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원전, 토지 보상업무 중단…이주 예정 주민들 집단행동 조짐

  • 남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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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2 07:45  |  수정 2016-06-22 07:45  |  발행일 2016-06-22 제12면
영덕군-한수원 1년째 힘겨루기
20160622
영덕 천지원전 건설 예정지역 중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영덕읍 석리 전경. 석리에는 16곳의 민박(펜션)이 있지만 원전 건설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영업에 피해를 보고 있다.

영덕 천지원전 건설 예정부지 내 거주하고 있는 A씨(54·영덕읍 석리)는 “먹고 살기도 바쁜데 힘든 점이 한 둘이 아니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영덕군과 정부·한국수력원자력 간의 갈등으로 엉뚱하게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군이 원전 예정부지의 토지보상에 필요한 출입허가를 내주지 않는 바람에 사업 첫 단계인 토지보상 업무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양측의 힘겨루기에 원전 건설부지 내 이주예정 주민만 속을 태우며 불만을 키우고 있다.

◆ 이주 예정 주민들 단체행동 예고

정부는 2012년 9월 영덕읍 석리와 노물· 매정리, 축산면 경정리 일대를 새 원전 건설 부지로 고시했다. 이어 지난해 제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2026∼2027년에 150만㎾급 원전 2기를 건설하기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경북개발공사와 토지매입 등 보상업무 용역을 맺고 작년 6월과 9월 두 차례 보상토지 사전 조사를 위해 영덕군에 토지출입허가를 신청했다. 토지가격 산정을 위해 타인 토지에 출입하려면 관할 시장·군수의 허가를 받은 뒤 점유자에게 일시와 장소를 알려야 하므로 출입허가는 필수다. 하지만 군은 두 차례 모두 외면했다.


郡 “지원 계획부터 마련해야”
4차례 토지 출입허가 안내줘

한수원 “군 협조없으면 난감”
원전 건설 일정에 차질 우려

예정 부지 내 4개 마을 주민
각종 인·허가 제한 큰 불편
“지원사업 흥정에 주민 볼모”



한수원은 지난해 11월 보상계획을 공고하고 감정평가 업체를 선정한 뒤 본격적인 보상을 위해 올 1월에 이어 5월 다시 출입허가를 신청했으나 군이 계속 불허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보상 업무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편입토지 조사는 물론 설계를 위한 측량과 예비 지질조사, 해양환경 조사도 손을 놓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정부·한수원의 지원사업 규모, 즉 돈 때문이다. 군은 정부와 한수원이 제안한 사업에 대해 구체적인 실행 계획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보상업무를 하기 전에 정부와 한수원이 약속한 지원사업의 구체적인 실천 계획부터 마련하는 것이 순서”라고 밝혔다.

이러다보니 애타는 쪽은 이주예정 주민들이다. 천지원전이 들어설 4개 마을에는 133가구 3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2012년 9월 정부고시 이후 해당지역에는 각종 인·허가의 제한이 따랐다. 마을 상·하수도는 물론 작은 공사까지 손댈 수 없어 주민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마을 전체가 이주하는 석리에만 16곳의 민박(펜션)이 있지만 보수공사는커녕 제대로 운영조차 할 수 없어 영업피해도 크다. 이곳 주민 B씨(50)는 “이삿날을 받아 놓은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또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향후 생활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고시 이후 다수의 주민이 사망했는데 그때마다 보상권을 두고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빠른 결정을 요구했다. 석리 생존권 대책위원회는 최근 마을에서 회의를 열고 출입허가 등 향후 일정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천지원전 대책위 등과 연대해 집단행동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았다.

◆ 양측 기싸움에 불신 커지고 일부에선 원전 계획 차질 우려

군은 2013~2014년 정부로부터 신규 원전 유치지원금 380억원을 받았지만 사업 첫 단계인 토지보상 업무부터 막혀 있다. 군이 정부와 한수원이 약속한 10대 지원 제안사업의 구체성을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이에 한수원은 지난 5월 첨단열복합단지, 의료특화사업 등 시급한 4개사업에 대한 용역발주를 마쳤다. 하지만 군은 오는 10월 결과 보고서가 완료되면 그때 판단할 것이라며 팔짱을 끼고 있다. 또 최근엔 한수원 측에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 군이 주체가 돼 지원계획을 만들고 이를 군민이 동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이 원전에 대한 입장과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지만 이주예정 주민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예정지역의 보상과 관련된 일부 단체에서는 국민권익위 등에 탄원서를 제출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반면 정부와 한수원은 지난해 11월 주민투표 이후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천지원전 관계자는 “토지출입 허가가 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원활한 보상을 위해서는 군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원칙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다. 이어 “향후 건설과정에서도 수차례 군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아야 할 입장”이라며 난감함을 드러냈다.

양측의 기싸움에 일부 지역주민과 건설 예정지역 주민의 우려와 불신은 커지고 있다. 지역민 김모씨(48·영덕읍)는 “군이 원전을 할지 안할지 애매한 것 같아 헷갈린다. 사업규모 흥정에 주민만 볼모가 된 꼴”이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천지원전 찬성단체의 한 회원은 “최근의 군 입장을 볼 때 굉장히 실망스럽고 무책임하게 보인다”며 혀를 찼다.

글·사진= 영덕 남두백기자 dbna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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