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999년에서야 6·25전쟁을 공식적으로 기념”

  • 글·사진=경주 송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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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4 07:52  |  수정 2016-06-24 07:52  |  발행일 2016-06-24 제21면
육군3사·경북대 국제세미나 개최
미·중·러 관점서 전쟁 의미 검토
“미국은 1999년에서야  6·25전쟁을 공식적으로 기념”
23일 오후 힐튼경주에서 육군3사관학교가 주최하고 충성대연구소, 경북대 인문학술원이 공동 주관한 ‘6·25전쟁 제66주년 국제학술세미나’가 열린 가운데 금용백 육군3사관학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5년 만에 발발했고, 베트남 전쟁에 가려 ‘잊힌 전쟁’으로 불릴 만큼 한국전쟁을 미국이 기념하고 참전용사들에게 공식적으로 경의를 표하는 과정은 매우 늦게 이뤄졌다. 1999년 미국 국회가 ‘한국분쟁’에서 ‘한국전쟁’으로 명칭을 바꾸고 현재 워싱턴DC 등 미국의 20여개 주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기념관이 세워졌다.”

육군3사관학교와 경북대가 공동으로 23일 오후 힐튼경주에서 ‘묻혀진 6·25전쟁’을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세미나에서 마이클 디바인 전 와이오밍대 교수는 제1세션, ‘미국 역사자료를 통해 본 6·25전쟁’이란 주제 발표에서 “아직 휴전 상태인 한국전쟁은 동아시아의 외교·국제적 안보 협의의 주된 쟁점으로 남아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제2세션에서 첸지안 미국 코넬대 교수는 ‘중국에게 가치가 있는 전쟁이었는가-한국전쟁에서의 중국·북한의 관계 재검토’란 주제발표에서 “1951년 봄 미군이 반격했을 때 중국 지휘관들은 ‘적극 방어’를 지시했지만, 김일성은 미군에 대한 역공세를 주장하는 등 중국과 북한은 전쟁기간 전략과 의견에 있어 심각한 마찰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3세션에서 웨더스비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한국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기록’이란 주제발표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소련이 6월25일 공격을 계획했고, 소련 정부는 필요한 모든 무기와 물자를 제공했다. 미국이 공산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국제연합의 개입을 이끌자 스탈린이 전쟁을 면밀히 검토했다”고 말했다.

또 “1950년 10월 중국이 전쟁에 참전하자 마오쩌둥은 다수의 전략적 결정들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했으나 전쟁 진행에 있어 주요 현안들의 최종적 결정권은 소련의 수중에 있었다”라고 덧붙었다.

이날 세미나는 육군3사관학교 정한기 충성대연구소장(대령)의 사회로 진행됐고 세션별로 최용성 전쟁과평화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박태균 서울대 교수, 양영조 군사편찬연구소 연구부장, 김태우 서울대 교수, 전현수 경북대 교수, 손경호 국방대 교수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증언에 나선 미국 참전용사 프랭크 제닝스씨(85)는 “당시 9개월 먼저 참전한 형과 인제지역에서 만났던 일이 신비로웠다”면서 “펀치볼 전투에 참가했고, 철의 삼각지대에서 부상을 입어 귀국했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참전 당시의 기억을 전했다.

금용백 육군3사관학교장은 “6·25전쟁은 우리 국군과 유엔군 젊은이들이 함께 피를 흘리며 싸웠던 자유수호 전쟁”이라며 “세미나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바로 알고, 그것으로부터 소중한 가치들을 지키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육군3사관학교는 지난 21일 미국 참전용사와 가족 11명을 부대로 초청해 학교소개, 간담회, 역사관 견학, 태권도 연무시범 등 보은의 시간을 가진 데 이어 24일에도 국내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긴다.

글·사진=경주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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