부근에 자하성 안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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